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듀얼 이미지 Dual Images
2011. 6.23~8.7
포항시립미술관 1, 2전시실
국대호, 김동유, 라유슬, 송명진, 윤향숙, 이명호, 이민호, 이정, 이혁준, 홍성도
사진. 회화 46점
○ 관람안내관람시간 10:00~19:00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전시장소 포항시립미술관 1, 2전시실
791-280 경북 포항시 북구 환호동 351 (환호해맞이 공원內)
오시는길 교통편
버스 101,102,105,200,700(환호해맞이공원 네거리 하차, 도보 3분)
주차 환호해맞이 공원 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www.poma.kr 문의 054 250 6000
이번 전시는 동시대 시각문화 속에서 이미지가 처한 다기하고 복잡한 양상을 ‘듀얼 이미지’로 설정하여, 이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가시화시킨다. 때로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만화경 같기만 한 이 시대는 이미지의 과잉의 시대라 불릴 정도로 다수의 이미지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미지를 둘러싼 사회적 현실은 복잡하기만 하고, 이미지 역시 이러한 복잡한 사회적 현실의 틈새에서 주조되고 있기에, 단일해 보이는 이미지들조차도 그 얇은 표면의 안자락은 다른 속내를 가진 또 다른 이미지들이 자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전시가 차경으로 삼고 있는 동시대 시각문화, 이미지들의 현란하고, 어질어질한 맥락들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듀얼 이미지는 숫자로서의 둘이라기보다는 개념으로서의 다(多)에 가깝고, 복수의 다층적인 이미지의 겹을 지시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러 겹의 이미지가 거듭되어 겹쳐질 수밖에 없는 상태, 혹은 그러한 작동방식을 도해하기 위한 개념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듀얼 이미지는 이 시대의 복잡다단한 이미지의 현실을 드러내는 지시어로 작용한다. 그렇게 우리를 둘러싼 이 시대의 이미지는 듀얼한 방식으로 복잡하기만 한 사회의 변화와 연동되어 부단히 작동하고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움직임과 겹쳐짐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기인하겠지만, 이미지의 현재적 삶을 이루는 특정한 시각체제, 즉, 사진을 위시한 시각테크놀로지의 포진에 따른 이미지의 복제, 변형, 유통이 한 몫을 차지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한 시각장치의 범람이 이미지의 수많은 착종과 변형을 통해 무한생성을 거듭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미지의 문제를 주된 고민으로 삼고 있는 현대미술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이 시대의 복잡한 이미지 상황과 직접 대면하면서, 이를 작품을 통해 드러내려 한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와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들의 노력들은 이미지의 과잉 시대에, 진정한 이미지를 담아냄으로써 세상의 저 살아있는 생생함을 포착하고 살리려는 시도들인 동시에, 가시적인 것 너머의 비가시적인 것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이번 전시는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의 이미지 상황들을 드러내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복수의 이미지들이 결합된 양상들, 혹은 여러 겹의 층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현재의 이미지의 상황들을 가시화시킴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동시대 시각문화의 생생한 면모들을 확인하도록 한다. 아울러 여름 시즌 미술관의 계절적이고 장소적 맥락을 고려하여 주로 여름, 바다, 풍경, 여행 이미지와 연동된 작품들의 배치해, 청량하고 시원한 전시장 분위기 조성을 통한 관람객과의 커뮤니케이션도 각별히 고려했다.
1전시실은 다양한 시선과 테크닉을 통해 동시대 이미지의 상황을 포착하고 있는 사진작업들이 펼쳐진다. 이명호는 스스로 ‘사진행위’라 명명한 작업을 통해 (탈)맥락화 된 자연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끝없는 지평선이 드리워진 사막의 풍경에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이 투하된 거대한 광목천을 드리움으로써, 광활한 하늘의 풍경을 마치 수평선에 면한 바다처럼 보이게 만든 ‘바다’ 연작이나 대자연 속에 자리한 나무를 기존의 질서로부터 분리시켜, 마치 캔버스에 그려진 나무처럼 인공화 된 맥락을 부여한 계열화 된 ‘나무’ 작업은 자연과 인공이, 현실과 환상이 접합되어 있는 이 시대의 색다른 이미지의 풍경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인공과 자연의 문제는 이혁준의 사진작업에도 이어진다. 현실 속에 자리하는 각기 다른 숲의 이미지들을 해체하여, 이를 다시 사진적 이미지의 조립을 통해 가상의 숲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이혁준의 작업은 자연과 인공이 뒤섞인 현실의 숲을 드러낸다. 자연의 순리를 가로질러 인공화 된 개입과 흔적들을 통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숲은 역설적이게도 상상과 현실을 모두 아우른다. 홍성도의 사진은 이중적 프레임을 통해, 기존의 풍경에 시간의 흐름을 담아낸 이미지로 꼴라주 된다. 시간과 공간이 이미지의 해체와 조작을 통해 재구성되는 것인데, 이 과정에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의 흐름이, 작가의 실존적인 변화가 겹쳐지고 덧입혀진다. 다층적인 동시대의 이미지 상황은 그러한 이미지를 바라보는 주체의 시점 역시 고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를 독특한 일상의 풍경을 담아내는 이민호의 작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형적인 풍경의 문법, 프레임을 벗어난 이민호의 사진 속에는, 또 다른 풍경의 이미지들이 배치되거나 층을 이루며 다층적인 구조를 이룬다. 휴대용 풍경Portable Landscape이라 명명된 이들 작품들은 일상의 풍경이기도 하지만, 원래의 시공간의 맥락에서 벗어나 또 다른 풍경 속에 반복, 중첩되어 배치된 것들로 이동이 가능한, 정처 없이 떠도는 이미지들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근원을 잃어버린 채 부유하고 있는 이 시대의 이미지 상황을 드러낸다. 정박하지 않고 떠도는 것은 비단 풍경만이 아니다. 이정의 사진은 황량한 이미지의 바다 속에 돌고 도는 텍스트를 주목한다. 서로 엇갈린 채, 다른 식으로 우연히 조우하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는 황량한 자연 속에 설치된 세속적인 사랑에 관한 네온으로 된 텍스트를 통해 극적으로 제시된다. 작가의 말처럼 적막하고 황량한 공간에서 희미하게 퍼지는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시대의 사랑의 텍스트는 어떠한 느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막다른 상태를 이상하리만치도 정확하게 보여준다.
