김광명
작가와 작품, 그리고 작품을 가능하게 하는 시대와 생활환경은 서로 삼면관계를 맺고 있다. 작품을 꿰뚫고 있는 이론은 이들 관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물을 체계적으로 살핀 결과물이라 하겠다. 작가 조윤성이 그의 박사 학위 청구전(2005년 8월 22일-27일, 조선대학교 미술관)에서 내건 주제인 “대중문화의 기호적 변용- 일상의 언어에서 회화의 언어로”는 이러한 구조물에 대한 이해이며, 그 후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그의 작품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떻게 전개되어가고 있는가를 이번 전시작품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사물의 이름은 사물과 운명을 같이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이름을 걸고 사용되고 있는 사물들의 기능적 역할은 사라지고 기호적 특성만이 남게 된다. 이는 아마도 후기산업사회, 소비사회에서의 물화(物化)된 우리들 삶의 모습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기표(記標, 시니피앙)가 지니고 있는 조형성 내지는 상징성이 기표의 내면에 담고 있는 기의(記意, 시니피에)와 분리되어 자리매김 되고 있다. 조윤성에 있어서 이러한 과정들은 조합, 변형, 제시, 반복, 합성 등의 재현 방법을 통해 예술적 언어로 나타난다. 그의 작업에는 광고기법이나 그래픽 작업이 중간에 개입되면서도 회화적 가능성이 극대화되어 있다. 이러한 회화적 가능성은 주목할 만하거니와 동시에 일상에서 통용되는 기호의 형태는 이미 소비되고 수용된 그것의 이미지로 인해 그 가치가 존재하므로 최대한 기호가 갖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가 드러나 있다고 하겠다.
일상의 사물이 어떻게 예술작품으로 변용되는가의 문제는 아더 단토(Arthur C. Danto, 1924-)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그는 『일상적인 것들의 변용』에서 일상의 변용을 통해 해석할 만한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작품이란 지각적 가능성에서 출발하지만 의미해석의 문제로 귀결된다. 조윤성은 기존의 이미지로부터 새로운 이미지로의 전환을 꾀하고, 시각적 조형물로서의 변환을 도모한다. 작가에게 있어 일상이란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겠으나, 조윤성에 있어 일상의 출발은 일차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시각 환경이다. 단순히 눈에 보인 시각이 아닌, 그로 인해 인식체계를 갖춘 시지각이다. 예술작업은 시각적 행위와 인식대상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 조윤성은 작업과 환경이 맺고 있는 유기적인 관계에 주목하며, 이를 다양한 기호나 시각이미지로 전환하여 회화적 모색을 한다. 2004년과 2005년에 집중적으로 작업한 <기호적 풍경> 연작에서 선보인 나이키, 맥도날드, 샤넬을 비롯한 다양한 기업이미지나 상품의 로고 등은 그의 주된 변용의 관심사이다. 그의 회화적 변용의 과정은 작가의 말을 빌리면, “시각적이면서도 설명적이고, 구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이며, 창조적이면서도 차용(借用)적이다. 또한 수작업이면서도 대량 생산적이고, 아이러니칼하면서도 진지한 이종(異種)형식의 제작이며, 차용된 대상들은 새로운 회화의 영역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단선적이지 않고 복선적이며, 다양한 것의 현존인 것이다.
그의 작업과정에서 보인 동어반복은 현대 산업사회의 복제적 분위기를 대변한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이러한 특징을 사진이나 영화로 대변되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생산양식이라 지적 한 바 있다. 또한 차용된 좌우 대칭적 구도는 자연물에서 보이는 형태적 특징으로서 생명적 이미지의 일면을 나타낸다. 물론 생명 이미지를 원시성의 모습으로 또는 분출하는 에너지의 모습 등으로 달리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조윤성의 대칭구도는 평형과 균형의 생명감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이 점은 팝아트의 이종적 형식구조에서 보이는 조합이나 반복 등의 조형적 변화과정을 추상화하여 회화적 영역 안에 끌어 들이는 데서도 보인다. 따라서 생명 없는 무기물에서 유기적 생명을 볼 수 있다.
