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cheori27@empal.com)
지난 7월 17일, 강원일보 창간 62주년 초대전으로 7.13~19일 사이 춘천미술관에서 열린 우안 최영식 화백의 '소의 눈, 솔의 눈을 보다'展에 다녀왔다. 좋은 전시를 찾아다닐 정도로 애호가이거나 전문가도 아닌 평범한 필자에게 최화백을 우연히 인터넷상에서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평범한 일상인이 미술전시회 관람과 같은 문화생활을 향유하기는 쉽지 않기에, 이번 기회에 안목도 넓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미처 좌석표를 구하지 못한 우리 일행은 입석으로 열차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 피곤함은 춘천미술관에 도착하여 우안화백의 따님으로부터 대접받은 솔잎차 한 잔에 스스르 풀렸다. 솔잎차는 전시장에 선 필자에게 온통 소나무로 둘러 쌓인 숲속에서 피톤치드향을 마시는 듯한 상쾌함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림 속 소나무들이 뿜어내는 향을 연출하는 차 한 잔을 소품으로 대동하고 뚜벅 뚜벅 전시로를 따라 걷다 보면 전시장은 그대로 솔밭이 되고 숲이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소의 눈, 솔의 눈을 보다' 인데, 그 제목부터가 평범한 감상자인 필자에게는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그림을 다 둘러 봤는데, 소의 눈에 보인다는 솔의 눈이 내겐 안보이면 제대로 못본 게 되지나 않을까, 은근히 겁나는 제목 아닌가. 하지만 '소의 눈, 우안(牛眼)'이 최영식 화백의 호임을 알고 나면, 솔의 눈이라는 은유를 그림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우안은 춘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서 근대 정통산수화의 맥을 잇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번 전시의 테마인 '소나무'에 관해서는, 오랜 탐구와 창조적 표현기법을 통해, 솔거의 소나무를 지향하는 구도적 열정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는 평범한 감상자로서나마 이러한 우안의 소나무에 대해 나름의 느낌을 전하고자 한다.
그림을 그리는 우안의 시선은 소나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며, 동시에 소나무가 자신의 은밀하거나 잘 드러내지 않던 부분들까지도 섬세하게 드러내는 솔직한 시선이다. 문인화에서처럼 대체로 단순하게 처리되어 글에 종속되는 소나무도 아니요, 극사실주의적인 카피로 완벽하게 재현되는 소나무도 아닌, 우안만의 시선이 머무는 지점에 서 있는 소나무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때로는 산하를 굽어보는 노송의 우람한 형상이나, 가끔은 상처입은 등걸이며 썩은 가지까지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 그리고 철따라 주변의 피조물들과 어울리는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운 풍경에 이르기까지, 감상자들도 우안의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우직하고 충직한 소의 큰 눈망울을 닮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
전시장 1층 정면에 떡하니 버틴 이 작품은 이번 전시회의 제목과 가장 어울리는 압도적이고 대담하며 큼지막한 느낌을 품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림을 그린 작가의 풍모와 우안이라 불리우는 눈매까지 그림 안에 그대로 녹아들어 버린 작가의 분신처럼 여겨진다.
작품들은 8년의 시간을 거쳐 수습되고 가다듬어지고 마침내 한 매듭을 이룬 우안의 시선과 영감을 감상자들에게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산수화라는 것을 절제와 여백의 미로 감상해야 한다고 학습해 왔는데, 우안의 그림에서는 구도도 여백도 괘념치 않는 자유로운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우안의 소나무는 전신을 우람하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굵은 등걸로만 다가서기도 한다. 어떤 화면에서는 솔잎의 날선 뻗침만을 바라보기도 하며, 어떤 화면에서는 바람을 따라 뻗어나가는 가지들의 굴곡만을 주시하기도 한다. 마치 대자연이라는 커다란 그림에서 눈에 띄는 어떤 부분만을 도려낸 듯한 자유분방한 시선이다.
한국화에서 오히려 작가의 심미안에 따라 대상이 실체와 다르게 표현되는 인상주의적 화면구성이 더 친근하다고는 하지만, 우안의 화면구성은 실체를 중시하면서도 작가의 느낌을 강렬하게 담아내는 굵직한 시선에서 비론된다. 우안의 소나무는 우리가 예상하는 어떤 한 그루의 실체가 아니라, 화면마다 담고 있는 소나무의, 또는 소나무를 향한 시선의 특별함과 함께 그 주위를 감도는 대자연과의 대화로 표현되고 있다.
