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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MæSS_山水火風 (미술공간現 기획공모전)아브 그라이브 스캔들 이후의 회화
MæSS 연작에 관한 연구 MASS & MESS MæSS는 최근 몇 년간 진행 중인 회화작업의 주요 타이틀이자 핵심주제이다. MæSS는 1) mass(군중/다수/덩어리)와 2) mess(혼란/카오스/엔트로피)의 합성어로 의미는 서로 다르나 발음이 같은 단어이다. 이는 기표의 다중적 해석(multiple interpretations)을 꾀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로써 인간을 포함한 우주 자연의 ‘한 덩어리 의식(oneness)’을 중심주제로 삼는다. 山水火風은 부주제로서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연구하고 있는 소재이자 주요 개념을 함축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이중적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동양예술의 진미인 1) 山水畵 양식을 의미하고, 둘째는 불가사상에서 말하는 인간과 우주를 구성하는 사대요소인2) 地. 水. 火. 風을 의미한다. 이번 “MæSS_山水火風”展은 이전 작업에서 주로 다뤄왔던 萬物制動과 萬物流轉 사상을 바탕으로 하되 좀 더 심도 있게 연구하기 위하여 ‘산수화풍’이라는 구체적인 개념을 도입하였다.
MæSS의 주요 화두는 ‘인간과 자연/환경’이다. 역사 이래 끊임없이 발생하는 전쟁, 테러, 폭력, 그리고 자연재해 등은 개인의 의식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 집단의식에도 지울 수 없는 기억이나 상흔을 남긴다. 이는 나아가 미래의 개인과 집단 정체성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사회적 외상(social trauma)’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미디어를 통해 더욱 빈번하게 접하는 일련의 사건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천재지변(지진, 화산, 태풍, 쓰나미 등)을 보면서,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중적 본성, 삶의 터전인 환경문제, 그리고 인간과 자연/환경 사이에 내재한 복잡하면서도 필연적인 공생관계 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MæSS 연작을 통해 개인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받는 심리적 외상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후, 이것이 어떻게 집단 사회적 외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자 한다. 즉, MæSS 연작은 이에 대한 예술적 반성의 표현이며, 상징과 은유를 통해 제시된 시각적 고찰이다.
Abu Ghraib & Human Pyramid 화면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인간이다. 무수한 인간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써의 자연을 형성한다. 이중관점(dual perspectives)과 스케일(scale)이라는 시각적 방법론을 이용하여 인간, 자연/환경, 그리고 사회구조와의 복잡하고 밀접한 상호관계를 설명한다. MæSS 연작에서 쓰이는 인간형상은 2004년 이라크전쟁 당시,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아부 그라이브 포로학대 스캔들(Abu Ghraib detainee‘s scandal) 사진으로부터 차용되었는데, 이는 지난 10여 년 간 내가 미국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경험했던 가장 충격적이고 트라우메틱한 사건이었다. 발가벗겨진 채 쌓아올려진 인간피라미드의 사진을 매스미디어를 통해 처음 마주한 순간 느꼈던 수치감, 모멸감, 분노, 슬픔 등 매우 복합적이고 아이러니한 감정들은 단순한 감정의 동요를 넘어 심각한 내적 분열을 일으키고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는 심리적 외상을 입혔다.
또한 이 사건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보편적 도덕성과 믿음체계에 대한 의구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내면의 질서를 되찾기 위한 방편으로 읽은 철학서 중에 마틴 하이데거의『시간과 존재』는 당시의 고민과 질문들에 대한 답을 주고, 새로운 가치체계를 구축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현존재’와 ‘세계-내-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구조의 이해와 ‘자아-타자-대타자’에 대한 인식의 확장에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MæSS라는 새로운 작업세계가 열리게 되었다. 다분히 개인적인 심리적, 정신적 외상에 대한 고민과 질문, 그리고 치유로부터 시작 된 MæSS 연작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좀 더 보편적이고 집단적인 질문, 즉 인간의 다중적 본성과 동시대의 환경문제와 관련된 인간사 전반에 대한 주제로 진화하게 되었다.
