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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공통어 에스페란토에 얽힌 희망과 고난의 역사 - <위험한 언어>(울리히 린스)의 언론사 서평들을 소개합니다!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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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13.10.23] 국제공통어 에스페란토…희망과 고난의 역사 / 김영현 기자

 

(기사 일부 발췌)


언어는 사람과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쓰는 언어 때문에 인간이 차별받기도 하고, 말이 사라지면서 민족까지 흔적없이 흩어지곤 한다. (중략)


신간 '위험한 언어'는 에스페란토가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충실하게 담은 책이다. 독일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울리히 린스가 저자다. 세계 에스페란토 운동에도 깊이 관여한 그는 에스페란토어로 이 책을 썼다그는 자멘호프가 에스페란토를 만든 동기와 배경부터 이론과 구조'까지 꼼꼼하게 짚었다. 무려 2천여 개의 주석을 달았고 에스페란토 운동 관계자로부터 받은 다양한 사진과 자료를 담았다.


그는 '어떤 점이 박해자들을 자극했는가' '에스페란토 운동이 본격화될 때 주변 정치 사회적 환경은 어떠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독자의 관심을 유도한다. 저자에 따르면 에스페란토는 탄생하던 순간부터 온갖 적대감과 맞닥뜨려야 했다. (중략)


저자는 에스페란토가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 '의사소통의 권리'가 인권의 하나로 주목받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엿본다. 그는 "에스페란토의 존재는, 기술적으로 밀집되고 점점 더 이성화된 세계에서 인간들 사이의 더 나은 이해가 계속해서 '이상'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권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한국에서도 매년 10월 한국 에스페란토협회 주최로 한국에스페란토 대회가 열린다. 올해도 26일과 27일 인천에서 개최된다.

 

기사 전문보기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10/23/0200000000AKR20131023063300005.HTML?from=search

 

[라이프투데이 2013.10.23]  영어를 대체할 수 있는 공통어는 존재할까? ‘위험한 언어’ / 임가영 기자

 

(기사 일부 발췌)


(중략) 책 ‘위험한 언어’는 국제공통어의 이상을 실현하고 인류의 평화를 도모하고자 창안된 ‘에스페란토’의 100여 년의 역사를 객관적 소개와 명확한 문체, 풍부한 자료들에 근거해 서술한 책이다.


독일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이며 에스페란토 운동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울리히 린스가 이 책을 썼다. 그는 책에서 오늘날의 영어는 미국 중심의 자본화를 이루기 위한 주요 언어가 되고 있다고 꼬집으며 패권어 즉, 국가와 기업 및 자본에 의해 강제된 언어로써 영어를 정의한다.


인류가 소통할 수 있는 패권어가 아닌 언어는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울리히 린스는 국제공통어의 이상을 실현하려 한 에스페란토의 고난과 희망을 기록한 역사를 서술한 책 ‘위험한 언어’로 조심스레 답을 건넨다.


책에 따르면, 에스페란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갖가지 이유로 탄압을 면치 못했다. 서유럽에서는 공산주의 사상을 확산시키는 주범으로 지목을 받아, 동아시아에서는 부패한 정부의 방해로 날개를 펼치지 못했다. 심지어 파시스트들은 세계어가 민족어를 무력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며 에스페란토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에스페란토가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충실하게 담은 ‘위험한 언어’는 에스페란토라는 주제를 뛰어 넘어 언어와 역사를 깊게 사유하게 하는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은 살아남기 위해 영어를 강제적으로 배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삶과 언어에 대해 깊이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사 전문보기 http://www.life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599

 

[국민일보 2013.10.24]  인류공통어, 그저 꿈일까 / 김나래 기자

 

(기사 일부 발췌)


역사의 이면에는 보편적인 인류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만국공통어를 꿈꾼 이들이 있었다. 무수한 언어가 생겼다 쉽사리 사라졌지만 아직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언어가 바로 ‘에스페란토’다.


