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영식
스페인의 미술관 탐방기
마드리드 공항에 내려서는 순간의 심경은 착잡했다. 30년전, 오르데가 이 가세트의 ‘고야론’을 읽고 언젠가 스페인의 풍광과 미술을 가슴 가득히 느껴보려던 바램이 이루어진 감회 탓이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의 전 작품을 보고 나니 가슴 한 켠이 후련해졌다. 운좋게 ‘피카소-전통과 아방가르드’전을 보게 되었다. 전시장의 가운데 줄에는 엘 그레코에서 고야까지의 작품이 전시되고, 양쪽의 벽에는 청색시대로부터 큐비즘을 거쳐 후기 구상화시기 까지 배열되어, 그가 스페인 미술의 진수를 어떻게 자기화하려고 했는지 한눈에 잡히게 했다. 소피아 현대미술관에서도 프라도에 이어지는 ‘피카소전’이 대작 ‘게르니카’를 중심으로 전시되었다. ‘게르니카’와 마주보고 있는 고야의 ‘1808년 5월3일’. 그 중간에는 마네의 ‘막시밀리언 황제의 처형’과 피카소의 ‘한국전의 대학살’이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게르니카’를 위한 많은 밑그림들. 무자비한 전쟁, 폭력, 학살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는 기념비적인 네 작품들의 조우. 시대는 달랐지만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해 보였다. 17세기 네델란드 회화로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알뜰한 소장품이 돋보이는 티센미술관에서는 기획전으로 ‘크라낫하에서 모네까지’와 ‘틴토레토-파라다이스’가 열리고 있어 예상치 못한 보너스를 얻은 느낌이다.
<미술관의 통념을 깬 빌바오구겐하임 미술관
이번 미술관 탐방의 하이라이트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을 찾은 날에는 서늘한 날씨에 비까지 내렸다. 은빛 티타늄 금속판의 외장, 거대한 조각적 건축물. 고전적 의미의 시각적인 중심 비례 균형 조화 질서를 해체하여 어디서 바라보아도 되는 시점의 개방성. 다양한 구조체의 집합과 연접, 돌출이 분방하여 미지의 형상(난파한 배, 뛰어 오르는 물고기, 피어나는 꽃, 내려앉은 우주선)이 되고 있다. 컴퓨터 시대(CAD와 CAM설계)가 만들어 낸 초대형 스펙터클 건축의 위용이 네르비온 강물에 비쳐 흘러가고 있다.
은빛 티타늄 건물에 곁들인 수면과 외부 테라스 공간의 열림, 미술관과 교차하는 대중교통로의 선조형 다리, 기존 전원주택을 배경으로 한 또 다른 모습, 복잡한 부조화의 파격성이 놀랍기만하다. 상상을 불허하는 외부의 모습에 못지 않게 내부 역시 통념을 깨기에 충분 했다. 긴 철재의 세로와 가로의 얽힘과 유리, 매끈하게 처리된 흰 곡면의 벽과 기둥, 마치 거대한 설치작품속을 거닐고 있는 느낌이다. 동심원으로 돌아 올라가면서 여러방향으로 난 전시장은 변형된 화이트 큐브. 3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1층 로비 아트리움에는 리처드 세라의 투터운 철제판 설치작품이 미로형과 나열형으로 번갈아가며 무더기로 열지어 그 넓은 공간을 압도하고 있다. 2층 전시실에는 ‘러시아 특별전’으로 15세기로부터 20세기에 이르기 까지 부침 많았던 러시아미술사를 요약해 주었다. 3층에는 막스베커만의 초기 시절의 검은 색 선묘의 표현성과 우의성이 짙은 수채화와 파스텔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15년만에 다시 찾은 바르셀로나는 많이 달라져 새 기운이 넘쳐나고 있었다. 항구를 바라보고 서 있는 쌍둥이 건물이 기념비 같고, 그 앞에 공중에 거대하게 얹혀 있는 듯한 프랑크 게리의 물고기의 텅빈 껍질을 형상화 한 ‘물고기 조각’이 눈에 들어 왔다. 빌바오구겐하임을 예견케하는 전 단계의 작품이다. 가우디의 ‘성가족교회’는 ‘탄생의 문’ ‘고난의 문’을 거쳐 마지막으로 ‘영광의 문’이 한창 건축중이었다. 가우디의 구엘공원과 아파트, 하나같이 자연이 지닌 오묘한 질서와 형상의 원리에 기초한 유기적 생명주의자의 조형성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미로 미술관에서 맛보는 그 천진무구한 원초적 표현력에서 스페인 미술이 지닌 무한한 열정과 자유분방함의 전통을 새삼 확인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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