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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전쟁에서 발견한 내란의 예감

좌은서



살바도르 달리, 〈삶은 콩이 있는 부드러운 구조물(내란의 예감)〉, 1936, 캔버스에 유채, 99.9x100cm,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


  살바도르 달리의 〈삶은 콩이 있는 부드러운 구조물(내란의 예감)〉(1936)은 초현실주의 시기 작품으로 달리의 고국인 스페인에서 벌어진 내전과 관련된 작품이다. 스페인 내전은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스페인이 누리던 특수가 사라졌고 곧 경제위기로 이어지며 발발하게 된 것으로 같은 민족끼리 총구를 겨누게 만든 비극적인 이념 전쟁이었다.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에 대한 직접적인 두려움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얼핏 보면 두 인물이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데 위쪽 인물은 얼굴, 가슴, 한쪽 다리를 가지고 있고 아래쪽 인물은 손과 형상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인체 부분을 가지고 있다. 즉, 두 인물을 합쳐야만 하나의 정상적인 인간이 된다. 즉, 하나의 인체가 분리되어 싸운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스페인 내전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달리가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기 6개월 전쯤 이탈리아에 거주하면서 그린 그림으로 이미 전운이 감돌고 혼란스러웠던 스페인 상황을 알고 있던 달리가 악몽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은 내장처럼 보이지만 실은 삶은 콩으로, 이는 전쟁 시기에 어떤 고통, 굶주림을 시사하는 모티브이다. 그리고 위쪽 인물의 얼굴을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데 이는 고야의 그림 중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에서 따온 것이다. 사투르누스는 자신의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워 자신의 자식들을 잡아먹은 잔인한 신으로 신화에서 등장했던 인물이다. 신화 속에서 등장했던 인물을 얼굴에 대입했다는 점에서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초현실주의자의 면모를 볼 수 있음과 동시에 잔인한 인물을 고름으로서 인간의 잔인한 폭력과 불안감에 대해 공포심을 느꼈던 달리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조그마한 이미지의 인물 역시 달리의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스페인 내전과 관련된 작품 중 이 작품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스페인 내전을 누구보다 직설적이면서도 초현실주의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보통 한 나라 안에서의 내전은 형제들끼리 싸우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지고는 하는데 하나의 인체가 두개로 나뉘어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은 그 어느 비유보다 내전의 아픔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상체의 얼굴에 자신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얼굴로 대입함으로서 혈육을 파괴하는 그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모습이 달리가 스페인 내전에 대해 얼마나 큰 공포와 환멸을 느꼈는지 알 수 있게끔 했다. 

  이 그림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림의 주제인 스페인 내전이 한국전쟁과 굉장히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다. 두 전쟁은 모두 외국의 세력이 개입된 국제적인 내전이었으며 정치적 이념 갈등이 전쟁의 배경이었다. 이런 정치적 사상 갈등이 일어난 이유는 출신배경이 다른 정치 엘리트들이 서로 자신의 이념을 고집하며 충돌한 것으로 그 뒤에는 각자의 정치적 뜻에 맞는 외국 세력들(우리나라의 경우는 미국과 소련이었으며 스페인의 경우는 독일과 소련)이 있었다. 그러나 이념 전쟁이라는 명목 하에 전쟁의 피해를 본 것은 다름 아닌 한국과 스페인의 국민들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에서 우리는 당장 눈 앞의 가족과 이웃에게 총구를 겨눠야 했다. 외세의 꼭두각시가 되어 같은 민족을 공격하는 전쟁은 그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엘리트들의 욕심 아래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시간이 지나며 전쟁은 그저 역사 속의 한 사건이 되어 무고한 희생과 강력한 공포는 미술 작품으로만 남아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작품과 비슷한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한국전쟁을 겪으며 그때 느꼈던 공포와 전쟁의 잔인함을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낯선 전쟁>전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결국, 달리의 이 그림과 <낯선 전쟁>전의 작품들은 전쟁 당시 살아있던 작가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 전쟁에 무뎌진 현 세대에게 다시금 전쟁의 파괴성과 그로 인해 겪어야만 했던 두려움을 상기시키며 전쟁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셈이다. 

  비록 달리는 전쟁이 두려워 고국을 떠났지만 고국 내에서의 내전을 하나의 인체가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으로 나타냄으로써 같은 한 민족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고 내장과 비슷한 모양의 삶은 콩을 배치해 전쟁으로 인한 빈곤, 굶주림과 같은 고통까지 모두 비유적으로 담아냈다. 초현실주의는 전쟁으로 인해 망가지는 사회의 아픔을 꼬집기 위해 태어난 사조였지만, 달리가 그려낸 초현실주의만큼 전쟁의 아픔을 잘 드러내는 작품도 없었던 셈이다. 죽은 형의 그림자를 떨쳐내려 애썼지만 매일밤 악몽에 시달렸던 달리는 전쟁에서도 벗어나고자 했으나 전쟁 역시 그를 놔주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는 평생 자신을 괴롭히던 트라우마와 전쟁 앞에 초현실주의 그림으로 마주함으로써, 자신 내면의 깊은 공포를 극복하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의 거장이 될 수 있었다. 

좌은서 eunjwa11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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