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라
신종식 개인전
Bon Voyage the Forgotten City
2013.09.25.-10.13.
CSP111아트스페이스
‘안녕히!’ 한 마디 인사로 족하리. 영원한 ‘안녕!’
조성지 (미술비평, CSP111아트스페이스 디렉터)
“Bon Voyage! 안녕히!”
한 마디 가벼운 환송은 언제나 아쉬워 두 손 꼭 잡는 이별 장면을 연출하고야 만다. 두고 떠나는 마음도 인지상정인지라, 안 그래도 외따로이 낯선 미지를 향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크던 작던 꽤나 번거로운 짐을 앞세운 발길은 몇 번이고 시선을 되돌리곤 한다. 그래서인지 일단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성취와 해방감, 자유의 기쁨은 대단하다. 매순간의 만남, 사소한 대화에 단어 하나, 눈빛과 몸짓까지도 격한 탄식과 감동, 흥분, 넘치는 찬사와 의미의 세례를 아낌없이 내리는 관용을 베푼다. 혹여 빠뜨릴세라 잊힐세라 세심하고 성실하게 기록하며, 오래도록 간직하려는 온갖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만선어부의 보람인 양, 사진과 메모, 일기, 심지어 바리바리 챙긴 기념품까지 가득 담은 짐과 기다린 마음을 위한 작은 선물을 함께 풀어보는 즐거움까지. 실로 여행의 감흥은 비장한 결단과 어마어마한 여장(旅裝)을 여독(旅毒)으로 버텨내야하는 도전이자, 일상 복귀로 이어지는 강행군을 거듭하게 하는 힘이다. 안녕과 무사귀환의 기원에 절절함이 담길 만하다 싶다.
A castle.76.5 x 57 cm. water color on paper.2013
신종식 화백의 20-30대 프랑스 파리 유학시절, 고대 건축사를 공부하며 시작된 유적지들의 답사 여행도 그러했으리라. 실제로 90년대 후반까지도 그의 캔버스는 답사여행 당시의 기억과 인상, 감흥을 의욕적으로 기록하려는 열정으로 넘쳐난다. 어두운 바탕에 원시적 색채와 붓 터치의 거친 질감, 형상의 파편들이 전면(all over)에서 혼돈스럽게 분출하는 대형 화면은 답사 현장에서 유물을 첫 대면하는 순간의 탄성과 격앙된 감흥과 흥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답사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의욕적으로 기록하던 그의 열정은 점차 고고학자나 지질학자, 인류학자의 섬세한 손길처럼 이지적인 유형 분류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감상(感像)이 아닌 작가적 심상(心像)으로, 화면 안의 질서와 조화를 찾아 재구성하려는 새로운 열정이다. 이질적인 시공간의 파편들_해와 달, 물결과 비, 바람 등 자연 풍광과 고대 도시의 성곽과 기둥, 중세의 종교건축 등 인류 문화와 문명의 흔적, 달팽이, 암모나이트, 물고기 등의 화석 이미지과 항구와 등대, 나침반 등_은 나름의 유형과 의미 체계를 갖추며, 치밀하게 잘 짜 맞추어진 자연(스런) 풍경으로 옮겨졌다.
신종식 화백은 이번 전시 <Bon Voyage_the Forgotten City>에서 한결 차분해진 색조와 절제된 선조(線彫) 형상들로 시적 운율감이 감도는 고색창연한 옛 도시의 풍광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 앞서 올해 열린 뉴욕 개인전에서부터 아크릴과 오일의 대형 캔버스에서 수채와 릴리프의 10-20호 내외의 종이로 주 매체와 화면 크기의 변화가 눈에 띈다. 강렬한 인상과 감흥의 색과 질감, 그 위에 중첩된 형상들은 사라지고, 종이에 스며든 고요와 침묵의 색, 그 가운데에 (세필로 그리거나 종이의 수직면으로 릴리프 하여) 입사(入絲)하듯 세밀하게 그려진 정제된 형상_나무와 성(城), 제단과 성전(聖殿) 등_에 귀 기울이게 한다.
A guardian angel,76.5 x 57 cm. acrylic, water color on paper. 2013
신종식 화백에게 젊은 날의 유적답사와 발굴 여행_유물과 유적이라는 구체적 무언가를 통해 서로 다른 시공간의 만남, 그리고 세상에 다시 존재가 드러남과 누군가에게 의미의 존재로 자신을 거듭 드러남의 순간들_은 자기발견과 성장, 발전을 위한 도전을 거듭하며 예술가의 길을 준비하던 당시 청년 신종식과 여러모로 동일시되었다.
신종식 화백은 최근 ‘그곳에 있음’이라는 철저한 자기 증명과 기록으로서 자신의 그림 행위에 역설의 유희를 펼친다. 그는 그곳에도 그림에도 없다. 작지만 ‘그곳이 있음’을 묵묵히 그릴 뿐이다. < Bon Voyage_the Forgotten City>는 화면 내에서 철저히 자신의 흔적을 지워가는 작업으로, 참으로 무심한 무명의 풍경이자 익명의 풍경을 그려 보인다. 개성 넘치는 형태의 성(城)들, 이를 둘러싼 생명의 나무와 제단만이 전체 화면의 고요함에 진한 여운을 울린다. 이들은 “Bon Voyage! 안녕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기약 없는 인사와 동시에 잊혀져버린 그곳, “Bon Voyage! 안녕!” 한 마디 가벼운 인사로 기억되는 서로를 향해 진심어린 마음으로 안녕과 축복을 빌어주던 순간들에 대한 기억과 상징일 것이다.
A wisdom tree, 76.5 x 57cm.water color on paper.2013
여벌의 신발도 옷가지도 없이, 지팡이 하나 짚고 떠나는 순례와 같은 우리의 인생 여정,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 가운데 함께 나누었던 서로를 향한 ‘안녕!’의 순간들을 작지만 소중하게 기억하며, 그는 그저 그려 나간다. 잊혀져버린 ‘그곳이 있음’을 항구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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