역시 봄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작품명 옆에 빨간 하트모양 딱지로 감상자에게 매입되었음을 알려주는 그림들 중 상당수는 봄의 풍광들이었다. 내게도 그러했지만, 감상자들의 눈에는 역시 봄의 다양한 빛깔과 생동하는 풍광이 가장 쉽게 마음에 다가서는 게 아닐까.
우안의 작품들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소나무 주위를 맴도는 새들이다. 새들은 교묘하게 그림의 주인공인 소나무를 호위하며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을 감상자에게 지각하게끔 만든다. 새들은 넓다란 여백 속에서 도드라지게 튀어나오는 법이 없으며, 하필이면 가지 사이나 굵은 등걸 틈에서 뜬금없이 제멋대로 유영한다. 그러면서도 바람을 거스르듯 화면을 흐트리지도 않으며, 계절에 맞서 곤두박질 치거나 훌쩍 그 곁을 떠나 버리지도 않는다. 이 보일듯 말듯 소나무 주위를 맴도는 새들은 우안의 그림을 정적인 산수화로 느껴지지 않도록 만드는 마력을 지닌 듯하다.
만약 우리가 어느날 뒷동산에서 듬직하게 굵어가는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났을 때의 경외감과 생동감을 그림에 담는다면, 그 찰나의 느낌은 그림이 되는 순간 정지화면이 되어버리는 운명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안의 그림은 신비하게도 그 찰나를 '동적인 정지화면'으로 재생해 낸다. 새들은 이러한 역량에 묘한 역동성을 더해주는 에너지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안에게 여백이란, 구도상에서 절제되고 생략된 무엇이 아니라, 거기에 새들이 날고 우리가 살아 숨쉬는 거대한 시공간의 존재를 그려넣은 자리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여백도 온전히 비어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 이 점이 우안의 시선이 그림으로 재창조되는 과정의 특별함이라 여겨진다.
이것은 정지화면이 아니다!
전시장 2층에서도 전방의 시선을 향해 버텨 선 그림은 역시 대작인 '아침 고요 - 부귀리 솔모정'이었다. 살아 꿈틀거리며 하늘로 오르는 느낌, 서투른 관찰자의 시선이 나무의 높음과 펼쳐짐에 대한 경외로만 향한다면 놓쳐버리고 마는, 바로 그 느낌을 우안의 시선은 치밀하게 포착해 낸다.
관람이 끝날 무렵, 이번 전시작품들이 담긴 두툼한 화첩을 작가로부터 친필사인과 함께 선물받았다. 화첩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의 테마로 작품들을 모아 싣고 있었다. 관람 중 느낀 건데,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겨울의 풍광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자에게는 하얀 눈이 더 이상 여백과 그림을 구분짓지 않는 겨울 풍경화를 더욱 푸짐한 느낌으로 다가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층 전시장을 돌아나올 때 다시 한 번 맞은 편 벽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절벽 위의 저 소나무'는 그림이 감상자를 빨아들이는 힘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의 느낌으로부터 배우게 만들었다. 필자의 평범한 안목으로 보아도, '절벽 위의 저 소나무'는 감상자의 시선을 흐트렸다가도 다시 집중시키며 그림 전체를 꼼꼼히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바로 그런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곡운구곡 제2곡 청옥협 벽력암'이라고 소개된 작품인데, 실경산수의 솔직한 구도와 웅장함, 원경과 근경의 다양한 이야기가 현장에 서 있는 듯한 느낌으로 감상자를 그림 속에 빨아들인다.
내륙 한복판에 호수를 아우르고 물길이 굽이쳐 돌아드는 도시 봄내(春川)는 언제 찾아도 평화롭고 아늑한 금수강산의 정취를 안겨준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움, 그리고 우람함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우안 최영식 화백의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었던 행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겨질 것이다.
이번 전시는 분당에서 한 번 더 열릴 예정이었는데, 춘천까지 발걸음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안타깝게도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회가 너무 큰 성황을 이뤄 감상자에게 매입된 작품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한다. 이는 물론 기쁜 일이지만, 한가지 희망적인 사항은, 이번 초대전을 고비로 우안 최영식 화백은 화가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향해 정진하겠다는 자신과의 포부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솔거의 그것을 꿈꾸는 '소나무'를 비롯하여, 우리에게는 우안화백의 폭넓은 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