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하늘 속에서 보여주는 70년 전 쓰라린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혼자 울다 웃다하며 한 시간 쯤 되어 비로소 정신 차리고 보니 구름 속에 천 갈래 만 갈래로 그 당시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내 나이 20대 막 피어나던 청춘의 꿈은 하루 아침에 짓밟히고 말았다고 할까. 송두리채 빼앗긴 나의 운명이 되고만 6.25 전쟁이 뼈속까지 아프게 할 줄을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고 할까. 이제금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눈물이 마르지를 않는 내 자신의 운명을 하느님께 맡기면서 요즈음 ‘한국화 100년 특별전’에 한 작가로 참여했다는 자랑거리로 나 자신을 달래면서 슬픔이여 안녕 하고 마음을 다독거렸다고 할까요.
세상만사 돌고도는 운명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같이 슬픈 역사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다고 한탄 하면서… 그래도 나는 그림공부와 함께 오늘날까지 살아온 내 자신을 뒤돌아 보면서 가신님들 특히 내 남동생을 가슴 깊이 묻고 살아온 오늘날까지 그래도 예수님을 의지하고 살아왔다고 할까요.
오늘의 나 자신을 반성해 가면서 그 당시를 잊으려고 나에게 타이르면서 눈물지었다. 그렇지만 잊어지지 않는 6.25전쟁이 생각할 수록 항상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언불진의(言不盡意,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라고 할 수 밖에… 그리고 그 당시 내가 어찌나 건강하고 부지런하여서 엄마한테 가까운 시골 가서 쌀 사가지고 오겠다고 말하고 시골 가는 길에 갑자기 미국 비행기(쌕쌕이) 소리에 놀라 가다말고 옆에 돼지우리 간으로 숨었던 일이 이제금 생생히 생각나는 오늘 70년 전 천지간에 한스러운 날이다.
그때 서울대 영문과 2학년이었던 동생(내 바로 밑 남동생)을 생각할수록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생각할수록 불쌍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북받친다. 아무쪼록 좋은데 가서 잘 있기를 빌면서…
언제나 아무쪼록 가신 님들께 예우하면서 지나간 세월의 실꼬리 속에 묻혀버리고 불쌍한 우리 민족들을 위해 잠시 기도하면서 그래도 역시 누나는 이제금 내 운명을 탁하고 원망하면서 ‘한국화 100년 특별전’에 끼었음을 자랑한다고 알려주었더니 구름 속에서 동생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금동원(1927- ) 한국화가, 호는 남전. 이화여대 수료. 전미국중고교사대상 워크샵 지도자 역임. 2015 미수초대전(한벽원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