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필 개인전 ‘지극의 상속 Polar Heir’ 리뷰
2015. 01.08 ~ 02.22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극지방에서 만난 풍경과 문명의 흔적
1980년대 후반이후 사진을 비롯한 동시대 미술의 주요 화두는 거대서사나 무거운 담론에서 탈피하여 개개인들의 사소한 일상에서 비롯된 사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1960년대 대지예술에서 출발한 환경문제도 많은 예술가의 관심사 중에 하나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제작하는 자연다큐멘터리영상이나 사진 외에도 동시대미술작가나 사진가들이 제작하는 영상 및 사진작품도 많이 있다. 그만큼 현시대에서는 환경문제가 심각하고 많은 이들의 관심사라는 애기다. 우리나라 사진가 중에서도 권부문, 임영균 등이 북극과 남극의 풍경을 찍은 사진을 전시해서 주목받았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신비롭고 웅장한 자연풍경을 조형적으로 재현해서 보는 이의 시각을 압도했다. 보는 이들의 감성을 유혹하는 작품들이었다.
이번에 ‘지극의 상속 Polar Heir’시리즈를 발표한 한성필도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여행하고 싶어 하는 남극과 북극에서 만난 풍경과 인간의 흔적을 사진과 영상으로 재현했다.
작가는 지난 몇 년 동안 가짜와 진짜 혹은 복제와 실재에 대한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풀어내어 주목받았다. 뛰어난 색채감각 및 조형적인 구성력을 바탕으로 시대와 조우하는 담론을 끌어내었다. 또한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 전시를 구성하여 동시대 전시의 스펙터클함을 환기시켰다. 이 전시에선 극지방의 초월적인 풍경과 인간의 흔적을 재현함으로써 환경문제라는 시대적인 화두를 일깨워주었다.
작가는 양극지방에서 조우한 아름다운 풍경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는가하면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남긴 인간의 흔적을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재현했다. 작가가 ‘지극의 상속 Polar Heir’ 시리즈를 발표한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은 전시공간이 지하1층부터 2층까지 세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하1층에는 극지방의 풍경을 찍은 대형인화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직은 자연그대로 존재하는 자연풍경과 시간의 흔적을 감각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장면으로 보여준다. 1층에는 어름으로 둘러싸여 있는 웅덩이에 푸른빛을 띤 물이 고여 있는 장면을 재현한 사진이 초대형사이즈로 걸려있는데 자연의 신비감을 강조한다. 또 전시장 입구 쪽 벽면에는 천연자원을 개발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기록한 영상이 흐르는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2층에는 인간이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서 남긴 여러 흔적을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기록한 사진을 전시했다. 작품사이즈도 대형이 아니라 전통적인 프린트 사이즈이고, 프레임도 원목과 종이매트를 사용하여 모더니즘사진가들의 전통적인 프레임방식을 선택했다. 작품의 내용과 포장형식이 효과적으로 어우러져서 잘 마무리되었다.
순수한 자연풍경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은 극지방이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훼손 장면을 객관이고 중립적인태도로 기록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여전히 조형미가 느껴지고 보는 이의 감각을 깨워준다.
또 다른 벽에는 영상과 스틸이미지가 효과적으로 조합된 결과물을 설치하였는데,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연풍경을 실재보다 좀 더 신비스럽게 재구성하여 보는 이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매혹한다. 장시간 영상으로 촬영한 하늘풍경과 스틸이미지로 촬영한 자연풍경이 묘하게 어우러져서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물로 변주되었다. 디지털테크놀로지를 효과적으로 수용하여 흥미로우면서도 미학적인 영상물을 생산한 것이다.
작가는 지난 2007년에 발표한 ‘FACADE: face-cade’ 시리즈부터 주목받는 작가대열에 합류했다. ‘시뮬라크르 simulacre’가 문화적인 화두였던 시대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여 미학적인 완성도 확보하였고, 감각적이고 세련된 작품의 표면 때문에 아트마켓에서도 관심의 대상 이였다. 이번에 발표한 ‘지극의 상속 Polar Heir’시리즈도 글로벌한 관심사인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다의적으로 풀어내어 작가적인 역량을 확인 시켜주었다. 또한 전시작품구성도 사진과 영상작품을 유효적절하게 배치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또한 한정된 장소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의 내용적인 단조로움을 표현방식의 다양함을 통하여 잘 극복했다. 전통적인 풍경사진기법과 다큐멘터리적인 표현방식을 혼합하여 한정된 장소와 대상의 단조로움에서 느낄 수 있는 동어반복을 탈피하는 성과를 거뒀다.
사진작품 사이즈의 다양화, 효과적인 영상작품의 배치 등이 잘 융합되어 전시 공학적으로도 완성도를 뒷받침한다.
전시의 완성도는 적절한 작품선정, 프린트의 완성도, 효과적인 프레임, 감각적인 작품배치 등이 잘 어우러져야 확보 할 수 있다. 작가의 이번 전시는 이지점에서 완성도를 성취했다.
현재 한국사진은 2009년부터 미술시장의 침체와 더불어서 조금은 활력을 잃은 상황이다. 하지만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작품 활동과 효과적인 프로모션이 어우러진다면 충분히 극복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도 한성필의 전시는 긍정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월간 사진예술 2월호
김영태 사진 비평. 현대사진 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