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윤: 역설의 알레프
Choi Seungyoon: The Aleph of Paradox
5. 7 (목) ~ 6. 13 (토) 2020
오프닝 5. 7(목) 6-8pm
갤러리JJ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745 앙드레김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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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내 그림들은 하늘의 수많은 별과도 같다. …멀리서 바라보면 또 그저 하나의 점일 뿐이다. 같지만 같지 않은 수많은 내 안의 우주를 끄집어내는 것…” –작가노트2013 중
갤러리JJ는 시원한 터치와 절제된 색채로서 세계 내 생명 에너지를 담아내는 최승윤 작가의 전시를 마련한다. 그의 회화는 세상을 이루어가고 작동시키는 기본 원리에 대한 관심과 사유로서, 이를 자신만의 추상적 조형언어로 환원한 것이다. 미적 쾌감과 필력이 주는 역동적 에너지가 아우러지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삼성TV(2019년)를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최승윤과의 콜라보 작업을 선호하고 있다.
최승윤은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의 양면성과 역설적 현상을 감각적으로 캔버스에 표현해왔다. 이는 본질적이고 거시적으로 보이지만 한편 현실에서의 자신의 경험과 인식에서 비롯되는 질문이다. 그가 애초에 가졌던 세상과 자신 곧 사람에 대한 의문은 빅뱅과 탄생으로 거슬러올라가며, 이는 곧 시간이라는 키워드와 맞물려 소소한 일상과 미세한 감정선의 관찰에서부터 삶과 죽음, 흐름과 멈춤 등에 관한 끊임없는 성찰로 이어졌다.
갤러리JJ에서 최승윤의 작업을 다시 만나는 것은 지난 2017년 <푸른 꽃> 전시 이후 3년 만이다. 이번 개인전은 작가가 이제껏 어느 정도 세상과 분리된 타자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던 입장을 지나, 이제 세계 속에서의 자신을 위치시키면서 자신과 세계와의 유기적인 관계로 나아감에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세상에 도래할 인공지능의 미래사회, 디지털 가상세계 등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정서가 내포되는데, 이는 지금까지의 생각의 연속선 상에서 좀더 ‘앞으로의 세상’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살펴보건대, 이번 전시를 포함하여 최승윤의 지금까지의 작업과 전시 행보는 아주 일관된 흐름을 보이면서 공간과 시간의 ‘단면’ 시리즈부터 지금까지 세계에 대한 태도를 확장하고 나레이션하는 주제의식으로 환원된다. 이번 전시에는 작품의 제목이자 전시 주제가 되는 <나와 세상> 연작을 중심으로 신작 회화 30여점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세계의 느낌과 삶의 단면들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가운데 이를 자유롭고 역동적인 생명 에너지로 승화시킨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 에너지란 붓질의 중첩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응축, 운동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보여진다. 개인, 개체, 주체란 먼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힘이나 속성의 흐름의 결과일 수 있다. 시간이 거듭될수록 작품은 탄탄해진 구조로 존재적 ‘불안’의 감정에서 좀더 자유로워지고 정제된 감성을 보여준다. 이제 화면에서, 기존관념으로부터 벗어나 도약하며 삶을 긍정하고 창조하는 ‘나’의 가능성과 마주해보고자 한다. 전시는 이에 주목하면서, 세계와 우리 자신에 관한 또 다른 성찰을 제기한다.
“내가 지금껏 생각했던 세상은 뭔가 결여되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라는 퍼즐 없이 세상은 완성될 수 없다… 이제 ‘나’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것 같다.” –작가노트2020 중
패러독스 Para-Doxa
과감한 붓질은 파란 획을 그으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서로 만나고 겹치면서 긴장감 있고 역동적인 화면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놓고 붓이나 주걱 등 직접 만든 도구로 일필휘지 그려나간다. 그의 회화는 주로 질료의 농담 차이를 두고 투명하고 유동적인 붓놀림을 보여주는데, 붓이 스쳐 지나가는 시간과 방향, 우연적 요소는 변화를 이끌어내며 의미가 발생한다. 화면 속 우연에 의한 사건들은 작가 자신의 시작과 우주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전통적 의미화를 넘어 패러독스로 확장된다. 그는 감각에 의존하여 회화적 움직임과 정지의 순간을 오가면서 공존과 균형의 느낌을 놓치지 않는다. 작품은 전체적으로는 절제되고 균형 잡힌 구도를 보이는 한편 그 안에서 서로 맞물리고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디오니소스적 생명력이 분출되고 있다.
