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일
백색의 작은 머리들이 장신구 속에 열매처럼 맺혀있다. 얼굴에 담긴 섬세한 표정들이 눈길을 끄는가 하면, 합성된 사물들, 암시적인 제스처, 몽환적인 표정들이 시선을 끌어당기며 이야기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사람의 얼굴을 다루는 김혜원의 장신구작품들은 자전적이다. 이들은 작가의 의식으로부터 추억과 사건과 상흔들을 꺼내고 보듬는다. 어린 시절의 안온했던 기억으로부터 가족과의 유대, 성장기의 추억, 일상에서의 소통과 나눔, 소외, 질병, 사랑 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연작 속에서 반복되는 인물들은 하얗게 분장한 작가의 페르소나이다. 이 작업은 작가에게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작품을 통해 생각을 물화物化시키는 행위는, 작가의 내면에 고인 의식과 집착의 침전물에 물꼬를 내고 이들을 흘려내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정신세계를 다루는 미술작가들이 대면하는 가장 중대한 대상은 바로 작가 자신이 아닐까. 자신을 소재로 삼는 경우는, 진술과 표현을 강조하고 있는 현대 장신구의 세계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우리시대의 장신구 작가들이 확장하고 있는 내러티브의 세계는, 타인과 외부의 세상으로 향하는 원심적인 경향 못지않게,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는 표현적이며 구심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현대장신구는 “나는 벌어진 이빨과 헝클어진 머리칼, 나만의 의상, 유머 등 여러 감각을 가진 뚱뚱한 흑인 여자로 여기 서있다.”라고 말하며 작품을 통해 존재론적 분노를 표현하는 여성 장신구작가 조이스 스코트나, “뻥튀기된 머리와 쪼그라든 몸체, 무능한 수족의” 자화상이 있는 장신구를 통해 끊임없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계를 희화화하는 브루스 메트캐프처럼, 자신을 그리는 많은 장신구작가들을 포함한다.
미술을 오로지 상품으로 여기는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도, 작품 활동에 진정성을 기울이는 젊은 작가들을 보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이들의 존재는 미술이 인간에게 돌려주는 보상의 다양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설령 상업적인 성공이나 명성이 아니어도 미술행위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개별적이며 품위 있는 방식을 제공한다. 또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음으로써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값진 통로를 제공하기도 한다. 사회적인 반향의 부족에도 적지 않은 공예작가들이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이 존재감, 유대감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면 작품은 다시 작가를 이끌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