창안자는 유대인 라자로 자멘호프(1859∼1917). 그가 태어난 비알리스토크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 지역으로 유대인과 폴란드인, 러시아인, 독일인, 벨라루스인 등이 민족어를 쓰며 서로를 의심하고 살았다. 자멘호프는 언어의 다양성이 인류를 분열시키고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확신했고, 그 불행을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만든다. 1887년 7월 러시아어로 쓰인 40쪽짜리 ‘제1서’를 출간한 뒤 1891년까지 12개 언어로 33종의 교재가 나오며 급속도로 확산된다. 하지만 이내 각 나라에서 다양한 이유로 난관에 봉착한다. (중략)


책은 에스페란토라는 새로운 언어에 ‘위험한 언어’라는 딱지를 붙이고 끊임없이 핍박했던 국가, 특히 소련 스탈린 시대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특정 언어의 핍박사라기보다 그것을 통해 다시 보는 20세기 현대사라고 불러도 될 만한 책이다. 에스페란토를 접하고 꾸준히 이 분야에서 활동해온 최만원씨가 에스페란토 원서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기사 전문보기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7684757&cp=nv

 

[경향신문 2013.10.26]  에스페란토 박해의 역사… SNS를 통제하려는 이유와 다르지 않은 / 황경상 기자

 

(기사 일부 발췌)


과거에 인간들이 저지른 죗값으로 언어의 혼란이 생겼다면, 오늘날은 반대로 언어의 혼란이 범죄를 야기하는 건 아닌가.” 1887년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를 발표한 안과의사 라자루스 자멘호프 박사(1859~1917)였다.


유대인이었던 자멘호프는 여러 민족이 섞여 살았던 폴란드 비알리스토크(당시 러시아령)에서 태어났다. 서로 다른 민족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건 일상이었다. 모스크바 유학 시절에는 뿌리 깊은 반유대인 정서를 경험했다. 1881년에는 러시아 전역에서 유대인 대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경험 속에서 그는 “언어의 다름이 민족들 간의 차별과 상호 적대감을 낳는 본질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자멘호프는 9개 언어에서 공통점과 장점만을 뽑아내 에스페란토를 만들었다. 문법에 예외와 불규칙이 없고 주요 뼈대 단어에 접두·접미어를 붙여 어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습득도 쉬웠다. 모국어를 쓰되 다른 민족과의 교류에서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자는 ‘국제보조어’를 표방했다. 당장 상업·여행·과학 분야에서 중립적·실용적 소통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바탕에 깔린 사상은 분명했다. “민족과 종교를 초월해 하나의 공동체가 되자”는 ‘인류인주의’였다. (중략)


무엇보다 스탈린 치하에서 에스페란티스토들은 간첩으로 몰렸다. 에스페란티스토들이 국제 서신을 교환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이 주인인 국가의 모순’을 서유럽에 알렸던 것이다. 한 소련인은 이렇게 썼다. “우리나라에 대한 당신의 좋은 생각들은 단지 아름다운 꿈이며 자기기만일 뿐입니다. 자유와 배부름은 단지 종이 위에 존재할 뿐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더 잔인하게 새로운 주인들로부터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1인 독재를 위해 대숙청을 벌이고 있던 스탈린에게 에스페란티스토들 역시 ‘반혁명분자’였고 그들에겐 나치보다 더한 박해가 가해졌다.


진실은 여기 있었다. 탄압의 강약은 다양했고 적들의 유형도 달랐지만 에스페란토 억압자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민족·종교·언어를 뛰어넘어 자유롭게 직접 만나 대화하고 의사소통하는 행위를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정보 독점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그만큼 두려운 건 없었다. 나치 치하 독일 실상을 고발하는 데 앞장선 것도 바로 에스페란티스토였다. 1932년 소련 에스페란티스토동맹 의장을 지낸 에르네스트 드레젠은 “시민들이 에스페란토로 계몽되고 고정된 충성심의 틀을 버리기 때문에 에스페란토 반대 입장으로 바뀌는 정부들이 존재한다”고 보고했다. 불과 5년 뒤 가장 신뢰했던 정부가 같은 결론을 내리라곤 예상치 못했지만.


오늘날 에스페란토 박해의 역사를 읽는 의미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맹비난했다가 이젠 자신들의 목소리로 도배하려고 드는 이들 또한 에스페란토 박해자들과 같은 목적을 지녔을 테다. 신이 ‘사람들의 힘’을 두려워해 바벨탑을 무너뜨린 것처럼. 대문호 톨스토이는 에스페란토를 지지하며 말했다. “하느님의 뜻은 예외적인 기적이나 석판 위에 하느님의 손으로 기록한 율법 등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들 상호 간의 행동과 발언을 통해 진실을 전달하면서 전파되는 것이다.”

