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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게서 예술을 보다

신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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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를 찾다.
우리는 일단 숙소에서 가까운 지하철로 가서 리볼리 루브르 역으로 향했다. 그 근처 역 지하도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리고, 즉흥 재즈를 연주하는 흑인들도 보였다. 지하도에서 엿듣는 파리의 자유로움이 너무 좋다. 드디어 역사적인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선 우리는 오늘의 일정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온종일을 이곳에서 보낼 수는 없는 탓에 안타깝지만 그 수많은 유물과 작품들을 단시간 내에 눈과 가슴에 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각자 보고자 하는 작품들이 있어서 우리는 둘씩 짝을 지어 루브르를 누비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 여행을 같이 동행한 여자친구와 함께 이탈리아 예술의 부흥기를 이끈 다빈치의 역작이자, 수많은 논란과 가설의 중심에 있는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한국의 미디어 작가 중 누군가가 루브르의 ‘모나리자’를 보고 나서 “이 작품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미완성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현대의 작가들도 그 작품을 보고 반했을 정도니 다빈치가 얼마나 치밀하고 중요한 사람인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나 루브르의 유명세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머리가 검은 아시아 사람들이 보이고 미술학도로 보이는 사람들과 한국말, 그리고 일본말이 득실거린다. 우리는 그들 틈새에서 단 한마디도 한국말을 내뱉지 않았다. 어찌됐든 나는 ‘모나리자’만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ㄷ’ 자로 구성된 거대한 루브르는 어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중세 백작의 으리으리한 대저택같은 느낌이었다. 외벽에는 현란하고 사실적인 인체 조각상들이 입상의 형태로 조각되어 있었으며 그 광장의 가운데에는 유리로 된 피라미드가 루브르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는 듣던 대로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수많은 작품의 용광로라는 느낌을 전해 받기에 충분했다. 엄청난 양의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의 인체 조각상들과 발굴 당시 깨어져 나간 돌조각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 또한 굉장했다. 그 작품들에 이미 나는 압도당했으며, 치밀하고, 치열한 수학적 계산과 완벽한 비례에 의해 인간의 조형성과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했던 옛 조각 선배들의 땀과 열정과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오는 그 조각들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고, 시력마저도 흐려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림 또한 마찬가지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라파엘로의 그림은 물론이고, 이후의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회화와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끌어다 모은 방대한 양의 회화와 공예품들, 그리고 장식품들은 마치 누군가에 의해 홀린 듯 나를 이끌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마치 과거의 힘의 논리에 의한 권위와 권력의 상징으로서 그러한 상아탑들이 루브르에 재현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집트, 이탈리아, 독일, 북유럽의 수많은 나라로부터 갈취?, 혹은 쟁취한 그 많은 세계의 유산들은 프랑스를 먹여 살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모나리자’의 모습 앞에 잠시 동안, 아주 잠시 동안 서 있을 수 있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모인 탓인지 그림 주변으로 반원의 가드 라인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통제하는 요원들도 보였다. 예상외로 작은 크기에 놀랐지만 나도 여느 군중들처럼 카메라 셔터를 몇 번 눌러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주 가까이에서는 감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다빈치의 작품을 나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는 뿌듯함에 카메라 액정을 들여다보며 후련한 마음으로 돌아 설 수 있었다.

루브르는 나에게 지금껏 보았던 그 어떤 작품들 보다 더 많은, 어찌 보면 과한 양식을 선사하였다. 때문에 나의 눈과 마음은 주체할 수 없는 과식을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지키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은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노인과 아이와 젊은 여성과 과격한 청춘들까지도 모두 압도 할 수 있는 명료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랜 시간 파리의 빛이 되어주고, 작품의 진정성을 간직해온 그래서 나같은 사람에게도 그 문을 가감 없이 열어 주었던 루브르의 관용에 감사한다. 언젠가 다시 할 이곳을 위해 기도를.

몽마르뜨 언덕에 부쳐......
생 뚜앙 벼룩시장 속 흑인들의 검은 피부와 아랍인 특유의 체취들, 수많은 중고품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표지판에 써 있는 ‘몽마르뜨’라는 글자를 따라 걷고 또 걷기 시작했다. 20세기의 유럽의 거의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거쳐 가고 피카소와 자코메티가 예술에 대해 고민하고 논쟁했던 그곳. ‘몽마르뜨 언덕’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우리들은 끝없이 계속되는 지루한 오르막길을 이런 저런 수다와 잡담, 그리고 우리의 코와 눈을 자극한 작고 예쁜 빵들로 허기를 채워가며 언덕을 올랐다. 그곳의 작은 광장에는 예술의 나라답게 거리의 화가들이 자신들의 소품들을 팔기도 하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캐리커쳐를 그리며 가난한 예술(arte povera)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 켠에서는 스페인 출신의 뛰어난 괴짜 화가였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었고, 대부분 그의 평면적 그림을 입체로 옮긴 브론즈로 마감된 작은 조각품들이었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그곳에서 달리의 작품을 사들일 것처럼 화랑 관계자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모습은 문 밖의 거리의 화가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을 느끼게 했다. 대중에게 자신들의 예술을 구걸이라도 하는 모습은 거장의 예술 세계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어쨌든 그러한 예술의 고급성과 저급성의 차이와는 관계없이 나 또한 얼마 전 나의 작품을 구걸하고 또 그것에 대한 하찮고, 얄팍한 댓가를 주머니 속으로 넣은 터라 몽마르뜨의 수많은 피카소의 추종자들에게 “당신들은 자존심도 없느냐?” “그러고도 당신들이 진정한 예술을 한답시고 예술로서 세상을 조롱할 수 있느냐?” 따위의 말은 입 안에 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왜 살아있는 예술은 무시하고 이전의 예술에 대하여 칭송하고 감동받는 것일까? 혹은 예술 세계 안에 있는 귀족 예술가들과 그렇지 못한 밖에 있는 보통의 예술가들을 왜 궂이 구분하는 것일까? 마치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엔 수많은 예술가들과 작품들이 뒤엉켜 난무하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피카소의 작품을 손에 넣기를 바라고, 마티스의 그림을 최고의 가격에 낙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결국 작품은 예술가의 생존 여부에 달린 것일까? 사실 역사에 남을 고급의 예술은 그것을 정확하게 비평하고, 감상할 줄 아는 특정 집단에 의해 그 생명력과 역사적 정당성을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진정 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예술의 ‘혼’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예술의 ‘추구’였는지........ 미술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려해야 할 것 같다.

- 본 글은 올해 2009년 2월에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고 쓴 몽마르뜨와 루브르 박물관의 단상들을 본인의 여행 일기에서 발췌,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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