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 예술학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 9월부터 광주와 부산에서는 대규모 현대 미술 잔치인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었다. 그 보다 한참 늦은 10월 말에 시작했지만 대구에서도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진 비엔날레가 열렸다. 거리의 가로수가 대부분 낙엽으로 떨어지는 늦가을이 되어 이제 막바지에 이르는 비엔날레를 보기위해 11월 2일(일)부터 6일(목)까지 광주, 부산, 대구를 다녀왔다.
광주비엔날레
연례보고(Annual Report)라는 주제로 기존의 특정한 주제의 틀에서 벗어나 최근 1년 사이의 주요 전시와 미술현장, 사회문화의 흐름 및 이슈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광주비엔날레는 아프리카계 아메리칸인 감독 오쿠이 엔위저(샌프란시스코 아트인스티튜트 학장)의 기획 하에 그동안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보다 다양한 국가의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알제리, 가나, 이집트 등의 아프리카계 작가들과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의 남미 계열의 작가들은 우리의 근대의 역사와 유사하게 제국주의의 패권에 휘둘리던 자국의 흔적을 담아 미술이 사회적 목소리를 높이는 역할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층적인 현대 공간을 담아내 저 멀리 떨어진 나라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에 대한 호기심을 채울 수 있었다.
또한 광주 근교의 증심사를 오르는 산길에 위치한 의재미술관에서는 전통화가인 의재 허백련(1891-1977)의 수묵향 짙은 작품과 너무나 모더니즘적인 존 취리어(미국)의 단색조 회화, 그리고 전쟁과 파괴에 관한 프라닛 소이(인도)의 일러스트 그림 등이 같은 공간에 배치됨으로써 개념과 시대가 이질적인 작품들이 같은 곳에 앉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쳐내는 듯 했다. 광주의 작품들은 조금은 무겁고, 진지했지만 마치 ‘세계는 지금’이란 TV 프로그램 속에 들어온 듯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부산비엔날레
현대 미술을 프랑스의 사상가 조르쥬 바타이유(Georges Bataille)의 개념 ‘낭비(Expenditure)’라는 주제로 풀어본 부산비엔날레는 낭비의 개념을 비정형(informe), 위반(transgression), 탈젠더, 탈범주화, 에로티시즘, 재현적 질서의 해체, 주체의 분열 등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담론으로 확대시켜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머리 아픈 개념을 염두해 두지 않더라도 부산비엔날레는 광주보다 좀 더 가볍고, 위트가 있었으며 사회․정치적인 것을 넘어 일상적인 소재와 감각에 대한 실험을 보여주었다.
6개 도시의 삶에서 드러나는 일상의 소소한 불만을 노래한 불만합창단(텔레르보 칼라이넨, 올리버 코차 칼라이넨 작품)은 우리가 늘 상 느끼면서도 얘기하지 못하는 고용불안정, 월급, 가족들의 습관, 지하철에서의 예의 등을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노래하여 보는 이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었으며, 우리의 삶에 친숙한 사주팔자를 주제로 전시장에 놓인 페이퍼를 들고 즉석에서 점을 보게 하는 작품도 있었다. 또한 APEC나루공원의 조각 작품들은 거리 가구의 기능성을 겸비하여 작품의 경계를 풀어 도시 시민의 일상에 파고 들었다. 부산에서는 복잡한 도심 거리를 뚫고 맛보는 재미있고도 공감가는 미술 여행이었다.
대구사진비엔날레
한국, 중국, 일본의 동북아시아의 사진예술을 통해 아시아 사진의 흐름을 보여주었던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주제전인 개화기의 <오래된 기억-동북아시아 100년 전>, 특별전인 <변해가는 북한 1950-2008>, 50-70년대의 <숨겨진 4인전>을 통해 1800년대 말부터 흘러왔던 아시아의 과거를 보여주고, 주제전 <내일의 기억>을 통해 동시대를 보여주면서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성을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는 사진매체만의 특성 속에 보는 이를 녹아들게 하였다. 특히 100년 전의 과거 속을 포착한 한․중․일의 시가지와 가정 내의 일상 풍경들은 서양 사진사의 눈으로 동양 오지의 이질적인 풍속과 민속들을 분류해 본 수집품과 같았다.
시간이 흘러 이를 다시 보는 우리들은 서양 사진사와 같은 눈으로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60년대에 찍힌 남대문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놓쳐왔던 것에 대한 향수 어린 시선과 더불어 같은 시기 중국과 일본의 생소한 풍경들을 통해 또 100여년의 간격을 통해 동질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껴보는 다채로운 시간이었다. 주제전을 보고 거닐어본 대구 봉산동 거리의 아기자기한 화랑들은 늦가을의 고즈넉한 한적함을 만끽할 수 있는 산책이었다.
이상의 비엔날레를 보고 돌아오면서 정치색 짙은 광주, 설치와 실험들로 부산스러운 공간인 부산, 향토색 짙은 대구화단의 역사를 등에 업은 사진 예술의 고장 대구, 무척이나 세 도시다운 예술 공간이 잘 나타나는 전시들이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미술과 도시의 만남은 각 지역의 예술적 감수성을 한껏 드높여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작품 발굴의 토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