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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미디어, 사운드, 장치, 공간 등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예술 작품들을 통해 현재 혹은 미래의 첨단 테크놀로지로서의 스틸아트의 확장된 의미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파라테크놀로지Para-technologies
-이상하고도 이로운 기술들이번 전시는 기술, 미디어, 사운드, 장치, 공간 등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예술 작품들을 통해 현재 혹은 미래의 첨단 테크놀로지로서의 스틸아트의 확장된 의미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전시의 주요 키워드인 파라테크놀로지Para-technology는 기존의 기술에 기생하는 테크놀로지로 관습적인 기술체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변이, 생성시켜 또 다른 기술을 파생케 하는 개념이다. 주류 정상과학이 가진 시스템의 틈바구니에 자리를 틀고, 무언가 새로운 유효성을 끊임없이 창안하는 테크놀로지인 것이다. 그렇기에 기술의 위계를 결정하는 일반적인 잣대인 경제성이나 유용성에 따른 가치평가에서 자유롭고, 주류 기술의 지향이라 할 수 있는 기술만능주의나 결정론과도 다른 지반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색다르고 별난 가치에 목숨을 거는 기술들이다. 그리고 먼 훗날 새로운 패러다임의 조건이 만들질 경우 또 다른 과학으로 자리를 틀수 있을 만큼의 잠재적인 유용성을 가지지만 아직은 미처 사회적 공인을 받지 못한 기술이고, 상식적인 용도와 기능을 갖지 않아 언뜻 이상해보이지만 미적인 기능과 감성적인 유용성을 갖고 있어 우리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도 있는 테크놀로지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하고도 이로운 기술들異技利術인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기술들이 때로는 넓은 의미의 예술 개념과 겹쳐진다는 면에서 흥미롭기도 하다.
예술art은 라틴어ars에서 유래한 말이고, 희랍어인 테크네를 번역한 말이다. 테크네는 법칙에 입각한 합리적 제작 활동 전반을 의미했는데 넓은 의미의 솜씨, 즉 물품 가옥 배 침대 옷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솜씨뿐 아니라 군대를 통솔하고 토지를 측량하고 심지어 청중을 사로잡는 웅변술까지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만큼 다양하고 넓은 쓰임을 갖고 있었다. 오늘날의 파인아트로 한정된 예술 개념은 물론 생활의 달인들이 갖고 있는 그 모두, 다시 말해 일상의 안팎에서 거시적인 삶의 영역까지 아우르는 삶의 소소하고 미시적인 것 모두에 영향을 주는 것까지 포함했던 것이다. 이러한 광의의 예술 개념이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파라테크놀로지 개념과 연결된다. 파라테크놀로지는 거창하고 대단한 기술들이라기보다는 삶의 미시적이고 감성적인 영역에 자리하여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서도 작동하는 감각-테크놀로지라 할 수 있는데, 예술적인 효과를 작동하는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기능성을 가지게 될 경우 예술로 묶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감성테크놀로지라는 면에서 개인의 내면화된 실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미셀 푸코가 말하는 자아의 테크놀로지 개념이 그러한데, ‘개인들이 특정한 상태의 행복, 순수함, 지혜, 완전함, 혹은 불멸성을 획득을 목표로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혹은 타인의 도움을 얻어 그들 자신의 육체와 영혼, 사고, 존재방식에 특정의 작용들을 일으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실천’ 역시도 또 다른 의미의 테크놀로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파라테크놀로지는 미적 기능을 파생케 하는 테크놀로지를 포함하여 우리의 삶을 더욱 낫도록 만드는 실천들이며 그렇게 더 나은 심미적인 삶에 대한 요청을 가능케 하는 기술들이라 할 수 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각 시각, 사운드, 미디어, 기계 등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다채로운 효과를 작동시킨다. 남지의 기계 작업은 기계의 일반적인 유용성을 벗어나 개인의 내밀한 심리와 욕망을 포함하여 사회적 관계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사유를 담아낸다. 