2전시실은 회화 작품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미 도처에 사진적 이미지가 포진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회화의 현실 또한 달라지고 있음을, 각기 다른 변주의 노력을 통해 동시대 이미지의 상황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말한 것처럼 “대상의 외관에 대한 우리들의 감각은 끊임없이 사진에 의해 공격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뭔가를 볼 때는 이미 사진을 통해 변형된 감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국대호의 작업은 1전시실과 2전시실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사진과 회화적 이미지가 서로 맞물려 있는 상황을 드러낸다. 작가는 초점이 잡히지 않아 흐릿한 사진 이미지에 주목하는데, 이는 사진적 시각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기계적 시각이 갖는 직접적인 현실성을 덜어내고, 회화적인 추상성을 보강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사진과 회화 작업은 이렇듯 형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영역, 회화적인 것과 기계적인 사진 이미지의 영역을 가로지른다. 이미지는 그 명증성의 논리만큼이나 모호하고 애매한 방식으로 시선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그래서 분명한 현실의 대상과 감각화 된 시선 사이에는 이렇듯 얼마간의 거리감이,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막이 가로놓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윤향숙 작품 속의 무수히 반복된 파스텔 톤의 점들은 이처럼 모호한 깊이를 가지는 이미지의 영역을 가시화시킨다. 이미지의 무한 변형과 생성을 이끌어내는 디지털 이미지의 입자들처럼, 이들 점들에 의해 재조명된 일상의 풍경과 사물들은 색다른 깊이감과 입체감으로 우리를 심연과도 같은 이미지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평면과 입체, 실재와 환영, 자연과 인공, 현실과 비현실 등 서로 맞물린 두 가지 상반된 요소가 만들어내는 경계의 영역을 작업으로 이끌어 들이고 있는 송명진의 작업 역시 모호하고 애매한 이미지의 영역을 창안한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풍경은 화면을 가득 메운 불투명한 녹색opaque oxide of chromium으로 인해 지극히 인공적이면서도 자연적인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특이한 평면성의 효과를 부여한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우리 내 일상과 어딘 듯 연결되어 있는 듯하지만 결국은 가상의 사건들과 이야기로 주조된 세계로 빠져들게 하면서, 보는 이들의 시선을 미혹케 하는데, 내러티브와 길항된 평면적 이미지의 증폭된 효과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이미지의 작동은 색채와 형태를 통해 그 효과가 증폭되기도 한다.
라유슬은 색채와 형태의 부단한 겹침을 통해, 동적인 움직임과 떨림을 전하면서 음악적인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이는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덧입히는 과정, 작가의 심적인 상태를 형상 속에 적층시키는 과정을 수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에 의해 새롭게 창안된 이미지는 이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적인 형상은 물론 청각적인 리듬감과 작가가 고민했음직한 심적인 의미까지 담아내는 매개물이 된다. 익숙한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김동유는 그 자체로 지독한 그리기의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효과를 극명히 노출시킨다. 작가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익히 알려진 아이콘들은 재차 사진화의 과정을 거친 사본의 사본이면서, 작가의 지독한 그리기에 의해 재변형 된 이미지들이다. 뿐만 아니라 작은 이미지들이 모여 전체적으로 큰 이미지를 이루는 구조를 갖고 있지만 서로 판이하게 달라 부분과 전체의 어떠한 유기적인 연관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서로에게 기생하고 있으면서도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이 시대의 이미지들의 맥락을,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들이 우연하고 이질적으로 관계 맺는 양상을 효과적으로 가시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작업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비단 놀라운 그림술에 의해 제시되는 착시효과 이상으로 작가가 동시대 이미지의 다중적인 상황을 끊임없는 원초적인 그리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미지는 때로는 현실의 경험 자체를 대체할 만큼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대신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그렇게 바라보는 우리 또한 얼마간 이미지에 의해 규정될 만큼 이미지의 영향력은 대단하기만 하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많은 것들을 매개하고, 변형하고, 증폭시키는 이미지들의 현존에 현대미술 역시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번 전시는 사진과 회화라는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통해 동시대 사회 속의 다기한 형태의 이미지의 변형, 생성은 물론 그 이면에 자리하는 현실의 여러 속내들을 보여준다. 듀얼 이미지들이 엮어내는 화려한 이미지의 수사학 속에 투영된 우리 자신의 모습까지도 말이다.
■민병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