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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서영 수분 受粉 , 문래동 3가 54번지

오선영

수분 受粉 / 배서영
2015. 6. 20 - 7. 18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 5시
오프닝: 2015. 6. 20 토요일 오후 4시 
장소: 문래동 3가 54-1 번지 
 
올해 <7 1/2 프로젝트>의 두 번째 프로젝트의 제목인 ‘수분(受粉)’은 매개자를 의미한다. 이 글은 첫 번째 프로젝트 《기능적인 불협화음》에서 두 번째 프로젝트 《수분(受粉)》으로 연결되는 과정과 경험을 기록한 서술 방식을 취한다.

​오선영 (큐레이터) 2015년 3월 ~ 5월, 문래동 3가 54번지​ ​
 
문래동 철공소 아저씨들을 포함하여 올해 <7 1/2 프로젝트>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기능적인 불협화음》개막 행사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이 3월 13일 첫 번째 투어를 하면서 느낀 불편한 기운들이 나에게도 온전히 전달이 되어 한동안 그 불편한 기운을 소화해 내느라 적지 않게 힘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기능적인 불협화음》을 기획하면서 (《기능적인 불협화음》기획 의도나 배경에 대한 설명은 웹사이트 내용을 참고해 주길 바란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불협화음들, 마찰들에 대해 분명 예상했고 함께 기능하기 위해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기에 불편한 상황들을 모두 잘 중재하고 수용해보겠다 다짐했었다. 프로젝트에 함께하는 이들에게도 프로젝트가 지니는 이러한 성격을 사전에 설명했고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서로 타협 가능한 지점을 찾았다. 내가 느끼기에 이것은 크게 거슬리거나 불편하지 않은 범위의 불협화음 정도였다. 그러나 투어이자 영화 스크립트 장면을 실제로 연출하며 발생했던 예상치 않았던 일, 즉 철공소 아저씨들의 갑작스런 출현은 이 프로젝트의 기능적인 불협화음을 완벽히 극대화시켰다. 투어의, 동시에 영화 스크립트의 클라이맥스가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불협화음 사건 이후 며칠 동안 나는 문래동에 갈 수 없었다. 이곳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과연 잘 진행할 수 있을까, 문래동이라는 곳을 올해의 <7 1/2 프로젝트> 개최 장소로 정한 것이 과연 잘한 선택일까, 많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조금 회의적이기도 했고, 막막하기도 했다. 마침내 이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 마음과 생각이 타협한 결과는‘전시 기간 중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로 관람 시간을 정하고, 나는 그 시간에만 문래동에 머물면서 주변을 관찰하겠다.’였다. 그렇게 타협안을 실행하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그날도 나는 지하에 위치한 전시장에 머물고 있었다. 김숙현 감독과 윤주영 조연출도 함께 있었는데, 우리는 지하가 너무 추우니 따뜻한 봄 햇살을 쏘이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내가 앞장서서 지하에서 지상으로 향하는 좁은 계단을 오르는데, 우연히도 같은 건물 2층을 쓰고 있는 만호 아저씨를 마주쳤다. 나와 만호 아저씨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만호 아저씨는 밖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으니 와서 같이 먹으라고 권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모르는 이들과 밥을 먹는 것, 그것도 철가루와 먼지가 날리는 철공소 골목길 중간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이 상황이 반갑게 느껴졌고, 나는 이내 그의 호의에 응했다. 그래서 나와 김감독, 윤조연출은 철공소 아저씨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삼겹살을 굽는 자리에 가서 만호 아저씨는 다른 분들께 나를‘새로 지하에 이사온 20대 아가씨’라고 소개했다.(웃음)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그날 그 자리에 간 것은 잘한 일이었다. 내가 이곳에 새로 이사온 사람이라고 제대로 인사함으로써 그날 이후 오가며 편하게 인사하는 사이로 지낼 수 있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게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순간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하면, 새로 이사온 이웃으로서 내 소개를 하고 함께 삼겹살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륙공업사’ 사장님이 간판 글씨를 새로 쓰고 싶다며 이런 것도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단번에 “그럼 제가 써 드릴께요.” 라는 답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고, 거기서부터 문래동에서의 2015년 <7 1/2 프로젝트>의 두 번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순수한 시각에서- 여기서 말하는 순수한 시각은 문래동 철공소 단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경험이 없어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문래동 철공소 지역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그 과정에서 감각하는 그대로를 작품에 담을 수 있는 작가를 찾았다. 그러던 중 배서영 작가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녀의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너무나 즉흥적으로 한달 정도 문래동에서 작업실로 전시 공간을 쓰면서 이 지역을 관찰하고, 작업을 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이런 즉흥적인 모험을 즐긴다!) 구체적으로는 대륙공업사 간판과 벽화 작업을 시작으로 탐구를 해 보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다. 결국 대륙공업사 간판 작업과 <7 1/2 프로젝트>는 배서영 작가를 통해 연결되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대륙공업사를 통해 <7 1/2 프로젝트>와 배서영 작가가 문래동 철공소 단지와 연결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후로 나는 배서영 작가를 통해 문래동 철공소 단지에 공존하는 이들과 함께 소통하는 과정을 탐구하게 되었고 그 과정을 함께 경험했다. 최소한 그 순간에는 주변에 웃음이 있었고, 모두 행복해 보였다. 우리가 그 장소에 개입되면서 주변은 분명 변화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최 사장님: 예술가들이 왜 문래동으로 들어오는 건가요?
- 염 작가: 월세가 싸니까 그렇죠.
- 박 아저씨: 문래동 철공소 건물 2, 3층이 비어있어야 하는데, 계속 예술가들이 들어오니까 건물 주인들이 월세를 계속 올려요.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월세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져요. ​