아울러 부단히 다른 담론들과의 접합을 통해 이들 감각 테크놀로지의 문제가 물리적인 시공간을 벗어난 감각장치일 수 있음을 색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미적인 기능을 파생시키는 작품-기계인 셈이다. 컴퓨터 엔지니어이자 조각가로서 정교한 기계-전자적 장치를 실험하는 이장원은 자연과 테크놀로지, 가상과 실재의 영역을 예술로 끌어들인다. 버려진 CD_ROM 드라이브와 센서, 복잡한 전선들을 활용한 설치로 관객의 움직임과 작가의 프로그래밍을 무작위로 결합시킨 이번 작업은 SF 영화 속에 나올법한 기괴한 조각적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마치 살아있는 기계-생명이 작동하는 것처럼 또 다른 차원의 자연의 원리를 향해 나아간다. 홍성철의 신체의 이미지를 사진에 담아내어 이를 줄String 위에 프린트 한 후 여러 겹의 레이어로 재조합한 〈String-Mirror〉 시리즈는 독특한 시각테크놀로지를 작동시킨다. 거울효과와 착시현상, 입체적인 조형 이미지가 묘하게 결합된 이 작품은 사진적 이미지를 담아낸 각각의 줄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공간 속의 시각적 움직임과 착시에 의한 동적인 파동을 만들어냄으로써 이미지 효과를 발휘한다. 특히 이 작품은 관람객의 시선을 참여시켜 끊임없는 상호교차를 통해 작품이 완성되기에 아날로그적이지만 디지털 한 감성조차 느끼게 하는 일종의 인터랙티브한 작업이기도 하다. 우주+림희영은 의뭉스러운 몽상가처럼 부단히 엉뚱하고 기발한 기계 장치를 만들어냄으로써 현실과 판타지가 교차된 내러티브의 세계를 구동시킨다. 이들 기계장치들 역시 현실적인 유용성을 만들어내는 테크놀로지라기보다는 유쾌한 상상과 정서적 효과를 작동시키는 별난 기술들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의 입구 탐지기를 위한 조타장치>는 세계의 입구를 탐지하겠다는 야심에 찬 상상을 위한 장치이고, <나이스엔진>도 상상 동물인 용의 꿈틀거리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판타지를 유도하는 작품들인데, 작가들이 현실 속에서 꿈꾸는 수다한 공상들은 이러한 기계를 만들기 위해 그려놓은 숱한 드로잉 작업과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설계도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정태섭은 가시광선에 의존하는 일반적인 시각을 넘어 X-레이에 의해 투과된 비가시적인 다양한 사물의 내부구조를 표현한다. 작가가 가시화시키고 있는 것은 단순히 보여 지지 않은 사물의 이면만이 아니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려하는 미학적 시선에 의해 포착된 생명과 자연의 내밀한 질서들로, 작가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 세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테크놀로지와 결합된 시각 이미지 작업은 다시 렌티큘러 3D 등과 같은 부단한 실험으로 이어져 진지한 작가적인 실천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학승은 단순히 소리를 시각화시키는 것 이상으로 소리와 연동된 신체의 감각 지각으로 이어지고 사회적 의미의 관계망으로 나아간다. 소리를 미디어 기술로 활용하여 작가의 다양한 문제의식을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양수 속에서>는 퍼포먼스와 결합된 작업으로 인간 신체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작업이다. 물속에 밀폐된 존재는 서서히 자신의 신체가 내는 소리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근원적인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소리약>의 경우도 실재 치료의 기능을 수행하지는 않지만 약이 각각의 음이 신체의 각 부분을 치유할 것이라는 작가의 소망과 믿음을 전하는 것 만 같다. 김영섭은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사운드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들 소리들은 작가의 말처럼 도시사회의 문화적 잉여물들로 도시의 또 다른 이면이라 할 수 있는 욕망과 무의식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작가는 이를 가시화, 무대화시킴으로써 현대적 삶의 부조리한 일상과 낯선 정황들을 전한다. 일종의 오브제화된 소리-설치인 셈인데, 작가는 이를 통해 도시가 품고 있는 다양한 표정을 펼쳐 놓는다. 한진수는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다.