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연희 / 경원대학교
조망해보면 역사적이거나 정치적 맥락을 무색 시킬 수 없는 건축물의 색다른 전용에 대한 궁금증이 꽤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나 싶다. 각 작품의 진정성과 완성도를 떠나 단언하자면 일단 작가수도 그렇거니와 작품들도 많고 광범위해서 집중을 오래하기 힘들었다. 비엔날레와 같은 형식은 정해진 일정 안에서 모든 것을 소화해야하는 사람에게는 감상하기에는 불편한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짐을 지면서 몇 시간씩 관람할 가치를 더해주는 작업들이 있었다. 거기서 나름의 분류를 시도해 봤다.
먼저 이‘상징적 건축물’에 대한 비판을 전제하며 날카로운 감수성을 드러내는 작품(작가)를 수 있다. 으레 공간에 대한 다양한 해석으로써 숙고되는 방법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장소가 쉬이 간과되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뿌리가 있다고 한다면 그 의미는 한층 무거워 진다. 지워져서는 안 되는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신문 스크랩과 사진들로 채운 작업, 본 기능을 상실한 문짝을 떼어내 설치한 모습은 기록이라는 범주에서 그 표현을 드러내고 있다.
그다음은 자유로운 놀이터가 될 위기에 처한 옛 터를 새로운 지각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작업들이 눈에 띄인다. 지각의 분방함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드러내는 이 천진난만함은 공간을 본연으로, 혹은 그것을 훨씬 넘어서 공간이 낯선 관람객들에게 부드러운 악수를 청한다. 수송대(운반대)에 위치한 정민승과 정재일의 작업 'A Intermission'은 노란색 조명아래의 웅장한 사운드로 관객을 압도 시킨다. 넓은 공간을 전유한 괴물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전체적으로 낡고 우울한 분위기가 감도는 공간이 주어지면 시끄럽고 유쾌한 곳보다는 자신을 돌아보기에도 한층 더 적절한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러한 기대에서 작가들은 ‘나’ 혹은 ‘타자’에 대한 성찰이나 관계에 대한 고민들을 풍부한 어조로 읊조린다.
분류로 정리할 수 없는 ‘예외’도 물론 있었다. 다양한 교집합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위아저씨나 군인들이 들락날락 하는 이색풍경 속에서 이제야 공간전용에 대한 아귀가 제대로 맞아가는 느낌이 든다. 원래는 기무사 전체가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활용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것저것 재다가 결국 부분적으로만 취했다고 한다. 단순히 호의적인 의견으로 마무리한다면, 사간동쪽을 향하는 길이 제법 풍부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