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한 괴짜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
한윤아
먼저 개인적 취향을 표출하자면, 나는 조니 뎁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하고 다채로운 표정과 그 감수성을 사랑한다. 따라서 그가 이 영화의 나레이션을 맡았다고 했을 때, 영화에서 기대가 되었던 요소로 그의 존재감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했던 일. 그렇지만 그는 랄프의 조연이었으므로 영화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둘의 대화로 내러티브를 풀어나가며 랄프 스테드먼이라는 일러스트 작가의 자유분방한 작품세계관과 괴짜 같은 매력의 조니 뎁이 맞물리어 근사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영화는 랄프 스테드먼의 소울메이트이자 작업 파트너인 저널리스트 헌터 S.톰슨 사이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을 반추하며 전개된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으며 의지할 수 있었던 동료가 있었다는 것이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 부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헌터의 죽음 장면에서는 숙연해지도 했다. 둘의 우정은 랄프의 인생에 있어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며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림을 통해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이길 꿈꿔온 랄프.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은 마냥 보기 좋게만 다듬어진 그림은 아니다. 주로 시사적인 내용의 삽화들을 그렸던 그는 작품 활동을 통해 그가 가진 정치적 신념을 당당히 내세운다. 펜을 든 그에게서는 억압 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우연적 기법들과 자유로운 그림체는 어딘가 비뚤어져있고 익살스럽다. 부조리에 대항하는 그의 시선이 여과 없이 그림 안에 드러난다.
가장 좋았던 것은 랄프 스테드먼의 다양한 작품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연출과 그의 작업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과감하고 재미나게 작업하는 모습의 그는 진지하면서도 장난스럽고, 어딘가 잭슨 폴록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나의 작업을 하는 것에 있어서 숫한 고민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막막함을 느끼던 터에 보게 된 이 다큐멘터리 필름은 랄프 스테드먼이라는 카투니스트의 인생을 들여다봄과 동시에 그의 뚜렷한 작품관과 다채로운 표현들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어 즐거운 관람이 되었다. 하지만 '아트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적인 이해 없이 단순히 조니뎁이 나오기 때문이거나 '이상한 나라의 친구들'이라는 제목에 흥미를 느껴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될 경우, 일러스트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면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