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사물에 내재한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의미이며,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 변주된 존재의 본질에 대한 것들이다. 그렇기에 복잡해 보이는 기계장치들은 어떤 유용한 효과를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말처럼 천국과 지옥 사이의 경계지대, 중간계인 림보(limbo)의 영역에서 작동되는 개념들이고 정서효과들이다. 때로는 작가의 개별적인 경험 속에서 사회적 시스템의 복잡하기만 한 사유들이 녹아있기에 그의 기계들은 복잡해 보이는 외관 이상으로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가시화시킨다. 박준범의 미디어 작업은 미디어아트가 가진 흥미로운 속성을 활용, 자신만의 독특한 기술을 활용하여 영상을 만들어낸다. 이번에 전시되는 두 작업은 동일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the occupation 2〉가 사진적 이미지의 원근법적 왜곡을 활용하여 작가가 마치 조물주처럼 공간을 만드는 것 같은 착시를 주는 영상이라면 〈Strong piety〉는 (조물주의) 명령에 따라 교회의 구성요소를 직접 만드는 작가의 퍼포먼스가 전면에 드러나는 작업이다. 서로 다른 두 작업이지만 미디어를 대하는 특유의 방식이 교차되고 있어 작가가 기술로서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업들이라 할 수 있다. 최종운은 고요함과 긴장감이 동시에 공존하는 순간들에 주목한다. 일상의 미세한 움직임에서 거대한 자연의 움직임이 전하는 다양한 감정을 기술적 장치를 통해 구현하는 것이다. 작가가 활용하는 기술 장치는 공간 전체로 확장되는데, 관람자의 내밀한 감각과 공간의 긴장감을 충돌시켜 밀도 있는 공감각을 만들어 낸다. 결국 작가는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보이지 않는 내면의 긴장감과 공간을 가득 메운 감각화 된 공명을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임창민은 인간적 현존의 문제를 독특한 비디오 설치 작업을 통해 가시화시킨다. 이번에 선보이는 〈mind control 5-2, 5-3〉은 굴레와도 같은 삶의 한계 속에서 쳇바퀴를 돌 듯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지만 다시 반복하고야 마는 실존의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한계 속에서 돌고 도는 갇혀진 인간 존재의 어떤 상황을 담아내는 것이다.
소리와 움직임을 형상으로 구현하고 있는 노해율은 자연적인 메커니즘과 공학 장치 등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Moveless-white field〉는 움직임과 정지 사이의 긴장 속에서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내어 구동되는 작품이다. 정적인 움직임이라 할 만한 우리 안의 변화무쌍한 내면의 움직임은 물론 공간을 가득 메운 설치된 작품들을 통해 느껴지는 삶의 리듬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관객과의 흥미로운 소통을 통한 삶의 활력을 전하려 하기에 이 작품에 구동된 기술이야 말로 더 나은 삶을 향한 테크놀로지의 건강한 모습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테크놀로지 개념을 예술의 문제와 교차시켜봄으로써, 기술로 작동하는 풍부한 예술의 잠재적인 가능성과 현재 혹은 미래의 기술 발전을 추동하는 실험적인 예술과 과학이 갖는 창의성의 문제를 숙고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파라테크놀로지는 이렇듯 기존 과학체계의 틈바구니에서 과학이 가진 창의적인 상상력의 추동력이 되어 미래의 더 나은 삶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다채로운 잠재력을 가진 테크놀로지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쾌한 과학이라 할 수도 있는데, 유쾌한 과학은 예술의 또 다른 본령이고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이끄는 매력적인 동인이다. 그렇게 이번 전시는 테크놀로지의 의미와 가치를 사회의 일반화된 잣대와 연관된 유용성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예술의 문제와 함께 고민해봄으로써 테크놀로지가 더 열려진 세상을 위한 잠재된 가능성으로, 더 나아가 삶의 다양한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적극적인 의미에서 폭넓은 아름다움을 위해 자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마치 예술이 우리의 삶에 그렇게 미묘하지만 의미 있게 묘한 영향을 미치듯 말이다.
-포항시립미술관 민병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