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39)
임지영 / 현 동국대, 울산대 강사
미술전시 관람에 정석은 없다
국내 미술관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대중과 친숙해지기 위해 노력해 왔다. 전시된 작품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도슨트프로그램을 운영하는가 하면, 전시와 연계하여 체험의 장을 마련하기도 하며, 아예‘찾아가는 미술관’을 기치로 대중으로 하여금 미술관과 미술전시를 가깝게 느끼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대개의 미술관에서는 나름대로의 관람 수칙을 내세워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을 주눅 들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작품에 손대지마시오’라든가, ‘사진촬영금지’와 같은 작품보호차원에서의 규정 말고도 에티켓을 강조한 제지들이 꽤나 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자주 경험할 수 있다.
사실 사진 촬영의 문제도 작가가 저작권을 의식해 특별히 요청한 경우가 아니라면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 한 허용해도 무방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더욱이, 국내 미술관 실정에서는 전시실 내 관람자를 배려한 벤치도 거의 찾아보기 드물다. 행여 맘에 드는 작품을 만나 피로한 다리도 쉴 겸, 여유 있게 감상도 할 겸 작품 앞에 진을 치고 앉아 있기라도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아마도 처음 몇 분은 봐줄 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지를 당할 것이 뻔하다.
외국의 경우 제도와 관습에 얽매인 전통적인 전시공간을 상징하는‘화이트 큐브’에서조차 관람객들의 모습은 소풍을 나온 듯 자유롭고 편안해 보인다. 사진촬영이 허용되는 경우가 많고, 삼삼오오 작품 앞에 둘러앉아 스케치나 토론을 하기도 한다. 또 아이들을 데리고 와, 전시실 바닥에 아예 엎드린 채로 즉석에서 색종이를 오려붙이고 물감까지 풀어 그림을 그리는 모습도 자주 목격된다. 바로 세계적인 명화를 앞에 두고 벌어지는 일이다. 특별히 허가받은 모사가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화의 차이로만 생각할 문제일까.
최근 국내에서 국제적인 행사들을 치루며 국민들에게 동방예의지국으로서의 에티켓 정신을 더 강조하는 분위기이긴 하다. 미술관도 공공장소일진데 그야말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이라면 삼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을 터,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관람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아직도 국내 미술관의 전시관람에는‘정석’이 존재하는 것 같다. 미술관이 언제나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하면서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을 감시와 제지의 굳은 얼굴로 대하면 되겠는가. 관람객들을 향한 좀 더 열린 마음이야말로 미술관이 대중과 보다 가까워 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