2015. 6.20~7.18
오프닝 리셉션 : 2016.6.20 토요일 오후 4시
주최/주관 7 1/2
전시관련 홈페이지 : http://www.sevennahalf.com
 


​배서영​​(작가) / 2015년 5월~6월, 문래동 3가 54번지 ​
  
재작년 겨울, 누군가 전시를 한다기에 문래동 철공단지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당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나에게 문래동은 생소한 지역이었지만 적어도 철공소의 일상이 견고한 형태의 문화로 자리 잡혀 있는 곳임은 알 수 있었다. 또한 철공소와 철공소 사이, 간간히 걸려있는 철문 위의 전시 포스터나 좁은 골목길의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 예술가(이주민)들이 이곳에 공존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올 봄, 나는 오선영 큐레이터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가 기획하는 <7 1/2 프로젝트>에 참여 제안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나는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문래동을 다시 찾게 되었다.‘감각’이 궁극적 주제가 되어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올해의 <7 1/2 프로젝트>는 《기능적 불협화음》을 시작으로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원-주민과 이주민의 관계적 괴리 현상을 짚어보고 있었다. 프로젝트 맥락상 지역적 공존과 공생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에 나는 이 지역의 문화를 가늠할 수도 없는‘외부인’일 뿐 어디서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였다. 그러던 중 큐레이터로부터 문래동 철공소 단지 내에 있는‘대륙공업사’간판과 벽화 작업부터 시작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문래동에서의 작은 분주함은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였다. 대륙공업사 사장님을 통하여 음악교실 ‘만호 사장님’을 알게 되었고, 장미꽃을 그려달라는 옆집 철공소 사장님, 막걸리를 들고 다니시는‘동진 아저씨’등 나에게 말을 거는 이들이 많아졌고, 이러한 상호간의 관계를 시작으로 나는 철공단지 내에 형성된 문화를 어깨너머로 관찰할 수 있었다. 공존이 아닌 공생, 그것이 문래동이 좇는 삶의 문화였다. 이곳에서는 유토피아를 갈망하지 않았다.
 
사실 작가는 문래동에서 공생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급주택화나 상권 재개발에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하는 매개체이자 원-주민에게 도움을 받는 이주민일 뿐이다. 그런 이주민이 원-주민을 공생의 대상으로 이름 짓고 이미 형성된 원-주민의 견고한 문화에 어떠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얼마만큼의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 지 반추해 보게 된다. 고목나무에 피는 꽃처럼, 문래동과 작가의 접붙임이 유기적 창출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배서영은 전자기기 문명에 잠식된 현대사회를 반추하며, 작업을 통한 감각기관의 회생을 바란다. 사회는 독립된 분자들이 모여 하나의 세포를 형성하고 포화 및 균열에 의한 해체 그리고 또 다른 형태로의 결합을 이루는 순환의 영속적인 반복이라 생각하며, 삶의 유기적 구조에 집중한다.
 
배서영은 뉴욕대학교에서 조형예술과 학사(2013) 학위를 받았다. 2015 영은미술관 입주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14 경기창작센터 레시던시 프로그램 및 입주작가 상반기 기획 개인전 <해석의 재해석>(경기창작센터, 안산, 2014)에 참여하였다. <발견>(아트센터피플러스, 서울, 2014), <초유체를 품다>(커먼스갤러리, 뉴욕, 2013), <상징과 징후 사이>(뉴욕대학교 조형예술과, 뉴욕, 2011), <7인 7색>(한국예술종합대학교 조형예술원, 서울, 2010) 등 국내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재감자 자녀보호소 ‘Children of Promise’에서 <벽화 프로젝트>(뉴욕, 2012)를 기획하였으며, 경기창작센터에서 공간 기획 프로젝트 <共:作>(안산, 2013)을 공동 기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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