조윤성은 작품의 조형성이나 제시하는 내용에 따라 크게 형식 1, 2, 3, 4의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네 형식들은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약간의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기에, 이러한 구분을 통한 접근은 작품이해에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된다. 이번 전시의 핵심이 되는 형식 1은 기존의 소재중심의 작업에서 벗어나 조형성과 더불어 자유로운 회화적 모색을 시도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6월에 열린 전주 서신갤러리에서의 전시(2010년 6월)가 이의 단초(端初)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씨앗으로부터>(2009, 2010) 연작은 기존의 작업이 지니는 의도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하여 소재를 통한 주목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회화가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제시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작가에 따르면, <씨앗으로부터> 연작은 현대 사회의 일상이 갖는 종합적이고 내재적인 모습을 가시화한 것이다. 씨앗이라는 내재적 상징성이 일상에서 가시화되어 펼쳐지는 모습이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형식 2, 3, 4의 작품들은 학위 청구전에서 보여주었던 형식으로서 대중문화 및 브랜드 마크 등으로부터 차용된 기호들을 소재로 단순히 제시하거나 조합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한 작업들이다. <기호적 풍경>(2005, 2010)과 <진실게임-SMILE 1, 2>(2010) 은 형식 2의 범주로서 작가는 이를 회화적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대지의 기원-루이뷔통, LG, BENZ MERCEDES >(2002)은 형식 3의 범주로서 질감효과를 잘 드러내고 있으며, <진실게임 - 맥도날드, 삼성, 코카콜라 >(2009)와 같은 형식4는 디지털 출력물을 LED 조명액자에 담아 다양한 형식적 접근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조윤성은 전통적 회화의 가치와 대중 문화적 특성이 어긋나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모색한다. 질감효과를 이용하거나 디지털 출력물을 LED 조명액자에 담는 작업은 동시대의 생활환경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의 결과물이며, 서로에게 침투된 영향물인 것이다. 작품에 표현된 여러 가지 구체적 소재들은 삶의 편린들을 보여주지만, 조윤성은 이를 회화적 작업을 통해 마치 지질시대의 화석처럼 시간의 흔적 속에 가두어 두거나, 때로는 화려한 조명 속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실제로 있는 것, 화석화된 것, 조명 속에 새롭게 등장한 것을 바라보며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우리의 시각 몫이다.
그의 기호는 전달과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미재생산을 위한 기호언어이다. 기호의 의미작용은 기표에 기의를 싣거나 의미가 실려 온 기호에서 의미를 추출하는 과정이다. 기호의 문제는 의미의 문제이지만, 여기에서 의미는 전달이나 소통이 목적이 아니라 의미 재생산에 의해서 공유된다. 의미 재생산은 의미의 고정성이 아니라 개방성의 전제 위에서 가능하다. 그는 일상에서 차용된 대상들을 활용하여 시각적 이미지로 새로운 변환을 모색한다. 이러한 새로운 변환을 통해 언어체계를 실험하고 그것의 전달과정을 보여 준다.
평자가 보기엔, 작가와 관객 간의 의사소통가능성은 삶을 공유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삶의 공유가 아니라 해체가 문제되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작가와 관객은 상당한 기간 동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일성보다는 오히려 차이의 공존이 문제이다. 삶의 해체는 곧 의미의 해체이다. 이는 오늘날 거의 모든 예술의 특성이 되고 있다. 의미의 해체는 의미의 부재가 아니라 비규정성이요, 비결정성이다. 이는 열린 지평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조윤성의 작업에서 보이는 일상의 바탕 또는 근거를 변용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하는 일은 의미의 열린 지평을 잘 펼쳐 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