불의 정신분석 2010년까지 선 보였던 MæSS 연작이 주로 ‘한 덩어리 의식’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 인간과 자연의 공생관계를 생성, 소멸, 변화, 순환하는 우주자연의 기본 원리에 입각하여 시각조형언어로서 탐구하였다면, 이번 MæSS_山水火風 연작은 이러한 사상을 근간으로 하되 地. 水. 火. 風이라는 사대요소를 도입하여 각 요소를 인간의 본성과 연계하여 좀 더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이번 작업에서의 두드러진 변화는 붉은 색의 전면적 사용이다. 붉은 색은 불과 열을 의미한다. 체온이 일정 수준 이하 또는 이상일 경우 인간은 죽는다. 그러므로 열은 실체의 풍부함과 영속성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증거이자 생의 강도, 존재의 강도를 파악할 수 있는 척도이다. 불은 인간의 감정 중 뜨거운 감정, 즉 본능, 욕망, 욕구 등과 관련이 있다. 무언가 원초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과의 충돌이 존재한다. 10여 년간의 외지에서의 삶을 접고 귀국한 지 어느새 2년. 물리적 공간의 이동은 심리적, 정신적 변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고, 이로 인한 또 한 번의 내적 혼란과 분열, 그리고 재귀현상을 체험한다. 마치 오랜 시간 사유공간에서 떠돌다가 이제야 비로소 땅에 발이 맞닿는 현실공간으로 들어 온 느낌이다.
귀국 이후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감정의 변이에 관심을 두고, 이를 맨 처음 아브 그라이브 인간피라미드 사진을 대면했을 당시에 체험했던 복합적인 감정들과 연계하여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시도하였다. 단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받았던 그 복합적인 감정들은 어쩌면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근원적 본성이 아닐는지. 작품 속의 붉은 색은 관람자로 하여금 원초적인 감정과 본능을 일으키게 하는 수단이며, 아래로 흐르는 수직방향의 선들은 시간의 부식성과 중력에 저항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은유적으로 암시한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고대의 철학자나 연금술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온갖 광기어린 상상과 꿈 등을 대지, 물, 불, 공기라는 4원소에 입각하여 분류하였는데, 그의 저서『불의 정신분석 La psychanalyse feu』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불에 의해 모든 것이 변한다. 모든 것이 변하기를 바랄 때 사람들은 불을 부른다......불에 의한 현상은 다른 어떤 현상보다도 감각적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잘 감시해야 하는 현상이다. 그것을 활활 타오르게 하거나 아니면 시들하게 가라앉혀야 한다. 어떤 실존을 표시하는 사랑의 순간(instant)처럼 어떤 실체를 표시하는 불의 점(point)을 포착해야 한다.” 이렇듯 불은 죽음과 생명의 이중적 속성을 지니며, 다른 무엇보다 예민하면서도 실체의 내면 깊은 곳에 흔적을 남기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다.
서두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MæSS연작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한 덩어리 의식(oneness)’이다. 하지만 그 외 관람자로 하여금 기표의 다중적 해석을 유도하고자 mass와 mess를 합성하여 새로운 복합어를 만들었다. 현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관계망(network)이 강조되는 시대이다. 최근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SNS(Social Network System)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망이 서로 얽히고 섞여서 마치 거대한 초생물체를 형성하는 것 같다. 그 무엇도 어느 누구도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모든 우주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엔트로피와 같은 혼란, 마찰, 무질서의 현상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사회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엔트로피』에서 이러한 개념(제 2열역학법칙 또는 엔트로피 법칙)이 어떻게 사회문화현상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말한 바 있다. 즉, 엔트로피는 파괴와 구축이라는 양면성을 띠는데, 모든 것은 효용성의 문제가 있을 뿐 한 방향만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MæSS 연작은 이러한 속성, 즉 양가성(ambivalence)을 전제로 한다.
인간의 이중적 본성은 물론 전쟁의 양면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최초의 인간피라미드를 드로잉한 후 복사기를 이용하여 끊임없는 반복과 축적의 단계를 거쳐 복제하는데, 이 과정에서 파괴(destruction)와 구축(construction)이라는 두 가지 속성이 드러난다. 이렇게 복제된 이미지는 콜라지 기법을 통해 또 다른 풍경으로 재구성(reconstruction)되고, 이 지점에서 인간과 자연은 하나의 유기체 덩어리가 된다. 자연은 인간으로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변환하는 순간과 과정만이 존재한다. 경계는 모호하다. 과연, 인간이란 존재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와 같이 단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다른 유기물과 별반 다름없는 유한한 생명체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좀 더 이성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인가?
2011년 송창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