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진
최근 현대미술의 경향을 돌아보면 동양철학과 그 예술사유에 대한 관심이 한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류의 정신사적인 궤적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제 서양과 동양이라는 지정학적인 이분법의 구도를 넘어 세계와 삶에 대한 해석이 보다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되고 있고, 또한 총체화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서진국의 작업은 현대미술의 이러한 추세를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유학 기간에 심리학에 심취했었고, 인간의 심리와 세계에 대하여 탐구하면서 자연히 동양의 도가 사상과 음양 오행의 세계관에 접하게 된다. 그리고 한발 나아가 세계에 대한 해석에 있어 심오한 철리를 예시하고 불가의 인타라망의 세계에 접근하게 된다. 이 같은 일련의 관심을 조형언어로 표출한 것이 그의 작품세계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들은 세계와 인간 삶의 조건에 대한 명상의 산물들이고, 바로 우주의 시․공간에 대한 사유를 감각적인 언어와 기호로 번안해 가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의 의미와 그 방향성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작업 모티브는 삶과 세계의 관계, 나아가 인간과 우주의 관계데 대한 사유를 어떻게 조형으로 형상화하느냐 하는데 있다. 이런 점에서 그 모티브는 삶과 세계의 관계, 나아가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사유를 어떻게 조형으로 형상화하느냐 하는데 있다. 이런 점에서 그 모티브는 다분히 관념성이 강하지만, 다양한 조형적 장치와 일상 이미지의 원용을 통해 감각적인 사고를 유도하고 있다. 작가는 세계에 대응하는 인간 심리의 해석에 있어 의식과 무의식, 여성과 남성, 음과 양의 대극현상과 조회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관심은 자연히 현실의 삶과 연루하여 코드화된 이미지와 기호들을 조형적 상징으로 번안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 작업의 예술의지
방향도 그 연장선상에 있지만, 특히 불교에서 설하는 인타라망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조형적 변주를 도모하고 있어 주목된다. 불교에서는 인간 삶과 우주의 관계성 및 인과율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제석천의 보배 그물을 상징, 그 인타라망은 세계를 덮고 있는 그물로써 그물코마다 구슬을 달고 있는 구슬들이 서로를 비추어 중중무진의 세계를 반영한다고 한다. 이는 화엄세계의 우주관에서 본다면 바로 ‘일즉다 다즉일’의 철리를 대변하는 것으로서 존재의 인과성과 모든 대극적인 것의 조화와 일체의 관념을 상징하기도 한다.
둘째, 위와 같은 모티브와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다양한 이미지와 기호를 도입하고 오브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동안 작업 과정을 돌아보면, 작가는 화살표나 바코드, 짝수 홀수의 숫자들, 만다라의 가본 도형 등의 상충과 조합을 통해 우주적인 이념을 감각적 사유로 번안해왔다. 특히 상품의 모든 내용이 도식과 숫자로 각인되어 있는 바코드의 원용은 코드화된 현대 삶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것으로 만다라 도상들, 즉 우주적 시 공간을 상징하는 시각형과 원과 삼각형의 도형 이미지와 교차하면서 특유의 감각적 환기를 경험케 한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 역시 바코드의 이미지를 원용하고 있지만, 현대의 삶과 우주적 카오스의 경계, 그리고 인타라망의 관계성을 하나로 아우르는 조형적 장치를 통해 보이는 이로 하여금 또 다른 사유의 장으로 몰입하게 된다.
셋째, 그동안 아크릴판의 화회로 공간의 확장을 통한 설치 작업을 선보여 왔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인타라망의 이미지에 부응하여 세쪽의 아크릴판 그림을 부착하여 보여줌으로써 시각 이미지와 공간의 확출 개념을 보다 다른 방식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바코드가 그려진 한 면과 시작과 소멸의 카오스 세계를 표현한 중간 면, 그리고 삼각의 그물코로 표현한 인타라망의 또 한 면은 아크릴의 투명한 재질 때문에 서로 비추어지는 가운데 작가가 의도한 삶과 우주의 경계를 암시한다. 바코드의 도시적인 도형과 숫자는 현대의 코드화된 일상 삶을 암시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음과양, 대극과 조화(특히1은 완전한 一煮, 3은 조화, 9는 만물의 상징), 또는 성의 무의식적 균형으로서의 아니마와 아니무스 등의 의미연관을 지니고 표현된 것이다. 반면 물감을 자유롭게 흘려 니스로 마무리한 중간 판의 카오스 이미지는 바코드와는 상충되는 듯하지만, 그 역시 인간 삶과 우주의 에네르기를 표출, 인타라망의 chacha한 그물망에 비추어지면서 일종의 입체화회의 면모를 보여준다.
넷째,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작가의 이념 뿐 아니라 조형방법과 매체의 확충이라는 측면에서도 작가는 각고의 노력과 연구를 수행해 오고 있다. 유화물감과 아크릴, 유성펜, 에나멜, 니스, 그리고 노끈 구슬 등의 오브제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자신의 이념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능한 재료와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점에서 그 의지가 돋보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1미터 이상의 대형 작품과 1호 변형의 작은 작품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삶과 우주의 관계성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만다라라고 할 만하다. 특히 색채에도 깊은 관심을 두어흑과 백으로 우주 시방세계의 현묘함을 암시하고, 사방과 중앙의 오방색 상징을 그림에 도입하고 있는 점 등은 서양과 동야, 고대와 현대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삶의 이념을 조형으로 형상화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 연구 열정을 새삼 엿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연구와 시도들이 직관의 언어로 보다 밀도있게 감각에 와닿게 하려면 사유의 육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동양철학의 내밀한 깊이는 삶 속에서 체득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며, 연구대상으로서의 사상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발효가 될 때, 삶의 표현인 미술의 언어도 그만큼 공감과 진정성의 밀도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가 앞으로 작업 방향성을 조율해가는 귀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