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요일 오후 인사동 풍경 김영태 | 전시기획자, 현대사진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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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 화랑 골목은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은 매우 분주하다. 화요일은 전시회 작품이 교체되는 날이고 수요일은 새롭게 열리는 전시회가 오픈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인사동에는 상업화랑 보다는 대관 화랑이 더 많이 있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미술시장은 불황기에 접어들었지만, 매주 수요일 사진전을 비롯한 수많은 미술 전시회가 새롭게 시작된다. 인사동에 있는 어느 대형 대관화랑은 내년 하반기까지 대관예약이 전부 잡혀 있다고 한다. 대관전시회는 신인 작가나 아마추어작가 또는 대학원 석사청구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일부 작가들이 인사동에서 화랑을 대관해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한다. 인사동에는 사진갤러리가 4곳 있지만 몇 년 전부터는 사진 갤러리에서만 사진전시회가 열리는 것이 아니라 인사동에 있는 화랑 여기저기에서 사진전시회가 열린다.
이번 주 수요일(2008년 10월 8일) 오후 늦게 필자는 강의 때문에 대구에 오기 전에 미처 관람하지 못한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 인사동 거리를 바쁘게 거닐다가 어느 중견 사진가를 우연히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느 사진가단체 회장님과 회원이 그 옆을 지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넸다. 그분은 '수요일은 인사동에 있는 여러 화랑에서 동시에 오프닝이 있어서 사진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어느 사진잡지사에서 오프닝 시간을 사진전이 열리는 갤러리 마다 순차적으로 조절하였다고 말을 건넸다.' 필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직도 일부 사진가 단체나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는 '사진계'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40대 이하 젊은 사진가들과 필자와 뜻을 같이하는 어느 사진평론가와 전시회 기획자에게는 '사진계'라는 용어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몇 년 전부터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사진가들의 활동무대는 사진계라는 울타리에 국한 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국내 메이저급 화랑들과 크고 작은 상업 화랑들이 사진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 사진가들의 사진전시회를 기획하여 전시하면서부터 한국사진은 서서히 새로운 지형이 형성되었다. 특히 작년과 올해에는 사진전을 기획하는 화랑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 결과 젊은 사진가들과 일부 중견사진가들은 사진계와 점점 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거리감이 생겨나고 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작가로서 자리를 잡은 젊은 사진가들은 자신과 관계없는 사진전시회 오프닝에 참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진계 내부에는 젊은 사진가를 발굴하고 성장 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와 사진작품을 판매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무 하지만, 미술화랑들은 기존의 미술작품 수집가들을 상대로 사진작품을 판매 할 수도 있고 젊은 사진가들을 해외에 진출 시킬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어 있다. 실제로 이미 미술시장에서 작품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일부 중견사진가들과 젊은 사진가들은 미술화랑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결과 이제 사진계라는 소속감과 역사적인 인식은 일부 중견사진가들과 원로 사진가들 그리고 아마추어 사진가들과 사진가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사진가들만 갖고 있다.
몇 년 전 부터 사진계가 주축이 되어 강원도 영월과 서울과 대구에서 사진계가 주축이 된 대규모 사진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일부 신인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젊은 사진가들에게는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젊은 사진가들의 관심은 국내외에서 개최되는 아트페어나 대형 화랑에서 기획하는 개인전이나 단체전에 참가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사진계 내부에 사진가들이 전업 작가로서 활동 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조성되어 있지 못하는 상황에 미술계가 사진에 관심을 갖고 사진작품 판매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진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미술에서는 사진과 다른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 졌기 때문이다.
그 외 에도 이제는 사진이 사진 전공자와 사진계만의 소유가 아니라 미술전공자들을 비롯한 타전공자들도 사진을 표현매체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사진계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는 원인 중에 하나이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사진계가 주체가 되어 한국사진문화를 주도하려면 다양한 표현양식의 사진작품이 수용 될 수 있도록 서울에 사진미술관이 건립되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전국에 있는 시립과 도립미술관에 사진 분과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이 실현되지 못 하면 한국사진계는 한세대가 지나기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