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슈테판 볼만 지음 / 조인한ㆍ김정근 옮김 | 277쪽 | 웅진지식하우스 | 13,800 원
나는 책을 읽는다.
고로, 나는 위험한 여자이다?
이유진(ujini1@hanmail.net)
굳이 소크라테스의 3단 논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책의 제목은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그럼 내가 위험하단 말이야?' 라는 의문을 동반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책의 상업적 성공에 1차적으로 필요한 '제목을 통한 관심끌기'에 일단은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의 직접적인 구매욕구를 결정하고, 또 입소문을 퍼뜨리는 근거가 되는 그 내용은 어떠할까? 이 책의 내용은 독서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또 미술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언뜻보면 서로 상관관계가 전혀 없어보이는데.. 그게 가능 하냐고?
가능했다! 저자는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책을 읽는 여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을 통해 독서의 역사 및 그 의미를 함께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책에 담긴 다채롭고 아름다운 그림들은, 읽는 즐거움에 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주고 있다. 사실, 책을 읽는 여성이라는 어떻게 보면 제한된 소재의 그림이, 이렇게 책 한권을 꽉 채우도록 많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작가들이 특별히 독서하는 여성들의 그림을 많이 그린 이유가 있지 않을까? 바로 책의 제목이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했기' 때문이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들 하여 현재는 독서를 장려하는 분위기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여자가 책을 읽는 것은 남성위주의 사회에 반기를 드는 것과 같았고. 독서는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여자는 남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생각이 현실을 다르게 보거나 비판하게 하여 그 당시의 자칭 안정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책을 읽는 여성은 위험하다고 여겨질 수 밖에! 초기의 그림의 배경이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사적인 장소인 '침실'이 많았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 후 점점 시대가 지날수록 좀 더 자유로운 포즈로, 정원, 술집 등 좀 더 자유로운 장소에서 책을 읽는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구성한 덕분에 이렇듯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그 시대 작품들의 특색있는 공통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고, 미술을 좋아하지만 그림을 보는데에는 서투른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단일 소재의 그림들을 시대순으로 배열하고 설명하여 미술적인 측면에서 이해가 쉽고, 중간중간 옮긴이의 '독서의 역사'에 관한 삽입글들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되어줄 것이다. 미술에 관한 깊은 식견을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사람이나, 너무 그림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들에게는 자칫 그림에 대한 짧은 설명이, 많이 부족하고 못마땅해보일 수도 있다.
예술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요즈음, 오르세미술관전에 전시되어 있는 유명한 '만종'이나 '고흐의 방'만을 알고 있는 것 보다는, 실제 오르세미술관에서 그 옆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독서하는 여성의 모습이 담긴 다른 작품 한 두개쯤은 더 알고 있어도 좋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그림의 역사를 통해 독서의 역사를 설명하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교양서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고? 그럼 어떤가. 여성들이여, 이 책을 읽고 더욱 위험해 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