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연구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핑크빛이죠!”
위의 짧은 대화에서 핑크빛 삶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분홍색은 일반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분홍색을 키워드로 연상한다면 사탕, 봄, 꽃, 아이와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달콤함, 향긋함, 부드러움, 따뜻함과 같은 추상적인 느낌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언어들을 교차시켜 보면, 분홍색은 행복이라는 개념으로 향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핑크빛 하루’였다고 하는 말은 잊지 못할 만큼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색은 개별적인 경험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로 변하기도 하며 그에 대한 연상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세상 속 분홍색이 같을 수는 없다. 아직 피지 못한 꽃봉오리에도, 시들어 축 늘어진 꽃에도 ‘분홍색’이라는 단일의 색채 언어를 적용할 수 있지만,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다. 캐나다계 미국 화가인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 1913~1980)의 1969년 제작된 연작에서 독특한 인상을 남기는 분홍색은 보는 이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며 특별한 경험을 선물한다.
필립 거스턴, 〈Town of Edge〉, 1969 ©MoMA
〈Town of Edge〉는 넓은 화면을 가진 큰 작품이어서 다가서면 설수록 부분들로 나누어 볼 수밖에 없다. 탁한 하늘색으로 텁텁하고 거칠게 칠해진 바탕 위에 쌍둥이처럼 꼭 닮은 두 존재가 찰싹 달라붙어 검은 이동수단을 타고 있다. 이들의 얼굴을 덮고 있는 하얗고 우뚝 솟은 뾰족한 복면에는 무심하게 꿰맨 재봉선 이외엔 아무런 묘사가 없다. 뚫려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복면 위에 그려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이들의 눈은 새까만 물감을 넉넉히 바른 붓으로 죽 그었을 뿐이다.
아무것도 없어 황량한 배경과 무심한 존재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복면을 쓴 이들의 손이다. 복면 아래로 드러난 손은 분홍색으로 채워져 있다. 구체적인 묘사가 없어 진짜 손인지 복면처럼 장갑을 착용한 것인지 단정할 수 없지만, 하얀 복면과 대비되는 짙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왼편에 앉은 이는 시가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서 매캐한 한 모금을 피우고 있고, 오른편에 앉은 이는 곧게 뻗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시가를 끼운 채 운전대를 잡고 있다. 이들은 옅은 분홍색의 공간으로 향해 간다. 그 방향을 따라서 보는 이의 시선도 따라간다.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공간은 탁한 흰색 위를 거친 붓 자국들이 분홍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더구나 캔버스 위에 일관된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투박하게 가해진 붓 자국들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찬 희뿌연 세상을 떠올리게 만들어 입안을 컬컬하게 만든다. 일반적인 분홍색의 부드러운 달콤함은 찾을 수 없으며, 저들이 피우고 있는 시가처럼 거친 씁쓸함만이 느껴질 뿐이다. 무기처럼 보이는 막대 옆에서 시가를 들고 있는 그들의 분홍색 손은 기분 좋은 향긋함과는 거리가 멀다. 애써 손에 칠해진 빨간색을 지워냈지만 이미 깊게 스며들어 짙은 분홍색으로 물든 것처럼 보인다.
필립 거스턴, 〈City Limits〉, 1969 ©MoMA
〈City Limits〉에서 화가의 분홍색은 더 강렬해진다. 덕지덕지 바른 빨간색과 흰색 그리고 회색 물감들은 서로 뒤엉켜 기묘한 분홍빛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마치 질척거리는 무언가를 잔뜩 흘려놓고 황급히 서두르며 닦아낸 모양새다. 그래서 붉은 빛이 가득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끓어오르는 뜨거움보다는 이미 열기는 수습되어 식어버린 찬기만이 가득한 도시가 펼쳐져 있다. 그 위로 3인조의 복면 무리가 등장한다. 하얗던 복면은 엷은 분홍색으로 변해 있고 붉은 피가 튀어 흔적을 남긴 것처럼 그들의 복면 위로 붉은 붓 자국들이 발견된다. 원색의 붉은 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탁한 분홍색 흔적들은 이상하게도 피비린내를 풍긴다. 무언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듯 잿빛 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태우는 그들은 짙은 분홍색이 점령한 건물들 앞을 지나고 있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삼각형의 복면을 쓴 존재가 KKK(Ku Klux Klan의 약자)단을 구성하는 클랜즈맨(Klansmen)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KKK단은 미국의 남북전쟁 후 세워진 인종차별주의적 극우 비밀조직이다. 이 화가가 유대인이며 KKK단이 폭력적인 테러를 저질렀던 그의 유년 시절에 주목한다면, 위의 두 작품은 KKK단의 폭력성으로 황폐해진 도시 공간을 통해 역사적인 사건과 화가 개인의 상처를 다루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필립 거스턴, 〈The Studio〉, 1969 ©The Estate of Philip Guston
분홍색의 사전적 정의는 하얀 빛을 띤 엷은 붉은색이다. 즉 분홍은 빨간색과 흰색이 혼합된 붉은색으로 그 기원은 빨간색에 있다. 거스턴의 회화 속 분홍색은 일반적인 분홍색과 거리가 멀다. 이 작품들의 분홍색에서 행복이라는 부드러운 감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The Studio〉에서 거스턴은 클랜즈맨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도 개인적인 신념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즉, 악의 ‘평범성’을 드러낸다. 거스턴의 그림엔 비린내 나는 붉은 빛이 감돌지만, 그 사실이 두려웠던 화가가 스스로 그것을 닦아내는 과정에서 독특한 분홍색은 탄생했다.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상징하는 분홍색은 그의 고통스러운 이야기와는 융화되기 어렵다. 피로 물든 손을 하얀 비누로 닦다가 보면, 비누에는 탁한 분홍빛의 거품이 남는다. 잔혹함은 흐려졌지만, 또 다른 불쾌한 흔적이다. 이처럼 화가 고민했던 흔적들이 독특한 색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사랑스러운 분홍색은 그의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다. 거스턴의 분홍색은 악을 자행하는 자들에 대한 공포,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의 색이다. 그렇기에 화가가 마주한 세상은 마치 그의 그림이 주는 느낌처럼 달콤하기보다는 씁쓸하고, 부드럽기보다는 거칠며, 향긋하기보다는 비릿하다.
거스턴은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 자신의 내면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핑크빛 세상이란 마주하기에는 어렵기에 흐린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래서 희뿌옇게 보이는 붉은 세상인 것은 아닐까.
“거스턴,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 ‘이’ 핑크빛이죠.”
신세영 twoben128@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