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한미사진미술관(서울시 송파구 방이동)은 2011년 첫 전시로 민병헌 사진전 <Waterfall>을 2011년 3월 13일부터 5월 7일까지 8주간 개최한다.
민병헌 작가는 여전히 아날로그 흑백 프린트를 고수하고 있는 소수의 사진가 중 한 명으로, 한국 사진계에서 “민병헌”이라는 이름은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독보적인 형식적 스타일, 즉 중간톤의 회색조의 프린트를 통해 드러나는 서정적인 자연 풍경과 동의어로 통한다.
1987년 울퉁불퉁한 돌덩이가 박힌 길, 자갈이 굴러다니며 잡초가 군데군데 삐죽 튀어나오고, 바퀴자국으로 어지럽게 패인 거친 땅바닥을 스트레이트(straight) 하게 찍은 <별거 아닌 풍경>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민병헌 작가는 1990년대 중반 <잡초(Weed)> 시리즈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특징적인 스타일을 꽃피우기 시작하며 사진계에 그의 이름을 확고하게 새겨 넣었다.
민병헌 작가의 화면은 늘 절제되고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 조형성을 자랑한다. 이와 함께 극단적으로 밝은 톤으로 연회색의 농담을 최대한 활용하거나, 반대로 진한 회색 혹은 갈색 톤으로 일관함으로써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와 독특한 촉각성을 자아내는 그 미묘한 계조의 프린트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담은 그의 최근작 <Waterfall>에서는 물살의 추상적인 형태의 조형성, 프린트가 만들어내는 물의 촉각성과 함께, 물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사진심리학자 신수진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폭포 사진들은 셔터를 길게 늘려 물의 흐름이 과장되었거나 반대로 셔터를 짧게 끊어서 극적으로 고정시킨 것들이었지만,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폭포의 물줄기는 그야말로 딱 ‘중간’으로 흘러내린다”라고 평가하는데, 이 작업에서 그는 화면 구성의 균형 감각에서 셔터속도에 의한 속도의 균형 감각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인다.
2004년에 이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민병헌 작가의 이번 전시에는 <폭포 Waterfall> 시리즈를 중심으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Deep Fog>, <Tree>, <Snowland> 시리즈까지 자연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 약 72점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제는 여느 사진전에서 보기 힘든—엄청난 장인적인 노고와 기술적인 엄격함이 요구되는—아날로그 방식으로 인화한 대형 작품들을 다수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전시평론
민병헌:내적 상상의 환상곡
신수진
우리는 개인의 감성적 경험이 서사를 압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순차적으로 흐르는 시간과 측량 가능한 공간의 시대를 뒤로 하고 개별화된 시공간에 대한 해석이 중요한 시절에 이른 것이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활용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다. 경험을 차별화하는 감성이 행동을 변화시키기에 이르렀으며, 무엇에 어떻게 몰입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문제가 되었다.
사진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가능케 하는 기초를 마련하였을 뿐 아니라, 직접적인 감성적 소통의 매개로 활용되어 왔다. 처음 사진이 등장했던 19세기에 움직임을 담은 사진이 시간을 재구성하였다면, 그 다음 세기에는 세밀한 입자와 극명한 심도가 우리 시야의 공간을 분화시켰다. 그리고 이제 우리 시대의 사진은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여 변주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섬세한 감성의 표현이라는 면에서 민병헌은 열렬한 추종자를 만들만큼 강한 집중력과 흡입력을 보여왔다. 그는 차별적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공감시키는 사진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톤의 재현은 흑백사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매체 특정적인 것이며, 동시에 그만이 느끼는 자연에 대한 찬사이고, 말로는 이루기 힘든 타인과의 교감이다.
풍경에 대한 예술적 해석이 원초적인 시공간 경험의 단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실존적이라는 지적은 민병헌의 경우에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별거 아닌 풍경>으로부터 시작하여 <섬 Island>, <잡초 Weeds>, <깊은 안개 Deep Fog>, 그리고
와 <숲 Trees>에 이르기까지 민병헌은 전형적인 자연의 소재들을 다뤄왔다. 평범한 소재를 사유화(私有化)하기 위해 그가 고집하는 방법은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 프로세스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듯 하얗게 부서지는 찬란한 나뭇잎, 부드럽게 번지듯 스며드는 짙은 어둠의 숲, 심연(深淵)처럼 온 세상을 감싸 안은 짙은 안개를 담은 흑백의 계조는 소재를 뛰어 넘는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에게 순수한 시각적 즐거움을 주어왔다.
