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류인(1956-99)을 처음 만난 건 1987년 무렵 ‘비무장지대’라는 조각단체의 창립모임에서였다. 그룹 ‘비무장지대’에서는 두 달마다 현장답사를 했는데 판문점을 시작으로 곳곳을 다녔다. 화순 운주사 천불동을 그와 함께 걸으며 4월에도 내복을 입더라 했더니 그는 바지 단을 걷어 내복자락을 내보였다. 그때가 6월이었는데 뼈가 시려서라고 했다. 그는 모임엔 거의 옷과 손에 물감이나 석고가 묻은 채였다. 어느 날엔 ‘히~’하고 웃으며 들어서는데 앞니가 빠진 모습이었다. 전날 아버지(류경채, 전 서울대 교수)가 들어오시다가 문틀 못에 옷이 걸려 찢어졌단다. 아버지가 버럭 소리치시자 달려내려 가 엉겁결에 앞니로 못을 물어 빼다가 그리됐단다.
1997년 9월 인사동 모 화랑에서 개인전을 할 때였다. 어느 날 깡마른 사람이 들어서는데 못 알아볼 정도로 수척해진 류 선생이었다. 머리는 안정되지 못해 일렁였고, 표현이 좀 민망하지만 마치 송장 같은 몰골이었다. 그를 ‘인이 형’이라 부르는 여자후배가 수행했는데 꼭 가봐야 할 데가 있다 했다는 것이다.
2년 전 같은 전시장에서의 개인전 때 들르지 못해서라는 이유였다. 그 몰골에 술을 한잔하자고 했다. 식사나 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그의 후배도 포기한 듯 괜찮다고 했는데, 식사는 않고 그 몸에 소주 한 병가량을 마시는 게 아닌가. 게다가 밥값은 꼭 자기가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날 방문이 작별 인사였던 것 같다. 그리고 15개월 후인 1999년 1월 그는 치열했던 짧은 삶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