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2010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안세권 : 서울, 침묵의 풍경 II
Seoul, A Landscape of Silence리트머스 서울: Before the Dawn
성곡미술관은 2011년 가을 전시로 <안세권: 서울, 침묵의 풍경II>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0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수상 기념전으로 수상자 안세권의 사진과 영상작업 100여점을 집중 소개한다.
안세권은 21세기 동시대 한국미술계는 물론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사진작가로 2003년 청계천프로젝트를 통해 기성 화단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청계천을 모티프로 한 작업이 그러했듯 지난 10년 동안 안세권은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살아 있는 표정과 삶의 호흡을 사진, 영상으로 꼼꼼하게 기록해왔다.
안세권이 렌즈로 담아내는 풍경은 주로 도시풍경이다. 도시의 성장과 발전, 번영을 반영한 현대적 현재 풍경과 함께 사회경제적 발전과 개발논리에 밀려 사라질 상황에 처해 있거나 그로부터 오랫동안 소외되어 있었던 고립풍경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풍경과 함께 안세권을 오늘의 주목받는 사진작가로 자리매김한 것은 표정이 전혀 다른, 상반된 생성/소멸 풍경이 공존하는 아름답도록 처연한 장면이다. 때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정하고 싶은 엄연한 당대의 사회현실이 동일 프레임 안에 치밀하게 중첩, 병치되어 있다. 뷰파인더로 떠낸, 개발 등 외세에 힘없이 밀려 이내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릴 그러나 지킬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절대적 한계상황이 화면 구석구석 절절하게 배어 있는 현실 풍경은 보는 이의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10여 년 동안 각 지자체가 힘 있게 밀어붙였던 이른바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기존 삶의 풍경은 요동치듯 물리적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온 전래 도시 풍경은 마치 성형을 하듯 몇몇 세련된 현대적 미감의 표정으로 획일화되거나 생소한 질서와 표정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자연스러움이 결여된 인위적이고 낯선, 또는 경직된 신흥 풍경은 이런저런 세속적 이해관계들이 속속 개입하면서 또 하나의 도시 소외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도시 재개발 계획은 사업 대상과 장소, 규모를 바꿔가면서 마치 순회하듯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도시 도처에서 경쟁하듯 이어지는 개발 풍경 속에서 빚어지고 경험하는 낯선 풍경과 장면들은 해당도시나 나라 전체의 물리적 지형 변화는 물론 실제 도시에 거주하거나 왕래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지형까지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있다.
안세권은 소멸/생성을 반복하는 도시개발/재개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담아낸다. 그가 증거하는 도시문제,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의제는 도시재개발과 그 과정에서 노정하고 목도하는 일방적/획일적 재개발 문화에 대한 반성적 지적이다. 우리에겐 이미 익숙해진 풍경, 개발에 의해 사라지거나 사라지고 있는, 사라질 풍경에 대한 관심을 반성적으로 환기시킨다. 상황에 따라 그것은 희망의 풍경이요, 긍정적 변화일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절망의 상황이자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일 것이다. 개발을 둘러싸고 양립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충돌, 대립의 감정이 교차하듯 치밀하게 스며들어 있는, 일견 서정적인 미감을 전달하는 안세권의 깊은 침묵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이렇듯 안세권의 필름은 길고도 깊은 침묵으로 잠들어가는 생성/소멸 현장의 역사적 감광에 다름 아니다. 무거운 침묵 가운데 휴식과 불안이 공존하고, 생성되는 장면과 사라지는 장면이 함께 호흡하며 생겨날 풍광과 사라질 미래적 풍광을 감광하는 안세권의 눈과 렌즈가 함께 있다. 눈을 쉽게 뗄 수 없는,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독특한 심리 풍경이다. 무겁도록 침묵하는 풍경, 소리 없이 신음하는 풍경이다. 어찌할 수 없다. 다만 그들의 시간과 기억을 목도하며 함께할 따름이다. 답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풍경, 그 깊고 푸른 침묵과 그를 지켜보는 긴 호흡과 시선이 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대치 풍경이 미묘하게 교차 침묵하는 가운데 안세권의 눈과 카메라의 렌즈는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카메라의 눈을 빌려 담아낸 조립 풍경이자 병치 풍경, 신구가 대립/공존하는 불편한 장면 속에는 잠들지 않은 목도자로서 안세권이 있다. 그가 전하는 도시의 침묵과 호흡이 깊을 수밖에 없다.
안세권의 힘은 생생함이다. 사진 구석구석 배어 있는 생생한 생명감과 현장감은 가히 압권이다. 도시나 특정 지역의 과거, 현재, 미래의 지형을 현장감 있게 한 프레임에 병치시키는 안세권, 그는 그러한 동시적 장면을 통해 도시의, 도시 삶의 미래적 기억을 반추하고 있다. 안세권이 그러한 지형과 기억을 받아들이고 제시하는 방식은 이른바 장노출 촬영이다. 사진 작업의 속성상 안세권은 프레임과 화면 밖에 위치해 있지만, 실제적으로 사진 속 현장, 풍경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도 현장에 장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안세권이 현실 풍경과 만나는 시간은 주로 새벽이다. 그의 사진은 늦은 저녁부터 새벽에 이르는 시간의 기록이자, 새벽의 기억이다. 그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새벽의 서울은 과연 무엇일까. 안세권은 늘 그러하듯 매일처럼 몸을 들어 감광하듯 서울 구석구석을 스민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인적이 거세되어 텅 빈 침묵으로 남아 있는 새벽 표정을 잠 깨우듯 끄집어낸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화면은 푸른 색 주조를 보인다.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명도, 채도, 색상 범주를 넘어서는 대단히 심리적인 발색이 눈길을 잡아맨다. 원판 사이즈의 필름은 살짝 젖어 있다. 늦은 밤으로부터 동이 틀 무렵까지 새벽이슬과 함께 현장의 시공과 호흡을 빨아들인 리트머스 풍경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안세권 사진의 독특한 시각적/촉각적 질감은 그러한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화면이 촉촉하고 깊은 심연을 간직하고 있는 이유다.
안세권의 작업에는 생성으로서의 살아 있는 풍경이자 사라지는 소멸로서의 풍경, 즉 현재 진행형으로서의 소멸/생성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살아 숨 쉬는 현실 풍경, 안세권에게 그것은 강력한 매력의 작업 모티프다. 구작과 신작이 함께 하는 안세권의 이번 수상 기념전은 살아 있는 대상으로서의 장면, 작품제작 모티프로서의 풍경과 지난 10년 동안 작가가 작업을 통해 진정으로 담아내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성곡미술관은 1998년 내일의 작가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후 지난 14년 동안 50여명에 달하는 다양한 젊은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주목하고 지원해왔다. 미술관에서의 전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국내 독보적인 창작지원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성원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