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Vagueness
<< 또 다른 시간의 모호함... >>
김영재, 김효진, 나하린, 노채영.
박경태, 이예희. 이현무, 지혜진, 최경선
2016.3.8 - 4.28 (3.8 저녁6시 오픈)
■ 플라톤 이후 예술이 갖는 비합리성과 모호성은 과학이 갖는 명확성의 언어와 비교되어 인식 되었다. 우리는 주변의 사물이나 대상, 상황 등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고 수용한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은 개인의 주관적 정서나 경험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에 좀 더 은유적이고 잠재적인 영역을 필요로 하게 된다.
■ 모호성(ambiguity)은 어떤 개념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한계가 분명하지 않아서 그 개념이 전하는 내용의 범위를 정확하게 규정지을 수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과거 확실성이 진리로 여겨지던 시대에 이 단어는 부정적으로 비추어져 터부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가 모호함의 영역을 추상적이고 다의적인 예술의 도구로 탐색함으로써 새로운 예술 언어로 평가받게 되었다.
모호성은 어느 한 가지로 정의내릴 수 없기 때문에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 가능한 포괄성을 지닌다. 또한 자율적으로 해석 할 수 있기 때문에 관습적 인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 여기 ‘Another Vagueness’展의 작가들 역시 조형 실험을 통해 모호성의 의미 영역을 확장시켜 잠재성과 새로운 가치 생성의 영역을 열어두고 있다. 대상이 불분명한 화면은 그 존재가 ‘나’이기도, ‘타인’ 이기도, 때로는 그것이 혼재되어 내면의 상처나 불안과 같은 추상적 개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모호성의 형상은 반대로 대상이 분명한 이미지 속에서도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그 존재에서 더욱 멀어지고 해체된다. 그렇게 남겨진 파편화된 대상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재창조의 기회를 제공한다.
■ 작가는 전달자(Messenger)와 같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관념을 표현하되 꼭 어떠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해석하고 재구성 하는 것은 관람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본 전시를 통해 작품 속에 숨겨진 모호함의 영역이 관람자의 상상력으로 채워져, 일반화되고 고착된 의식을 벗고 그 작품이 갖는 의미의 영역을 확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