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조선화원대전
_ 2011.10.31-1.29, 삼성미술관 리움
이 전시를 평한다(46)
조선 화원(畵員)이란 관청인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되어 그림을 그리면서 녹봉을 받았던 직업화가를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왕실과 조정의 각종 행사와 의식과 관련된 기록화를 비롯하여 감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림을 제작하였다.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의 원리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의 행사나 왕실의 의식은 모두 유교적 예제(禮制)에 맞게 치러졌다. 또한 그것은 화원에 의해 도보(圖譜)로써 정리된 각종 의궤들로 보존되어 정신적 규범으로 삼았다. 도화서가 유교적 의례의 핵심 관서인 예조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의미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도화서의 최고 책임자인 제조(提調)는 예조판서가 겸임했고, 화원의 공식적인 도화활동은 유교적 질서의 근간을 유지하는 의례 활동의 연장선이었다. 특히 종묘의 제례에 사용될 국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은 가장 빈틈없는 정밀함과 의례적 충일함이 요구되었다.
도화서는 왕실과 국가 권력의 위용을 장엄하고 제도화하는 기능도 포함된다. <일월오악도 8곡병>은 그러한 시각적 장치의 중심적 위치에 놓이는 그림이다. 천계(天界)를 표상하는 해와 달, 지계(地界)를 상징하는 다섯 산봉우리, 생명의 탄생과 번창을 노래하는 폭포와 파도, 그리고 그 곁에 피어오르듯 우뚝 선 붉은 소나무는 생물계(生物界)를 의미하며, 그 모든 것들은 8곡병 앞 중앙에 놓이게 될 어좌(御座)를 위해 존재한다. 즉 이 그림은 국가관의 투영이자 왕실의 권위를 상징한다. 왕을 핵심으로 한 유교적 가치체계 속에 <일월오악도>라는 시각적 표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한때 ‘민화’로 분류되었던 이 그림은 조선 화원제도의 틀 속에서 그 의미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일월오악도>가 전시 동선상 시선의 중심에 놓이게 된 것도 화원의 존재 의미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드러냄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초상화의 제작은 화원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며, 국왕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회이기도 했다. 영조대에 활동한 변상벽(卞相壁 ?-1775)이 한종유(韓宗裕)와 함께 그린 <김치인 초상>과 정조대의 이명기(李命基 1756-1802)가 그린 <오재순 초상>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게 전시한 것도 기획자의 세심한 배려라고 생각된다. 고양이 그림으로 잘 알려진 변상벽은 명징한 태도가 몸에 밴 김치인의 성품을 산뜻한 선염으로 맑고 투명하게 드러내었고, 정조의 어진을 두 차례나 그렸던 이명기는 오재순의 학문과 연륜을 입체적인 얼굴 표현과 강한 명암대비의 옷주름으로 그 특징을 살려내었다. 나란히 진열하지 않고 지그재그구획에 한쪽 방향에만 배치하여 초상이 갖고 있는 독립성을 유지시켰다.
디지털기술을 십분 발휘한 전시
전시는 화원의 ‘공적인 활동상’과 ‘사적인 활동’으로 구분하였다. 공적인 활동상에서는 <일월오악도>처럼 왕실의 권위에 복무하는 채색 위주의 장식화나 조정의 행사장면, 사실성을 추구한 어진 및 공신의 초상화, 실용성에 가치를 둔 지도, 인쇄물의 밑그림, 도자기의 문양 등이 전시되었다면, 사적인 활동에서는 사가(私家)의 주문을 받은 감상화가 주를 이룬다. 화원들은 주문하는 사람들의 요구나 기호에 맞추어 그리기도 하였지만, 탄탄한 실력으로 화단에 새로운 흐름을 주도해 나가기도 하였다. 특히 김홍도 말년의 작품인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와 <추성부도(秋聲賦圖)> 앞에서는 그 감동이 너무 깊어 발을 떼기 어렵게 만든다. 다만 아쉬운 점은 출구를 나오면서 그 벅찬 여운이 춘화를 진열한 공간을 돌면서 쉽게 무너진 것이다.
고화를 편안하게 감상하는 데 세 가지 정도의 조건이 수반된다면 관람자로서 더없이 좋을 것이다. 첫째, 감상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원만한 밝기의 조명, 둘째, 그림을 근접해서 볼 수 있도록 설계한 진열장, 셋째, 보고 싶은 부분을 확대해서 볼 수 있는 돋보기와 같은 기구나 장치 등. 이번 전시에서 이 세 가지 조건은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고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세 번째의 것으로 삼성이 갖고 있는 디지털 기술을 십분 발휘한 것이었다. 그림 뒤편 상단에 커다랗게 설치된 높은 해상도의 모니터는 실물 앞에 놓여있는 태블릿의 터치에 따라 자유롭게 확대되고 축소된다. 이번에 처음 소개된 <동가반차도(動駕班次圖)>에도 이 장비를 적용하였는데, 그림에 등장하는 작게 표현된 인물들이 많게는 수 십 배의 크기로 확대되면서 선명한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왔다. 더욱 생동감 있는 모니터 이미지에 금방 적응되자 실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물을 앞에 놓고도 복제된 이미지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서울아트가이드 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