그가 선택한 조형적 요소들, 즉 이어지고 끊어지기도 하며 겹쳐지는 등 각 색채의 획들의 ‘다름’은 현실에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상반된 현상을 직관적으로 대변한다는 점에 형식적 매력이 있다. 대립되는 것들은 ‘잠재적 상태’에서 공존하고 있음이 작품에서 드러난다. 그가 생각하는 세상은 반대적인 것들의 공존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 혹은 생명의 시작, 음과 양에서부터 그림 그리기의 시작과 끝, 거꾸로만 가는 다이어트의 결말 등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까지 사고하면서 수많은 균열과 모순투성이 사이에서 창조적으로 세상을 읽어나간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별들의 이야기를 잡아내는 카메라의 초점에서...” 그가 우연히 발견한 손바닥만한 우주, 하지만 그 안에 모든 걸 갖추고 있었고 광활한 우주가 있었다. 최승윤은 그만의 ‘알레프 Aleph’(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뒤섞이지 않고 있는 장소라는 호르헤 보르헤스 작가의 은유적 표현)를 기억해내려고 애쓰고 있는지 모른다.
지속 Duration
화면에서 움직이는 듯 정지하고, 자유로운 듯 통제된 선과 공간들은 서로 충돌하고 또 화합하면서 유연하게 운동하고 생명력으로 진화한다. 반복되는 긴장과 이완, 팽창과 수축을 통해 새로운 움직임이 탄생하고, 상호 침투하는 이질성은 생성을 이어나간다. 지금까지 나타난 ‘정지의 시작’, ‘출발의 완성’, ‘순간의 단면’ 등의 키워드로 미루어보면, 처음과 끝은 서로 닿아 있고 곧 그것들은 분리되지 않은 전체이며 ‘하나’로 귀결된다. 여기서 시간과 운동은 ‘흐름’이라는 본질로 파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현대 철학자인 앙리 베르그송 (Henri-Louis Bergson)에 의하면, 공간화된 시간이 아닌 지속하는 시간(체험된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끊임없는 변화만 있을 뿐 시작과 끝은 맞닿아 있다. “지속은 순수 변화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자 운동의 길이다.” 따라서 지속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전체성을 내포한다. 생명의 의식은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흐름으로 나타난다. 최승윤의 회화는 새로운 질적 차이를 창조해내는 생성(Becoming)의 운동,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움직이는 생명체의 표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만나는 세계의 모든 것들은 이렇듯 끝없이 차이들을 드러내며 변하고 있다. 현대라는 시기는 이미 형이상학적 가치보다 시간을 따라 흘러가는 세계, 우연, 변화하는 세계, 새로운 창조에의 열의 등 생성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생성은 우리의 고착화된 현실 인식을 바꾼다.
세계와 추상 abstraction
그는 세계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추상화한다. 현대에 이르러 객관적 현실이나 본질의 의미가 해체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오히려 추상적이라면 ‘세계’, ‘우주’라는 거대한 주제에 대해 뚜렷한 형상성을 부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는 인상주의 예술을 거치면서 결국 표상, 재현이란 다름을 동일하게 보이기 위한 인식론적 개념에 불과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이 세계는 오로지 차이에 의해, 이미지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들뢰즈)으로 사유되어 왔다. 변화하며 중첩되는 획들의 강렬함과 힘의 차이들로 구성된 최승윤의 작업은 이러한 끊임없이 운동하는 세계를 직관한다.
한편 가장 추상적인 색채로 꼽히는 것은 푸른색이다. 흔히 블루는 현실의 격정보다는 이성적 합리성의 느낌과 함께 ‘무형’의 느낌을 주는 요소로 여겨진다. 블루의 작가로 꼽히는 이브 클라인 역시 볼 수 없는 것을 보이게 하는, 비가시적이고 초월적인 색이라는 점에서 사용했다. 최승윤의 작품에서 주로 푸른 단색의 작품이 많은데 그에 의하면, 푸른색은 근본적인 동시에 양면성을 가진 색채로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패러독스’, ‘균형’의 개념과 가장 잘 맞는 색이다. 즉, 푸른색은 하늘과 물, 지구라는 근본적인 것들의 색상으로 희망과 우울함이라는 양면적 정서를 담고 있으며 차가운 한편 뜨거운 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화려함의 단면>을 시작으로 2018년 이후 작업에서 종종 나타나는 골드 빛깔은 파랑의 보색으로서 작가가 태양 같은 빛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다.
화면 속 지속적으로 새로운 탄생과 소멸을 향하는 획들, ‘나’ 또한 예외 없이 그 속에 하나의 ‘점’으로 함께 유동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이는 역설의 알레프이자 ‘나’를 포함하고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하나’이다.
글│강주연 GalleryJJ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