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마종기의 시 <밤 노래 4>는 이렇게 시작한다. “멀리 있으면 당신은 희고 푸르게 보이고 / 가까이 있으면 슬프게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가까이 있음”이 가능할까? 우리는 멀리 있는 희고 푸른 빛만을 쫓아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세열에게 멀리 있음과 가까이 있음은 서로 교차하는 두 개의 축이다.
작가는 흑색 바탕에 푸르고 흰빛의 작은 원을 왼쪽 상단에, 백색의 긁기와 덧칠하기로 표현된 인간형상들을 전면에 그려놓고 있다.
오세열, 무제, 2017, 80×130㎝
<무제>는 “인간의 본래성과 거리를 두고‘저기 멀리’존재하면서 인간을 지배하는 보편 이념을 포기하고, 바로‘여기 있는’네 자신으로 돌아오라”는 노자의 말, 거피취차(去彼取此)를 떠올리게 한다. 그림 속의 인간형상들은‘저기 멀리’에서‘여기’로 귀환하길 희망하는 우리들의 슬픈 모습이다. 하지만… 어떻게?
분청사기조화문편병, 15세기
노자는 인간의 최고 상태를 “인위적 조작이 아직 닿기 이전의 어린아이와 같은 무위(無爲)의 상태”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러한 경지를 분청사기조화문편병의 백색귀얄붓질 위에 무심하게 그어진 선묘의 천진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근법적인 이성의 개념 틀 속에 갇히기 이전의 혼돈의 때, 쉼과 움직임이 요란하지 않게 나아가고 끊임없는 자발성의 표현만이 가득했던 때. 우리 안에는 15세기 조선도공의 피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오세열은 전생에 분청사기 도공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