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63)
최용건 / 화가
삶이란 흥정의 연속이다. 살아있음을 가능케 하는 호흡 자체가 흥정활동이니까. 필요에 의해 적절히 들이쉬고 필요에 의해 적절히 내 쉬는 것이다.
흔히 예술인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박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불만을 토로하기 전에 과연 예술인들의 활동이 얼마나 공익적인 것인가를 되돌아 볼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공익적일 때 주가는 오르게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예술인들의 활동이 공동체 내에서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한다면 타 직종 사람들과의 흥정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 점에 동의한다면 예술인들은 그저 김삿갓의 시 한 수쯤으로 세상 인심의 박함을 노래하며 고해를 건너는 것이 적절한 위안이자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吉州吉州不吉州 고을 이름을 길주라 하건만 길한 고을이 아니고
許可許可不許可 성씨를 허가라 하건만 허락 해 주는 이 아무도 없구나.
明川明川不明川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漁佃漁佃食無魚 어전 어전 하지만 어느 집 밥상에도 생선은 없다.
이 노래를 읊은지 이제 150여 년이 흘렀다. 경제력은 상위에 올랐으나 문화예술 수준은 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을 살펴볼 때 방랑 예인(藝人) 김삿갓이 다시 이 땅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길주길주불길주(吉州吉州不吉州)를 또다시 읊조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