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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 개인전 리뷰

신정근


주말을 이용해 작품을 찾아 나선 나는 인터넷에서 대표적인 미술싸이트인 네오룩에서 몇가지 정보를 얻어 현재 전시가 진행 중인 갤러리를 찾다가 화가 강형구(4.21-5.17)의 전시가 아라리오 서울에서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리낌 없이 삼청동 가는 쪽에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로 향했다. 혹자들은 자칫 그의 이름을 비엔날레의 깜짝 스타였던 ‘애니마투스’의 작가 이형구와 헷갈려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됐든 서울에서의 전시가 진행 중인 시점에서 다음 달 8일부터 다시 아라리오 뉴욕에서 전시가 병행되는 이번 전시는 내가 눈으로 직접 보는 강형구의 전시가 될 것이라서 재미있을 것 같았다.

사실 조소를 전공하는 나는 젊은 조각가 김석이나 이환권 등의 조각가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부산의 스타 최소영이나 찰스 장, 김기라 혹은 입술만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같은 평면 작가들에 훨씬 더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강형구의 작품을 보는 것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관심이 입체를 주로 다루는 내가 평면의 화려한 색채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내 작업에 더 도움을 주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궂은 날씨와 약간의 비를 맞으며 인사동의 대표적인 갤러리인 큐브와 아트사이드를 지나 미술공간 現에서 잠깐 그림자 조각을 눈에 담고, 문이 굳게 닫힌 사루비아 다방과 갤러리 가이아를 지나 아침에 갓 구워진 빵가게의 빵냄새를 맡으며 풍문여고를 끼고 도는 골목으로 들어선 나는 쌀쌀한 날씨 덕택에 조금 이른 시간에 아라리오 갤러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아라리오 천안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그곳 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로 생각되는 이곳에는 2년 전쯤인가 작가 공시네의 전시를 보기 위해 들른 이후로 오랜만에 찾은 듯하다.

오전 11시가 안된 조금은 이른 시간때문인지 컴퓨터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화랑의 큐레이터들과 책장에 빼곡이 꽂힌 작품집과 자료들, 그리고 갤러리를 청소하시는 아줌마의 굽은 허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거대한 인물 회화!......

1층에 전시된 거대한 인물들, 그러니까 스위스 태생의 헐리우드 배우였던 오드리 햅번, 아트 팩토리의 공장장이었던 앤디 워홀, 자학의 극치를 보여 주었던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말이 필요 없는 르네상스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영원한 섹스 심볼 노마 진 베이커(마를린 먼로)가 화가 강형구에 의해 재해석되고, 재탄생된 채로 나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알루미늄 판 위에 그려진 햅번과 먼로의 인물 회화는 프레임에 맞춰진 것처럼 옆으로 길게 늘여지고 조금은 사실적이지 않은 그러나 작가에 의한 강렬한 아우라(Aura)을 뿜어내며 관객들을 대하는 듯 했다. 나는 그동안 여러 기사문과 미술 잡지들에 의해 주워 듣기로는 화가 강형구는 대표적인 포토 리얼리즘(Photo Realism)의 작가인 척 클로스처럼 대상을 굉장히 사실적으로만 그리는 작가로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형구의 작품은 척 클로스와는 분명 상반되고, 차별화된 어떤 묵직함이 평면 작품에서 묻어나오는 듯 했다.

로댕의 ‘예술의 숲’이라는 책을 통해서 “작가는 자신의 사상(思想)이나 감정(感情)이 작품에 묻어나오게 해야 한다.” 라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이전 세대를 살았던 수많은 대가(大家)들의 작품 또한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처음 마주친 강형구의 회화에서 나는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 보았던 브랑쿠시의 조각이나 로댕의 작은 청동시대 에디션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작지만 탄탄하고 작가가 그것에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했던 그 느낌이 다시 찾아오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은 어떤 색다른 작품과 마주한 일종의 급격한 카타르시스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론 무익의 작품처럼 하이퍼 리얼리즘(Hyper Realism)은 아닐지라도 대상의 숨은 지표까지 충분히 드러낼 줄 아는 그의 예의 진지하고, 견고한 붓놀림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한 부분들이 작품 앞에 선 나를 오히려 더 주눅 들게 했을 런지도 모른다.

