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인의 정체성을 묻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아리랑꽃씨展>을 보고.
재외동포인 남편을 따라 아이와 함께 찾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아리랑꽃씨展>은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내게 감동과 고민의 지점을 동시에 마련해 준 독특한 경험이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조차 알지 못했던 내가 국적이 다른 재외동포 남성과 결혼하리라고 그 누가 꿈이나 꿨겠는가? ‘디아스포라’라는 문제는 그처럼 느닷없이 우리들의 삶에 들이 닥칠 수 있는,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나의 일인 것을 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남으로서 그제야 알게 되었다.
2007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시민권이나 영주권 등의 자격으로 해외에 체류 중인 한국인은 5백 5십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다문화 가정이나 한국에 호적을 갖고 있지 않은 2세, 3세, 그리고 ‘기러기 가정’ 등의 이유로 해외에 머물고 있는 장기 체류자의 숫자까지 포함한다면 2009년인 현재 재외 한국인의 수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넘는단 얘기다. 이는 너댓 명 중 한 명의 한국인이 재외동포인 셈이니, 요즘 한 집안에 친척 한 집 외국 나가 있지 않은 경우가 드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한국인의 배타적 민족정서는 그렇게 민들레 꽃씨처럼 세계 곳곳으로 날아가 낯선 땅에서 꿋꿋이 뿌리를 내린 아리랑 꽃씨들을 자꾸만 밖으로 밀어낸다. 재일동포 운동선수 추성훈씨가 대대로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지켜온 한국 국적을 자신이 한국에서 체류한 몇 년간의 쓰디쓴 경험으로 인해 포기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외동포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서 모은 <아리랑꽃씨展>은 단순한 전시의 차원을 넘어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뜻 깊은 자리였다. 만주, 간도, 연해주 등을 거쳐 중국으로 날아간 꽃씨 중 하나인 박광섭 작가의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익살스런 작품이나, 러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날아간 꽃씨인 독립국가 연합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어둡고도 숭고한 작품 세계는, 전시장을 즐겁게 뛰어다니는 4살 짜리 딸아이를 잡으러 다니는 와중에도 나의 가슴 속 깊이 감동의 여운을 진하게 남겼다.
다만 <아리랑꽃씨>라는 전시 제목이 조금 측은하고 애처로운 감성을 자아내게 하여 진부한 신파조의 느낌이었고, 이는 척박한 땅에서도 당당히 살아남은 재외동포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조국을 떠난 이들을 개척자가 아닌 유민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은연중 담겨있는 느낌이 들었다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또, 아시아의 피카소로 불리는 신순남 화백의 작품이 전시 브로셔나 해당 홈페이지에 전혀 게재되어있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쉬웠던 점이다.
남편은 총각 시절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면 ‘한국인이란 무엇이다’라고 말해줄지 무척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얻은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만약 누군가 일곱 번 넘어져도 또 다시 일어나는 용기를 보여준다면 그가 바로 한국인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너는 그를 네 형제요 자매로 여겨야한다.”
다문화 가정이 점차 늘어가는 오늘날, 우리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한국인이 무엇이라고 설명해 주어야 할까? 국립현대미술관의 아리랑꽃씨전은 그런 고민의 씨앗을 내 마음에 심어 준 의미 있는 전시였다.
- 안미나, 34세,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