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68)
변연희 / 강원 춘천시 석사동
박대성, 불국설경, 2013, Ink on paper, 800×252cm
서울아트가이드에서 박대성 선생님의 전시소식을 보고 경춘선을 탄다. 가을비가 내리는 바깥풍경을 보너스로 받으며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도착했다. 천천히 둘러보고 여러 번을 보고 또 본다.
벌하나 바위하나 모든 것이 살아있다. 불국사의 눈 내리는 장면 속에 내가 있는 것 같고 석파정 뜰에서 산책하며 경주의 달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어느 그림하나 소홀히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그런 그림들이다. 그런 감동을 받고 나서려는데 박대성 선생님을 눈앞에서 만난다.
선생님의 그림을 보면 가슴이 뛴다고 말씀을 드리니 웃음을 지으시며 고맙다고 하신다. 사진을 같이 찍자는 말도 흔쾌히 받아주시며 어디서 왔냐며 말도 걸어주신다. 소위 잘 나간다는 작가들의 젠체하는 태도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림에도 감동하고 선생님의 태도에도 감동하고 도록을 구입하고 나선다.
도록을 펼치니 윤범모 미술평론가가 작가와 계림을 여행하며 쓴 이야기가 나온다. 윤범모 평론가는 일주일 티벳 여행을 하고 그 사이 작가는 계림 산수를 그리기로 했다. 티벳에서 돌아와 그림을 많이 그렸냐고 묻자 스케치들과 사투만 벌였을 뿐 그림 한 장 그리지 못했고 즉석에서 소화시키기가 너무 생소하다고 하셨다 한다. 대상을 소화하지 못하면 화폭을 접고 관광객처럼 겉만 흉내 내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고 평론가는 전한다.
왜 그렇게 그림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림 속 풍경들과 몇날 몇일 객이 아닌 주인으로 한 몸이 되어 그려냈을 과정을 생각하니 숨이 막힌다. 무슨 일을 하던 주인으로 임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그분의 철학이 느껴지는 전시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관광객처럼 내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