그의 작품에서 흑백의 계조는 평범과 비범, 일반과 개별을 구분하는 중요한 표현요소이다. 흑이나 백으로 치우쳐진 영역에서 세밀한 밝기의 차이를 보여주는 방법을 쓰거나 중간 회색을 기준으로 풀스케일(full scale)의 풍부한 계조를 선택하거나, 그는 온전하게 자유롭다. 자연 앞에서 그가 느낀 바에 따라 톤을 조정하는 것일 진데 그 미묘하고 섬세한 몰입의 경지가 감탄스럽다보니 자유롭다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사진이 흑백에서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회색조로 전환된 세상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육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병헌의 흑백사진에 담긴 자연은 보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사진 앞에만 서 있어도 작가가 겪어낸 엄밀한 선택의 순간들이 소름끼치게 다가온다. 자연을 마주하고, 나만의 자연으로 만들기 위해 교감하고, 매서운 눈초리로 재단하고, 빛의 양을 조절하고, 인화지 위에서 한 번 더 은염의 농도를 조절하는 과정이 한 장의 사진마다 생생하다.
그의 사진에는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확히 말하면 민병헌의 작품을 통해서만 감지되는 지점이 있다. 사진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특정 밝기의 회색이 마치 하나의 층을 이룬 것처럼 화면 전체를 덮고 있는 것인데, 화면에 고르게 퍼져 있는 그 한꺼풀이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감싸 안는다. 그것이 흩날리는 눈발이거나 구름이 사라진 하늘이거나 혹은 시야를 가로막은 안개이거나 물보라가 이는 폭포의 물줄기이거나, 그 회색으로 인해 현실은 멀어지고 상상이 다가온다.
<폭포 Waterfall> 연작 중의 많은 작품은 수직으로 하강하는 물줄기를 중립적인 셔터 스피드로 촬영해서 눈으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운동감을 나타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폭포사진들은 셔터를 길게 늘려 물의 흐름이 과장되었거나 반대로 셔터를 아주 짧게 끊어서 극적으로 고정시킨 것들이었지만,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폭포의 물줄기는 그야말로 딱 ‘중간’으로 흘러내린다. 운동감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물줄기에 집중해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면 물의 흐름과 반대로 내 몸이 끌어올려지는 듯한 착시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커튼처럼 드리워진 물줄기를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물줄기 그 자체를 사진의 온전한 주인공으로 삼아 장대함에 몰입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물줄기 사이에도 회색이 자리잡고 있다. 정서 혹은 가치 판단으로부터 중립적인 좁고 세밀한 범위의 회색층이 만들어낸 ‘중간’의 엄정성이 정적인 사유의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몰입과 상상은 감각으로부터 일깨워질 때 가장 생생한 체험이 된다. 오감으로 체험된 몰입은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로부터 자유로운 상상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민병헌의 작품 앞에서 “이 폭포는 여름에 찍었을까, 겨울에 찍었을까?” 또는 “저기는 경상도일까, 강원도일까?”를 궁금해 하는 감상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는 폭포의 부분을 과감하게 떼어내는 프레이밍으로 본래 찍혀진 때와 장소로부터 사진을 분리시켰다. 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거품이 이는 장면을 담은 작품의 경우, 심지어는 폭포라는 소재로부터도 멀어져 있다. 몽실몽실한 거품의 형태는 가변적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촉각으로 기억한다. 사진 속의 물거품은 금세 손끝과 발끝을 간지른다. 이러한 촉각적 경험에 청각적 감흥이 더해지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갔던 소박한 폭포나 순교자가 몸을 던지던 영화 속의 장엄한 폭포, 홀로 득음을 위해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은밀한 폭포가 모두 나의 것이 된다.
민병헌의 사진은 폭포 이상의 것을 상상하게 한다. 평면의 흑백 사각 프레임에 옮겨진 시각적 요소들이 입체적인 감성 체험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그것은 직접적인 감각을 통해서 생생하고 강렬하게 뇌를 자극하는 현재진행형의 상상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폭포 앞에서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사진에 담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겠지만, 그의 작품들이 지니는 힘은 오히려 그 어느 곳에서도 작가, 즉 관찰자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에서 나온다. 관찰자는 화면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언제라도 우리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며 상상의 세계의 주인이 되라고 청한다. 따라서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매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완전히 독립된 공간 속에서 감각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감각적 몰입을 통해서 내적 상상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시각으로부터 시작되어 촉각과 청각으로 이어지는 공감각적 경험이야 말로 아이디어와 개념이 우선하는 작품들 사이에서 민병헌의 풍경사진이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일 것이다. 과거의 민병헌 작품은 광택이 없는 인화지를 사용해서 회화처럼 보이는 특징이 있었는데, 근작들은 대부분 표면 광택이 분명한 인화지에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기술적 엄정성이 더욱 두드러져 심지 굳은 기개까지 느껴진다. 그를 쉼 없이 도전하게 하는 사진, 자연과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스타일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치열함을 아는 사람만이 넘어섬의 경지를 논할 수 있지 않겠나. 그 물속에 우리 모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