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밀 아지트
남유진(dark54@naver.com) / 여고 2. 청주시 흥덕구 북대2동.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약 3분도 채 안걸리는 거리에 아주 조그마한 미술관이 하나 있다. 매일 다니는 길이였는데도 미술관이 하도 작고 지하로 뚫려 있어서 몇일전까지만해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그 우연한 만남이 은근히 나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
나는 예술품중 하나인 '인형'을 굉장히 좋아해서 지방에 살지만 서울 같은데 큰 인형전시회가 있으면 부모님께 빌어서라도 가곤 했다. 나는 미술, 아니 모든 '예술' 이라는 이름을 사랑한다. 하지만 정작 미술관이라는 곳은 학생인 나에겐 작은 사치라는 은연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여유로움' 이라는 감상의 첫째가는 무게가 미술관과 나의 사이에 벽이였다.
이런 나에게 그 조그마한 미술관은 하나의 비밀 아지트라는 생각이 물씬 풍기게 했다. 내가 하루중 가장 여유있는 시간은 학교 저녘 시간 이다. 저녘은 혼자 먹으면서 산책을 하기 때문에 유일하게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미술관을 발견한지 얼마후, 저녘시간에 길을 겉다가 문득 그 미술관 앞에 멈춰섰다. 작은 플랫카드에는 '한희숙' 이라는 이름 석자가 씌어져 있었다.
관람비는 일반인은 1500원, 학생은 1000원. 놀랄만한 관람비였다. 그러나 또 고민에 빠졌다. '1000원이면 너무 저렴한게 아닌가? 작품이 별로 안좋은것은 아닐까? 1000원이면 만화책3권을 빌릴 수 있겠지? 요번달에 용돈도 깎였는데..' 그러나 결국은 그 하얀 벽에 옹기종기 앉아있던 담쟁이 넝쿨들이 나를 지하의 세계로 데리고 갔다.
그 안에 있는 관람인은 나 한사람 뿐이 였다. 그것은 그 아지트를 완전히 나만의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인상을 주었다. 놀랄만큼 작은 인테리어, 은은한 보사노바의 속삭임, 그리고 작가의 소박한 그림들. 나는 작가와의 소리없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의 그림들은 자연 그 자체 였다. 자연에서 채취한 오브제들이 모순되면서도 자연스러운 어울림은 대단하지는 않지만 작은 향수를 떠올리게 했다. 한편은 어느 아이의 개구진 낙서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잠시 , 내가 기억하는 나의 최초의 그림을 떠올렸다. 그것은 엄마 아빠였다. 나는 항상 엄마는 크게그리고 아빠는 엄마보다 더 작게 그리곤 했다.
엄마는 생머리 였지만 나는 항상 엄마를 관찰하면서 뽀글뽀글한 머리로 그렸다. 그 시절에는 보이는 사물을 앞에 놓고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상상을 펼치던 해괴한 순수함이 있었다.
그리고 내 그림 앞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고 엄마는 내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런 희미한 내 잔상이 증발 될즈음 몇 안되는 작품 감상을 마쳤다. 나는 평소에 웅장한 그림을 좋아했고 많이 봐 와서 이런 소박한 그림은 내게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더운 여름이고 에어컨도 없었는데도 날아갈것같이 시원하고, 마음이 겸손해지는 기분 이였다.
글 남기는 책에 나의 진심이 담긴 소감을 붓펜으로 적었다. 작가는 내 글을 보고 나를 기억해 줄까. 그 밝은 지하의 세계에서 그늘진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면서 마음이 왠지 붕 떠있는 착각을 일으켰다.
그날 나는 왜 사람들이 미술관을 가는지, 왜 미술관을 가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인터넷이나 책으로 보는 유명한 화가들의 대작들은 나를 감동시키고 울리지만미술관은 감동보다 더 놓은, 행복에 휩싸이는 환상을 선물했다.
우울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작가의 작품들로 마음이 꽉 채운채 학교로 향했다. 나는 그 미술관에 첫발을 디딘 일에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그 작은 아지트는 공부에 찌든 내 10대의 시절에 찾아온 작은 오아시스 였다. 앞으로 더 좋은 '만남'이 있을것만 같은 행복에 겨운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을 들고온 오늘 이 글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