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이명화는 인적이 드문 산과 들에 가야 볼 수 있는 엉겅퀴를 모티브로 삼는다. 엉겅퀴는 고고하지만 한편으로 정이 그리워 사람들의 시선에 잘 띄도록 더운 여름에도 꼿꼿하게 머리를 들고 있는 꽃으로 이명화에게 각인되어 있다. 작가가 쓴 ‘소멸, 그 아름다움’이란 글에는 그런 생각이 잘 담겨 있다.
이명화 엉겅퀴 이야기이명화는 인적이 드문 산과 들에 가야 볼 수 있는 엉겅퀴를 모티브로 삼는다. 엉겅퀴는 고고하지만 한편으로 정이 그리워 사람들의 시선에 잘 띄도록 더운 여름에도 꼿꼿하게 머리를 들고 있는 꽃으로 이명화에게 각인되어 있다. 작가가 쓴 ‘소멸, 그 아름다움’이란 글에는 그런 생각이 잘 담겨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산길, 타는 듯한 햇볕이 내려 쬐는 길가에 핀 엉겅퀴를 본적이 있는가? 타는 듯한 太陽 아래서 가시를 달고 있는 짙푸른 이파리, 붉은 용암이 솟아 나오는 듯한 요염한 불꽃 같은 꽃, 꺾이지 않는 농염하고 도도한 아름다움에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이명화는 유년시절 경상북도 안강이란 마을에서 자라나 어렸을 적부터 산과들의 자연물들을 벗삼아 지내왔다. 초등학교 때 그곳을 떠나왔지만 언제나 그의 가슴속에는 마을 앞 방죽에서 뛰어 놀았던 즐거운 추억과 철 따라 산과 들에 피어났던 들꽃들이 오롯이 남아있다. 안강은 추억의 원본이자 순결한 냄새가 풍기는 곳이다. 그의 그림은 이처럼 고향에 관한 추억에서 싹을 틔우고 또 길어 올려지고 있다.
그의 작품을 추적해가면 그의 심상을 파악할 수 있는데 가령 2002년에는 야생화를 비롯하여 해바라기, 맨드라미 등을 다루었고, 2004년에는 늘 푸른 소나무, 2005년에는 마음에 새겨져 있는 꽃들을 정물로 표현하였다. 2009년에는 꽃으로 의인화 되는 여성 그 자체를 나타내는 장신구를 다룬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대부분의 테마는 마음에 남아있는 고향과도 같은 꽃과 자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번 전시의 작품 역시 엉겅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엉겅퀴는 작가가 오서산, 칠장산, 칠보산, 군자산, 속리산 등지를 산행하면서 만난 것들로 강렬하게 마음속으로 헤집고 들어온 엉겅퀴와 그 당시의 산의 느낌과 영원처럼 남아 있는 고향의 느낌을 오버랩 시켜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의 엉겅퀴는 대체로 흐릿한 풍경을 후경으로 삼고 있다. 산중턱 또는 정상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이랄 수 있으며 전면에는 예외없이 엉겅퀴가 자리잡고 있다. 작가는 엉겅퀴를 ‘요염한 불꽃같은 꽃’으로 묘사하였지만 사실 그 꽃은 가시가 나있어 만질 수 없으며, 이파리는 무슨 사연이 그렇게 많은지 톱날처럼 날카로운 돌기로 보는 사람에게 경고신호를 보내고 있다.
거센 바람과 찬공기에 시달리고 움추리며 살아오면서도 연분홍꽃을 피어낸 엉겅퀴, 그러기에 엉겅퀴의 존재는 더없이 귀해 보인다. 핏빛 면류관을 둘러쓴 엉겅퀴는 우리에게 아픔 없이 사랑할 수 있느냐고, 눈물 없이 사랑하겠느냐고 되묻는 것같다.
그림에 핀 엉겅퀴는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그 삶의 여로를 돌이켜 보면 숙연해진다. 작가의 그림에는 황금기를 보낸, 하얀 보풀이 휘날리는 엉겅퀴도 자주 눈에 띈다. 흰털에다 씨를 실어 주위로 날리며 겨울채비를 서두른다. 가을의 엉겅퀴는 그야말로 추레한 모습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명화가 초라한 엉겅퀴마저도 주목하는 것은 그것의 장렬한 죽음속에서 다음 생명을 위한 고결한 희생정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작가는 한때는 영화로왔으나 이제는 시들어 보잘것없이 되어버린 꽃속에서 ‘한 가닥의 진실’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작가는 담백하고 소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엉겅퀴의 화려한 겉모습 대신 그는 자신이 잉태한 씨앗을 마지막 한 털까지도 바람에 멀리 날려보냄으로써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자기비움과 희생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절제된 색감을 통해 소멸의 아름다움이 지닌 가치를 전달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의 작품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기법상의 문제이다. 덧칠하여 형태와 색채를 완성해 가는 이전의 유화작품과는 달리 터치와 물감 자체의 질료감을 매우 중요시 된다. 동일한 물감이라도 물감의 양과 건조시키는 시간의 차이점을 생각하고, 테레핀 같은 종류의 용매제를 사용하지않고 물감 그대로의 날것만을 캔버스에 올리는 기법을 사용한다. 그러면 물감이 화면에 고착화되지 않고 그대로 점성을 지니게 되는데, 그러한 물감의 특성을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어 간다. 물감의 점성은 건조되는 시간에 따라 완성되어지는 최적화의 조건을 만들어 준다. 이런 정지작업을 한뒤에 찍는기법으로 형태를 만들어간다. 즉 붓의 모서리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에 도장을 찍듯이 그런 행위를 무수히 반복하여 만들어진다.. 따라서 그림은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붓 자국에 의한 흔적이다. 이러한 ‘내려찍은’ 붓으로 꽃과 줄기, 이파리를 완성시키게 된다.
그의 그림을 단순한 풍경화로 본다면 올바르게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작가가 기용한 형태는 상징성을 띤다.
엉겅퀴는 ‘기다림’과 희생‘과 같은 덕목을 함축하고 있다. 영롱한 꽃은 생명의 충만을, 가시는 인고의 세월을, 하얀 보풀은 자기희생을 각각 뜻한다. 대상을 아름답게만 바라보는 표현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 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외부의 손길을 거부하고 온 몸에 갑옷을 두른 채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엉겅퀴가 이처럼 꿋꿋하게 자라올 수 있었던 것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는 백화난만한 ’영원한 계절‘ 을 맞이하겠다는 소망, 바로 그것이 엉겅퀴를 이토록 강인한 존재로 만든 것은 아닐까.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