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
배찬효 개인전 ‘형벌 Punishment' 리뷰
김영태 사진비평 현대사진포럼대표
전시기간: 2012. 10.25 _ 11.20
전시장소: 트렁크 갤러리
배찬효는 영국에 유학 가서 그곳에서 사진작업을 하는 작가다. 작가는 2008년도부터 제2회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주제展에 참여한 것을 비롯하여 트렁크 갤러리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삼성미술관 리움이 기획한 ‘2012 아트스펙트럼’에도 참여했다.
작가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낯선 문화에 대한 이질감과 소외감을 사진작업을 하면서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양의 동화나 역사적인 사건을 재구성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작업을 한다. 남성인 작가가 동화나 역사속의 여성으로 분장하여 작품에 등장하는 표현방식을 선택했다. 서양의 역사와 문화적인 산물을 연극적인 장치로 재구성하는 수사법을 보여준다. 서양사회에서 생활하는 소수민족 혹은 마이너리티로서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특정한 서사구조에 투영한 것이다. 자신이 오랫동안 누린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를 체험한 많은 예술가들이 이와 유사한 주제로 작품을 발표했다. 그만큼 새로운 문화를 접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적응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문화적인 충격이 커기 때문이다. 또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많은 예술가들이 다루었기 때문에 차별화된 지점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구체적인 표현방식에서 긴장감과 밀도를 보여주어 이것을 잘 극복했다.
‘셀프포츄레이트 Self Portrait’는 일반적으로 작가 개인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사회적인 발언을 하기 위해서 많은 예술가들이 선택한 표현방식이다. 작가는 다른 작가들과는 다르게 이방인으로서 서양문화와 역사를 풍자하기 수단으로 선택했다. 이번에 발표한 ‘형벌 Punishment' 시리즈에서도 서양인으로 분장한 작가가 작품에 등장한다. 그런데 과거에는 남성인 작가가 여성으로만 분장했는데 이번엔 서양남성으로도 분장했다.
작품의 내용은 영국역사 속의 권력자와 피 권력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이너리티 혹은 이방인으로서 중립적인 태도로 역사를 바라본 결과물이다. 작가 개인의 미적인 감각에 의존해서 상황을 연출했지만 전통적인 서양인물화의 표현방식처럼 표면적으로는 지극히 객관적인 결과물처럼 보인다. 시각적으로 무미건조 할 수도 있는 이미지이지만 조명에 대한 유효적절한 제어와 작품의 전체를 이루는 감각적인 컬러 때문에 정서적인 결과물로 느껴진다.
작가는 거의 완벽하게 자신을 역사속의 서양여성으로 꾸몄다. 얼핏 보면 혹시 진짜 여자가 아닐까하는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완벽한 분장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작품을 살펴보면 작품 속 인물에서 중성적인 혹은 남성적인 요소를 발견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이 오히려 시각적인 재미를 느끼게 하고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 작가의 작품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관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작품의 배경과 작품 속 인물들의 의상이 작가의 표현의도와 무관하게 관객의 시각적인 요구를 충족시켜준다. 진지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주제와 더불어서 작품의 완성도를 뒷받침하는 요소 중 하나다.
배찬효는 자신이 처해져 있는 현실을 유효적절하게 잘 수용해서 작업의 주제를 선택했다. 현재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작품의 밀도가 발생한 것이다. 또 표현방식과 주제가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이끌어가는 작가의 진지한 태도가 작품의 표면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작품으로서의 당위성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작품의 내부구조가 너무 쉽게 읽히는 것은 단점이기도 하다. 또한 앞으로 작가가 발표할 작품이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나 새로운 이야기를 밀도 있게 보여줄지 궁금하기도 하다. 작가가 미래에도 동일한 문화적인 환경 속에서 작업을 하게 될지 아니면 다른 환경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궁금하다. 한 가지 더 첨언한다면 좀 더 많은 상상력과 사유를 이끌어내는 또 다른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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