 

기사 전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0252134245&code=960205



[동아일보 2013.10.26]  에스페란토를 국제공용어로 만들려는 도전, 세계 곳곳에서 억압받고 배제당한 역사

 

(기사 일부 발췌)


1887년 폴란드인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는 국제공용어를 창안하고 ‘희망하는 사람’을 뜻하는 에스페란토라고 명명했다. 에스페란토를 국제공용어로 만들려는 도전,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억압받고 배제당한 역사가 담겼다.

 

기사 전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31026/58470115/1

 

[한겨레 2013.10.28]  1887년 자멘호프가 창안한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 100년의 역사

 

(기사 일부 발췌)


1887년 자멘호프가 창안한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 100년의 역사. 유럽 9개 언어에서 공통점과 장점만을 뽑아낸, 예외와 불규칙이 없는 문법을 지닌 에스페란토는 인류 공통어를 지향하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패권어를 추구하는 좌우파 세력에 의해 억압받아 왔다.

 

기사 전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08665.html

 


[참세상 2013.10.30]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는 왜 위험한 언어가 되었나 / 정현수(에스페란토 평화연대)

 

(기사 일부 발췌)


울리히 린스의 <위험한 언어>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벨기에 북부 도시 안트베르펜에서였다. 당시 에스페란토를 독학한 지 1년 남짓, 나는 세계의 여러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을 만나러 여행하는 중이었다. 안트베르펜에 있는 플랑드르 에스페란토 연맹(Flandra Esperanto-Ligo) 사무실에서 에스페란토 도서관을 둘러보던 중 발견한 책이 바로 <위험한 언어>의 에스페란토 원서 였다.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에 ‘위험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책 <위험한 언어>는 국가와 민족의 장벽을 넘어 모든 사람의 직접 소통을 추구한 에스페란토가 왜 ‘위험한’ 언어로 취급당해 왔는지 그 역사를 다루었다.

국가와 민족의 장벽을 넘으려는 언어,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는 1887년 폴란드의 휴머니스트이자 의사인 자멘호프가 발표한 언어이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폴란드에서 독일인, 러시아인, 폴란드인, 유대인이 서로 싸우고 갈등하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는 민족 간의 전쟁과 불화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서로 다른 언어 때문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어떤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그의 생각은 자기 민족끼리는 자신의 민족어를 사용하고, 다른 민족과는 평등하게 공통의 언어(에스페란토)를 사용하자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1905년 프랑스에서 열린 제1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자멘호프는 “프랑스인이 영국인을 만난 것이 아니고, 또한 러시아인이 폴란드인을 만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났으며, “나는 어느 민족의 일원이 아니고 그저 한 인간에 지나지 않듯이, 어느 한 국가 어느 한 종교의 일원이 아니고 그저 한 인간으로 나 자신을 느낄 뿐입니다.”라고 연설했다. 모든 사람이 국가와 민족의 장벽을 뛰어넘어 인류인 가운데 하나로서 서로 마주하자는 생각. 이것이 에스페란토가 인류의 공존과 평등, 평화를 그 내적 사상으로 가지게 된 배경이다. 

왜 에스페란토는 ‘위험한 언어’가 되었는가?

그러나 에스페란토는 탄생 직후부터 고난을 겪어야 했다. 자멘호프가 에스페란토를 발표하던 당시는 러시아어로 ‘포그롬’이라고 부르는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성행하던 때였다. 따라서 유대인이었던 자멘호프가 이 언어를 발표하면 위험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멘호프의 아버지가 그의 원고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파시스트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언어 또는 유대인의 언어라는 이유로 에스페란토를 억압했다. 예컨대,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맑스주의는 노동자들이 지지하는 이념이 되었고, 조합주의는 인텔리 계층의 분석 도구로 봉사하고 있으며, 에스페란토는 그들의 상호 교류를 쉽게 해 줄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또한 1940년 나치 독일의 문건에서는 “에스페란토를 단순히 국제적인 소통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공어 에스페란토는 에스페란토주의의 일부이며, 유대인들의 무기다.”라며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을 체포하고, 처형했다.