자, 이제 다른 상념들은 다시 나와 당신의 호주머니 속으로 쑤셔 넣고, 나는 다시 화가 강형구의 인물 회화의 첫인상으로 돌아간다. 그래, 그의 작품? 크다. 크기에서 대중을 압도한다. 이전에 성곡 미술관에서 보았던 척 클로스의 거대한 인물 판화 5점이 설치된 벽면을 넋을 잃고 한 동안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러한 느낌이다. 인물이 가진 구체적인 형상이라던지, 아니면 그 대상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삶을 살았고, 강형구에 의해 어떤 색감과 질감으로 그려졌으며, 그가 전시 글에 나와 있는 것처럼 변화에 대한 두려움 없이 회화 안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들어가고자 했는지, 혹은 '말 잘하는 논객' 진중권의 말대로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아우라를 ‘합성 리얼리즘의 푼크툼(The Punctum in Synthetic Realism)’ 이라고 거창한 미학적 언어로 포장하고, 지칭했던지 간에 나는 그의 회화 앞에서 그저 ‘커다란’ 그림이다 라고 밖에 첫인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다 내가 본 것은 그야말로 커다란 그림이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은 그 후의 지식과 앎을 표방한 이성적이고도 논리적인 분석일 뿐이다. 어쩌면 그러한 감상들 조차도 종이 위에 올려지는 순간부터 모든 낱말과 단어들과 문장들은 그에 대한 찬사, 혹은 혹평의 근위병들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작품은 크다, 거대하다, 그래서 관객을 압도하는 힘이 크고, 그렇기에 보다 더 자세히, 그리고 면멸히 들여다 보려고 애쓰게 된다. 그게 나의 솔직한 ‘일차적’ 감상 표현이다. 넓은 갤러리 한 쪽 벽면에 강형구의 회화 2점이면 꽉 차 보인다. 그에 의해 그려진 다빈치의 모습에서 발산되는 핑크빛과 보라색의 강렬함을 보라, 얼굴의 4분의3만 그려진 턱을 괸 앤디 워홀의 정면을 바라보는 명료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 마트인 흰색에 은빛이 더해진 머리카락들...... 80년대의 스타 워홀은 세로로 된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 고흐는 어떠한가. 미대생들의 필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곰브리치의 두꺼운 서양 미술사같은 책 안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먼로의 약간 일그러진 혹은 둥근 거울에 비춰져서 그런 효과를 낸 듯한 인상으로 여전히 남성 관객들을 유혹하는 표정이다. 작가는 묘하게도 자신의 작품 속의 인물들의 모습을 충실히 옮겨 놓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 만한 것들로서 대중에게 접근한다. 그런 것들이 그의 흐트러짐 없는 회화 속에서 대중적인 빛을 발산하기도 하나보다. 또한 친근한 인물의 형상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수많은 궁금증에서 탈피하여 오로지 그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그의 작품은 거대한 운석 덩어리 같다. 일본 도쿄 역 근처에 세워진 수많은 직사각형의 증권 회사나 은행 등 거대 기업의 모습들 같다. 그러한 것들이 작가로부터 작품이 되어 거대한 프레임에 대상을 담아내고서 갤러리 벽면에 어떠한 정치적 논리나 사회적 부조리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작품 그 자체로서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어찌 보면 인물의 사실적 묘사는 고루하다. 그리고 보편적이다. 다수의 대중들은 매일 새로운 광고를 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작품의 홍수 속에 산다. 진부하고, 정적인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세포들을 흥분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러한 것들을 시시때때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숨 막혀 심장이 터져버릴 듯 한 일이다. 그러한 와중에 그의 인물에 대한 해석력과 거대한 스케일은 우리로 하여금 강형구의 새로운 대상의 탐색과 탐구를 바라게 하도록 돕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라리오 갤러리는 최근 선정한 소속작가 중에 그의 이름을 당당히 발표한 게 아닐까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곁들여 본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나는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두 번이나 갤러리 문을 들락날락했다. 첫 번째는 놀랐고, 두 번째는 ‘역시나’였다. 결과적으로 내 눈에 퀄리티(Quality) 높은 좋은 작품을 담아 둘 수 있어서 괜찮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글. 신정근 강원대학교 미술학과 조소 전공 4학년 재학 / 연락처 : 010-9904-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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