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호
서울 지붕 첫 마을, 성북동 옛날 사진전
2013.9.13(Fri) ~ 9.29(Sun)
기 획 : 스페이스 오뉴월, 시인 최성수, 작가 윤가현
주 관 : 스페이스 오뉴월, 성북동천
후 원 : 성북구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최순우옛집
전시 소개
성북동 발견, 도시 마을의 귀환
마을이 귀환한다. 재개발 광풍과 뉴타운 정책의 좌초를 겪은 삭막한 서울 도심에 텃밭이 생겨나고 푸성귀가 자란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마을 활동이 늘면서 서울시는 9월 27일 서울광장에서 ’2013 서울 마을박람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성북동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도시 마을’의 모델이다. 서울 지붕 밑 구릉지에 부촌과 서민 동네가 공존하지만 토박이들의 자부심과 예술을 품은 여유가 사이 좋게 흐른다.
재개발의 상처에 대처하는 공공 예술의 자세
성북동 옛날 사진전은 이 같은 성북동의 옛 모습과 토박이 주민들의 빛 바랜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전시다. 성북동의 역사와 함께해온 주민들이 손수 꺼내온 사진을 모으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또 성북동 출신 작가가 참여해 수집된 사진을 활용한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성북천이 복개된 직후의 모습이 담긴 사진, 고사리 손으로 만든 20년 전 성북동 명소 스크랩북 등 전시된 사진들을 보며 성북동에서 벌어지는 재개발, 역사문화지구 추진 등으로 갈등을 겪는 이들도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자리가 되도록 의도된 작업이다. 이는 ‘동네가 품은 갤러리’로서 스페이스 오뉴월이 추구해온 공공예술의 일환이기도 하다. 주민과 함께 기획한 전시이기에 정책과 시정이 풀 수 없는 미시적 상처까지 보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는 글
성북동 골목 사람들의 기록
최성수(시인/성북동 주민)
몽골 여행을 하다 보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눈부신 풍경을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나무 한 그루 없이 온통 초원으로 이루어진 구릉과 그 구릉의 발치쯤에 나직하게 자리 잡은 몽골의 전통 가옥 게르 몇 채가 그것이다. 쪽빛 하늘에는 몇 점 구름이 떠 있고, 초록 구릉과 어울려 마치 수천 년 전부터 풍경처럼 거기 있었을 듯한 게르는 몽골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사람이 만든 집인 게르가 어떻게 저토록 자연과 하나 되어 어울릴 수 있을까? 그것은 게르가 초원의 구릉과 서로 버성이지 않고 어울리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르는 구릉의 능선을 집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게르의 지붕과 구릉의 능선은 느긋하고 둥글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억압하지 않고 서로 조화로이 존재하기에 그토록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어둑발이 내려앉는 초저녁, 성북동 골짜기에 들어서면 양쪽 능선이 천천히 어두워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둠은 마을의 아랫도리부터 점점 물들이며 산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다가 마침내는 수묵화의 붓 자국처럼 하늘과 맞닿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없이 편안하고 쓸쓸하게 만든다. 성북동 사람들의 집은 그 어둠과 어둠 사이, 구릉에 숨어 있다. 성북동 역시 몽골의 게르처럼 자연과 사람의 집이 구릉이라는 자리에서 서로 어울려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어느 지역보다도 밀집해 있다는 문화재들도 그 어둠 속에서 집들과 하나가 된다. 그 순간, 진정한 문화재는 사람들과 집과 유적이 하나가 될 때 살아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성북동은 시간의 흔적이 머물러 있는 땅이 된다.
성북동은 양쪽 산과 그 사이를 흐르는 냇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골짜기 사이에 물이 흐르니 사람들은 자연히 산비탈 구릉에 기대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북동은 구릉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구릉이기에 앞집 지붕과 뒷집 마당이 어깨를 나란히 할 수밖에 없고, 비탈길과 골목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성북동은 구릉과 골목의 마을이다.
골목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얼마나 포근한가. 사람들은 아침이면 그 골목을 걸어 나와 일터로 가고, 저녁이면 그 골목을 걸어 집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은 골목에 모여 뛰어 놀고, 골목은 아이들에게 기꺼이 제 몸을 내어주며 자라게 한다. 성북동에서 골목은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이며,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고, 성장의 놀이터가 된다. 나 역시 그런 골목에서 자랐고, 골목을 나와 세상에 부대끼며 살았다. 그러니 골목은 성북동의 전부다. 구릉 때문에 골목이 생기고, 골목 때문에 성북동 사람들은 성북동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성북동에서 골목은 과거의 역사고, 현재의 일상적 삶이다.
<옛날 사진전>은 성북동의 골목으로 대표되는 성북동이 성북동다운 삶을 이어가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만든 전시회다. 성북동의 옛날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장롱 서랍에 깊이 감춰두었던 사진을 꺼내 툭툭 먼지를 털어냈고, 성북동에서 살아온 작가가 그 사진을 모아 기억 속의 골목을 재현해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성북동에서 살아온 주민이다. 그러니 이 사진전은 성북동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꾸며낸 성북동 사람들의 전시회인 셈이다.
성북동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성북동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전시회는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고, 현재에 올곧게 서는 일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의 자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 전시회는 성북동이 단지 행정구역 이름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에 희망의 땅으로 자리 잡기 바라는 힘찬 몸짓이다.
참여 작가 소개
작가 윤가현은 중앙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시카고 인스티튜트에서 석사학위를 이수했다. 조부인 고 윤중식 작가와 함께 성북동에서 살아온 토박이로, 성북동의 집에 관한 설치 및 영상 작업을 해왔다. 성북동에 위치한 스페이스 캔의 오래된 집 재생 프로젝트에 참가했고, 그림집(서울)과 프락시스 갤러리(시카고)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성북동 주민사진
윤가현 작품 이미지
성북동(Seongbuk-dong) | 110×73.33 (cm) | pigment print | 2013
성북동(Seongbuk-dong) | 110×73.33 (cm) | pigment print | 2013
성북동(Seongbuk-dong) | 110×30 (cm) | pigment print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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