반면 역설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에스페란토는 쁘띠-부르주아지와 코스모폴리탄(세계주의자)들의 언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에서는 에스페란토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상호 이해를 위한 수단으로 환영받았다. 하지만 이후 에스페란토는 부패한 부르주아 사상의 침투 또는 서유럽과의 교류를 통한 간첩 활동의 수단으로 간주되었으며, 스탈린주의가 승리한 이후에는 러시아어를 소련의 국가 언어로 확립하려고 에스페란토를 억압했다. 좌우파를 막론하고 전체주의 정권이 권력을 장악한 때에 에스페란토는 실제로는 정권에 위협이 되지 않았음에도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탄압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위험한 언어>는 동아시아와 식민지 조선에서도 에스페란토에 대한 탄압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일제 식민지 말기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에서 에스페란토는 위험한 언어로 간주되어 사용이 금지되었고, 수많은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체포되었다.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 조선공산당의 이정 박헌영, 아나키스트 민족해방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소설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 시인 김소월의 스승이자 한국에 모더니즘을 소개한 안서 김억,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의 조카 안우생 등 조선의 지식인들은 에스페란토를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모든 형무소는 에스페란토 학교가 되었다”라는 홍형의의 말에서 이 당시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아직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기사 전문보기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category2=137&nid=71905

 

[대구신문 2013.10.30]  에스페란토, 영어를 뛰어넘을 수 있나 / 황인옥 기자

 

(기사 일부 발췌)


언어가 가지는 문화적·정신적인 파급효과를 상기하면, 영어가 국제공용어로서 누리는 지위는 영어권 국가들이 언어를 통해 얻는 잉여수익이 언어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경제적 이득은 물론이고 패권을 강화하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의 배경에는 영어가 힘의 논리에 의해 국제공용어적 지위를 취득했다는 ‘강제성’과 ‘불평등성’이 작용하고 있다. 이 책의 전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책은 먼저 인류 보편어를 갈망했던 인류의 역사부터 짚는다. 고대 이집트의 왕에서부터 시작해 데카르트, 라이프니치 같은 철학자들을 거쳐서 오늘날 국제공통어로서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시도하고 있는 에스페란토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인류공통어’에 대한 이상을 구상하고 실현해 왔음을 상기한다. 

그러면서 일관되게 1887년 폴란드의 안과 의사인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1859~1917) 박사가 창안한 국제 공용어인 ‘에스페란토’를 언급한다.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가 유럽의 아홉 개 언어에서 공통점과 장점만을 뽑아내 예외와 불규칙이 없는 문법을 만들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창안한 언어다. ‘에스페란토’의 의미는 ‘희망하는 사람’이다. 

1887년 창안 이후 에스페란토는 ‘1민족 2언어 원칙’에 입각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의 교류에서는 ‘에스페란토’의 사용을 줄기차게 주창해 왔다. 

이러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현장은 중국, 바티칸, 폴란드, 오스트리아, 쿠바 등 11개국. 이들 국가에서 단파 및 위성방송을 통해 매일 수차례씩 국제방송을 하고 있다. 

또 매년 유럽과 다른 지역을 번갈아 가며 ‘세계에스페란토대회’를 열고 있고, 언어나 인종이 다른 1천5백~2천 여 명의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로 다양한 주제에 관해 토론하며 대안을 찾고 있다. 동시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각 대륙별 대회와 국가 대회도 개최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매년 10월 ‘한국에스페란토대회’를 열고 있다. (중략)

이처럼 책은 “언어적 공통되기 없이 공통된 인류의 형성이 불가능하다면, 언어적 공통되기의 노력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국제패권어인 영어를 넘어 인류 공통어의 창조는 가능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국제공통어의 이상을 실현하고 인류 평화를 도모하고자 라자로 자멘호프에 의해 창안된 에스페란토의 100여 년의 역사를 객관적 소개와 명확한 문체, 그리고 풍부한 자료들에 근거해 에스페란토의 국제공통어로서의 가능성을 서술한다. 

 

기사 전문보기 http://www.idaegu.co.kr/news.php?mode=view&num=11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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