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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머뭇거림을 나의 희망으로 삼아

안민영



“시든, 소설이든, 산문이든 결국 모든 글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글의 사명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지난해 가을 열화당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서 이성복 시인이 한 말이다. 이 말을 곱씹으며 내 곁에 지금껏 살아남은 책들을 살펴보니,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책등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거짓된 평화에 가려진 진실들을 기어코 들여다보게 만드는 죽비들. 재일조선인 에세이스트 서경식(1951- )의 책들도 그 중 하나다.

특히 미술에 관한 그의 에세이들은 더욱 각별하다.『나의 서양미술순례』(1992)에서부터 근작『나의 조선미술순례』( 2014)에 이르기까지, 그는 증언으로서의 예술,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에 깊이 천착하면서 ‘(자명해 보이는 것들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 이들’에게 “과연 그럴까?”라고 끊임없이 반문하는 한편, 작품과 그것을 제작하는 인간, 그것을 감상하는 ‘나’ 사이의 맥락(Context)을 사무치게 엮어냄으로써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재인식하게 만든다.

온 힘으로 작품과 마주하고 대화하고 괴로워한 ‘나’의 기록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통념과 전문가의 언설에 눌려있던 사고가 내 나름의 날개를 달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어느새 ‘내 이야기’를 중얼거리게 되는데, 이것이 그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문학평론가, 1935-2003)의 말을 빌려 강조하는 ‘(전문가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아마추어리즘’의 시작이 아닌가 한다.

새해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넘쳐나는 이때, 나는 담담히 그의 책들을 펼쳐본다. 30대 청년시절부터 60대 노년에 접어든 지금까지 끝없이 회의하며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를 걷고 있는 이 고독한 인간처럼 그렇게 묵묵히 걸어가고 싶다. 나의 소외인 머뭇거림을 나의 희망으로 삼아 서툰 걸음으로 조금씩 새해를 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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