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
국어 선생이 만난 샤걀 피카소
대전 동산고등학교 김태권
명색이 겨울 방학인데 ... 그때 언뜻 떠오른 기사가 생각났다. 전북도립미술관이 마련한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 전이다. 전라도가 예향인 줄이야 알지만 샤갈이며 피카소를 완주에서...? 서울 쪽은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어서 고흐전이나 미국인상주의전은 엄두를 못내고 완주는 가까웠다. 서둘러 모악산 남쪽에 붕어섬으로 익히 알려진 안개 낀 옥정호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감탄을 한 연후, 동쪽에 있는 미술관에 가서 샤갈과 피카소로 안구를 정화시킨 다음, 해가 뉘엿뉘엿 할 때쯤 견훤이 유폐되었던 남쪽에 위치한 금산사를 찾으면 오늘 여행 딱 어울릴 것 같은... 사랑하는 아내여, 나를 따르라!
1월 6일 깨지라고 있는 계획은 아점 후 출발한 덕에 우선 미술관에 도착하였다. 미술관 옆 동물원도 아니고 모악산 등산로 입구 미술관이라니 참으로 지혜롭다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그 많은 등산객들이 산을 사랑한다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려 왔다면, 마음을 풍요롭고 아름답고 건강하게 해줄 미술관의 유혹을 어찌 지나치랴 싶었다. 그래서일까? 등산길인지 하산길인지 등산복이 여럿이다. 지난해 10월 18일 시작된 전시인데도, 오는 2월 17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인데도, 영하 10도를 넘기는 강추위인데도, 저렇게 자락엔 새하얀 눈이 쌓여있는데도, 아직 오전인데도 미술관 앞 매표소엔 줄이 길었다. 하얀 눈밭 위에 빨간 매표소가 눈이 시리도록 예쁘다.
입장료는 만 원, 아내가 기꺼이 이인 분을 투자하니 공짜 구경이라 더 신난다. 베네수웰라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28점을 전시했다고 들었다. 다급한 마음에 열다섯 개의 널찍해서 발걸음이 편안한 화강암 계단을 뛰어시피 들어서니 세계미술거장전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가 존엄한 자색 위에 두툼한 황금빛 서체가 올돌하여 추위에 떨며 달려온 미술문외한을 영화롭고 풍요로운 마력으로 맞아준다. 이름만으로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감성인 샤갈이 서정시 낭송을 하듯이 다가오고, 이름만 읽어도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차원 이성인 피카소가 지성을 긴장시킨다.
1전시실은 매 시간 한 번씩 홍보 동영상으로 이번 미술전을 소개 안내한다. 강의가 좀 지루할 것 같아 건너뛰었다. 2전시실에서 처음으로 마주치는 작품은 마네의 단정한 <롤라 발렌시아>와 세잔느의 그 유명한 연작 중의 하나인 <목욕하는 사람들>이다. 프롤로그 정도의 배열로 걸린 인상주의 작품이다. 이어서 대작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피카소의 <누드와 앉아 있는 남자>가 넙죽 대전 사는 시골사람을 맞이한다. 피카소의 스페니쉬한 용모와 함께 그림마저도 참 거칠고 강열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국내에 처음 공개된 작품이라선지 인터넷에도 자료가 눈이 띠지 않는다. 세잔느식 표현에 동일한 사물의 서로 다른 측면까지 보여주는 4차원적 세계는 이번 전시회의 중심축인 만큼 <우는 여자>의 표정도 흥미롭다. <비너스와 큐피드>를 보면서는 원천적으로 애절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신화에 몸이 떨린다. 또 다른 여러 개의 작품 가운데 특히 국내 처음 공개되었다는 <벌거벗고 앉은 남자> 앞에서는 한참을 서성거릴 수밖에... 입체파 이후의 작가로는 신조형주의로 불리는 몬드리안의 수평과 수직뿐인 기하학적 구성과 원색미가 이빨 닦은 후의 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얀 눈이 목덜미에 닿은 듯 시원하고 단순하다.
샤갈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샤갈과 에콜 드 파리의 서정이라 명명한 3전시실이다. 경향상으로는 다다와 초현실주의다. 색채의 아름다움과 섬세한 선과 자유로운 형태와 애상적인 느낌이 가히 환상적이다. 그래서 샤갈을 색의 마술사라고 했던가.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처럼 나의 마음 숨겨진 한 구석에도 저리 따스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이 남아 있으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갈의 작품에선 진하게 묻어나는 서글픔이 있다. 유태계 유랑민의 서정성이라는 설명이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과 파괴의 흔적이 다다이즘(다다의 어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이 나온 말이다),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예술 사조에서 자동기술 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샤갈을 표현주의라고 했지 아마.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작품 속에도 이러한 동화적 세계를 그린 작품들이 꽤 있다는 것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예술적 공감을 지향하는가 보다. 미로의 추상화도 눈에 들어온다. 미로의 <반짝이는 달>과 <찬란한 태양>도 상상의 한계가 없는 초현실의 모습임에는 분명하다.
이젠 전후의 세계미술편인 4전시실로 가보자. 처음 대하는 작가의 작품들도 많다. 추상표현이라고는 하지만 미술 교과서에 나올 정도의 화가 이름이나 알지 사실 뒤뷔페니 타피에스니 코브라니 알레친스키를 알겠는가. 그 중 뒤뷔페의 <시선의 계단>은 어린아이의 그림같은 비현실적 음울한 모습이다. 물론 칠레의 마타도, 베네수웰라의 보르헤스도 마찬가지다. 고산에 오를 때처럼 귀가 멍멍한 기분이었는데 팝아트에 와서야 아, 리히텐슈타인에 와서야 멍멍하던 귀가 뻥 뚤렸다. S그룹에서 만화적 소재인 <행복한 눈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것이 2008년이었던가? 그 리히텐슈타인의 또 다른 스타일 수많은 망점으로 채워진 비닐과 실크스크린 기법의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실크 스크린 하면 또 엔디 워홀 아니겠는가. 입구 양면에 대칭으로 진열된 복사예술의 결정판 <마릴린 먼로>가 열의 열 모습으로 사내 가슴을 침잠한다. 미소보다는 빈티지한 색감 때문일까. 닉슨에 패배한 맥거번 후보의 얼굴이 오버랩된 <맥거번 투표>가 보너스로 걸려 있다.
마지막 5전시실을 지나면서 베네수웰라의 생소한 작가를 만난다. 그들은 이곳엔 헤수스 소토를 중심으로 한 추상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옵아트라는 경향으로 소개된 설치작품 속에는 공기의 미동 속에서도 강한 운동감을 표현한 철선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시각적 효과도 미묘한 차이를 준다. 디에즈, 게고 같은 화가도 만나는...
마음을 살찌우고 눈을 맑게 하고 가슴을 넉넉하게 하고 머리를 아름답게 하고 나니 몇 시? 두 시? 그럼 배를 채워야 양반이지. 순두부찌개로 허기를 채우고 나니 노곤거려 일어나기 싫다. 10년 전 금산사를 다시 찾을까 하는데... 그 때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계율이 있거늘, 모름지기 ‘꼰대’는 두 여자의 말을 따르라. 하여 내비 안내녀와 와이프 말에 절대 복종하여 옥정호로 달렸다. 국사봉에 오르니 붕어는 얼었으되 춘하추동 시시때때를 불문하고 해는 뉘엿거리는데 경관이로세.
▶ 옥정호가 그린 그림(왼쪽) / 옥정호 전경(오른쪽)
▶붕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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