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물처럼 스미는 자극, 깊은 공감을 남기다개인끼리 소셜 네트워크가 가능한 현 사회는 개개인의 존재가 더 중시되어지는 반면 사회적 영웅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든 손쉬운 타인과의 접촉이 ‘막힘없는 자유로움’을 주기 보다는 ‘자신은 상대를 볼 수 없지만 상대방은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유리 상자’에 갇힌 느낌을 종종 받게 한다. 그리고 누구나 이 불편한 자유는 벗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으로 이어진다. 열린 것 같지만 닫혀 있고, ‘보는 자’가 ‘보여 지는 자’로 전락하는 미로에서 출구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할까 자못 의문스럽다. 때때로 우리는 객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 스스로 해법을 찾게 된다. 우리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투사할 수 있는 예술은 덧씌워진 논리나 가치관으로 웅변하지 않고 우리의 일상적 삶을 진솔하게 드러나게 하는데, 이처럼 삶을 거짓 없이 비추는 역할을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꾸준하고 역량 있는 작업으로 이번 <빛 2011>에 초대받은 작가 7명(류현욱, 서희화, 신창운, 신호윤, 이광기, 이후창, 전범주)은 일상의 삶을 각자의 시선으로 붙잡아 보여주는데, 작품에는 어떤 공통된 일면이 있다. 이들 작가들은 표면적으로는 잘 계산된 프로그램으로 돌아가게 보이는 사회가 실은 많은 모순과 부조리를 내장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사람들 의식의 흐름이나 부유하는 현상들을 각자의 영역에서 개성 있게 조명한다.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거나 천진하게 다가오는 이들 작품들은 결코 고발자처럼 직설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생각게 하는 여유를 부리게 함으로서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빛 2011>에 전시된 작품은 회화, 조각, 설치,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이들 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동안 어느 틈에 우리는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고, 현 사회의 부조리한 일면을 더듬고, 산업폐기물이 다시 아름다운 대상으로 역전되어지는 과정 등을 경험하게 된다. 현재 무수한 전자 메세지와 폭주하는 정보에 노출되는 우리는 웬 만큼의 자극으로는 역치에 이르지 않게 되었지만,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눅진하게 스며드는 자극은 어떤 전기 충격보다도 더 강렬하게 남아 생각의 고리를 새롭게 연결시킬 것이다. 7명의 청년작가들이 앞으로 또 어떤 변화된 작품으로 우리의 인식 태도에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인가 자못 흥미롭게 기다려진다.
황유정(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작가
류현욱은 서로 다른 layer들을 교차시키는 에어 페인팅(air painting) 작업으로 중층적인 의미와 표현을 의도한다. 이 방식은 재료의 성격과 본성이 표면에 밀착되지 않는 부유하는 듯한 허무함을 내보이는데, 역사의 한 시점이나 개인의 기억 등에서 이끌려 나온 이미지들이 부유하듯 흩어져 있는 화면을 구성하기에 더 없이 적절하다. 작가는 이러한 기억의 분절, 함몰, 파괴의 과정을 통해 의미의 객체화와 재생성, 확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작가
서희화의 작품은 정크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버려진 플라스틱 쪼가리, 인형 등이 여러 방법으로 조합되고 채색되면서 원래의 기물적 속성은 사라지고 엉뚱하고 기발한 하나의 새로운 사물이 드러난다. 작가만의 뛰어난 해학적 표현은 공터의 잡동사니마저 사랑스러운 오브제로 탈바꿈 시키는데, 변용이 너무 신선해서 그 변화가 보여주는 사실관계의 왜곡은 미처 생각나지 않게 만들 정도다. 폐기된 욕망에서도 희망적 기운을 끌어내는 작가의 힘이 감탄스럽다.
작가
신창운은 작품을 통해 동시대인들의 욕망과 불안한 심리를 표현한다. 인간이 꿈꾸는 욕망은 이룰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인데,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가중된다. 사람들은 현실세계의 고통과 정신적 공허를 소비와 과시를 통해 충족하려는 듯 보이지만, 소비는 돈을 필요로 하고 돈은 육체적 고통을 요구하며 과시는 허망함만을 남길 뿐이다. 작가에게 작업은 바로 구도(求道)의 길이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성찰해 보기를 제안한다.
작가
신호윤은 종이를 재단하여 길게 늘어 뜨려진 거대한 꽃이나 부처형상, 동물형상 등을 작업한다. 화학적 재료가 난무하는 현대 물질문명 시대에 뒷자리로 밀려나 있는 종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자로서 부적응 상태에 놓여 있는 예술가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이는 견고하고 사용하기 편리한 매체가 넘쳐나는 요즈음, 신호윤이 굳이 종이를 고집하는 이유다. 작가는 종이를 오려서 만들어낸 거대하고 웅장하지만 불안한 형태를 통해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작가
이광기는 사회의 부조리한 일면을 위트 있는 감각으로 포착하는 것이 특별하다. 우리 사회의 모순적인 구조나 방기된 현실, 가치들이 뒤범벅 된 세상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하는 설치물이나 영상을 제시하여 관심을 끌어내고, 신선한 전달력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환기시킨다. 이때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사람의 찰나적 인식이다. 의식하거나 무의식 상태에서도 일어나는 사람의 인식은 학습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지만 찰나적인 것의 집합이므로 인간의 인식은 객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작가
이후창은 ‘유리’라는 독특한 재료로 조각을 한다. ‘유리’라는 소재의 물성적 이중성은 인간형상의 내부에서 또 다른 타자가 대상을 응시하는 시선을 표현하기에 참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리’는 정신적으로 비인간화 되어가는 인간의 내면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재료로 선택한 ‘유리’를 통해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유성을 찾고자 집요한 탐구를 한다.
작가
전범주 작품세계의 골격을 이루는 ‘타자성’은 대상(객체)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주체를 통해 부여된 대상의 고유한 아이덴티티와 대표성․ 동일성은 사라지고 비합리적인 여러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타자성’을 동인으로 사회의 보이지 않는 모순, 편견, 지배구조 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 작가는 영상작업이나 아크릴 블록 작품을 통하여 사회전반에 걸친 부조리한 현상들에 대한 표출을 의도하며 폭력적 거대 질서에 대한 저항을 끊임없이 시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