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아트가이드 5월호 Vol 113호
“인간이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이미 왜곡은 시작됐다.”
이 말인즉,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자들의 ‘해석’이라는 일종의 가공 단계를 거쳤음을 의미한다.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가지는 주관성에 대한 논제는 이미 사회 전반에 걸쳐 누누이 거론된 바 있다. 새삼 이 글귀에 눈길을 멈추게 된 계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연유에서 비롯됐다.
연구소는 매달 서울아트가이드를 발행하는 편집업무와는 별개로 미술자료를 수집,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전, 연감, 자료집 등 2차 학술자료를 만드는 등 다양한 업무가 주어진다. 이처럼 기록과 가공이란 업무상의 간극은 매달 편집기간 때마다 ‘가공과 기록의 딜레마…’ 라는 해답없는 의문을 머릿속에 던져주곤 사라진다.
모든 출판사, 잡지사가 그렇듯 그 나름의 표기 기준과 형식적 규정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니 기록을 바탕으로 하는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종의 가공과정을 거쳐 2차 저작물을 생산해 낸다. 서울아트가이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보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가공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편집업무 이외에 작가·전시정보 등을 조사하다 보면 표기방식에 있어서 가공이란 과정을 거치면서 야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 부딪치게 된다.
예를 들어 A작가의 정보를 조사한다고 가정할 때 우선 관련 도서·전시도록·신문·잡지 등 다양한 1차 문헌을 통해 정보를 취합한다. 문제는 문헌마다 제목이나 기타 정보가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A작가의 경우 3권의 문헌에서 작품제목이 모두 다르게 표기된 사례도 있었다. 이런 경우 난감하기 그지없다. 뿐만아니다. 전시경력의 경우 전시명이 다르게 표기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수상년도의 경우 수상 선정과 시상 시점에 따라 문헌상마다 1년 정도의 오차는 감안해야만 한다. 기준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문헌마다 다르게 표기된다.
이처럼 가공이란 단계를 거치면서 변형되는 기록들을 보면서 의문이 생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무엇이 정도(正道)일까?라는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흔히 문헌에 남아 있는 기록들은 ‘사실’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기록들은 가공단계를 거쳤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확한 검증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역사를 왜곡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술과 IT기술이 접목되면서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공유·가공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만큼 정보의 왜곡과 오류의 가능성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아가 수많은 정보 속에서 이를 판단·선별해 받아들이는 신중한 태도가 요구되어 진다.
- 김달진미술연구소 편집부 조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