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계기로 큰 변화를 맞이한 일상의 모습 중 하나는 많은 수의 사람을 원격으로 수용하는 공연장의 풍경일 것이다. 고대의 원형 극장처럼 중앙의 무대를 중심으로 빙 두른 가상의 좌석에는 링크를 타고 입장한 관객의 얼굴이 스크린을 한 칸씩 차지한다. ICT를 활용한 가상현실에서의 접촉 방식은 현실에서도 낯익은 것이 되어가고 있다. 놀랄만한 사실은 2010년, 마치 10년 뒤에 찾아올 코로나 시대를 예견하듯 미국의 작곡가인 에릭 휘태커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온택트식 무대 공연의 모체인 ‘가상 합창단(Virtual Choir)’을 최초로 유튜브 상영한 것이다.
전 세계에 흩어진 가수들은 합창을 하기 위해 실제로 한 번도 모인 적이 없다. 지휘자가 보내온 반주와 지휘 영상에 맞추어 각자의 성부를 노래하여 녹화본을 전송하고, 지휘자는 각각의 콘텐츠를 편집해 ‘가상합창단’의 공연을 완성한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실제로는 합창을 한 적이 없지만, 그들의 노랫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가상의 관객을 위한 가상의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완벽한 합창이 된다. 물리적인 실체가 없지만 존재하는 현실에서 재생되고 있는 가상합창단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특유의 매혹적이고 몽환적인 음색이 마치 오디세우스가 배를 타고 가면서 들었던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우리를 어디론가 끌고 가는 듯하다. 바다가 보이는 눈앞의 현실을 잊게 해주는 천상의 장소가 노래가 들려오는 저편의 어딘가에 반드시 있는 것처럼.
그러나 세이렌이 부르는 노래를 듣기 위해 오디세우스의 몸은 기둥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날 우리의 몸과 오감은 가상의 경험을 앞에 두고 더 이상 묶여있지 않다. 에릭 요한슨의 작품에서처럼 가상의 세계는 실세계의 풍경처럼 사진 찍히며, 최근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인 에이스트릭트(a’strict)의 <Starry beach> 처럼 가상의 해변에서 실컷 파도를 맞아볼 수도 있다.
아무도 우리의 수용체를 통과해오는 감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묻지 않는다. 환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그러면서 우리 자신은 여전히 진짜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