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童心)의 세계, 노은님의 네버랜드
어릴 적 대부분 한 번쯤은 동화 속 피터팬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른의” 사회로부터 벗어나 꿈의 나라 ‘네버랜드’로 떠나 영원히 어린아이로 살아가는 피터팬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환상 속 이야기로 남아있다.
“나는 건 정말 쉬워, 즐거운 일을 상상해봐!”
우리들의 내면 깊이 잠들어있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영혼을 툭 건드리는 피터팬의 대사이다. 마치 무엇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이스크림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라고 말하는 아이를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싱숭생숭하면서도 반가운 감정과도 같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어린아이였던 시절을 거쳤기 때문에 이를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즐겨 부르던 만화주제가, 즐겨 먹던 불량식품 등을 오랜만에 접하는 날에는 옛 추억에 잠겨 흐뭇한 미소로 과거를 회상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는가.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지친 마음을 달래려 다양한 방식으로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추억하곤 한다. 노은님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의 위안을 받으며 그녀가 구축한 동심(童心)의 세계에 초대받은 기분이 든다.
노은님, <어느 봄날>, 캔버스에 혼합재료, 161×225cm, 2019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 ‘단순함(simplicity)’으로 일관 지어 말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우리가 처음으로 크레파스를 잡고 스윽스윽 그렸던 엉터리 그림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고난이도의 기술과 화려한 기법은 없지만 그 속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진실 되고 따스한 분위기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정겨운 인사를 건네고 있다. 노은님은 단순히 동양과 서양 등과 같은 어떠한 시류나 사조에 갇혀있기보다 ‘노은님’만의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작품세계를 추구하였다. 어린아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통해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예술에 대한 창조적 의미와 그 순수한 본질을 찾는 그녀만의 독특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번에 탄생시킨 생명체들은 응축된 형태이지만 매우 강렬하고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를 가감 없이 표출하고 있다. 즉, 어른들의 세계처럼 복잡하고 불필요한 요소는 과감히 제거한 채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는 그녀의 포부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노은님, <물놀이>, 종이 위에 아크릴, 32x26cm, 2015
노은님은 한국에서보다 독일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경험을 작품을 통해 상기시키고 있다. “나는 집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집 뒤에는 산이 있는 작은 도시에서 자랐다. 매일 물고기를 잡고 그들과 놀았다.”라는 그녀의 말에서 작품에 등장하는 자연의 요소들은 어린 시절의 노은님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묵직하고 투박한 선들이 무심하게 흘러내리고 쨍한 색채와 강렬한 형태가 화면을 차지하는 등 노은님은 그녀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로 작품에 자신의 옛 추억을 다시 소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참다운 예술은 진정한 순수함을 원한다.’고 말했듯이 그녀는 예술의 순수성이 가지는 힘에 대해 무한한 믿음을 갖고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단순함의 미학’을 토대로 한 그녀의 삶의 가치관을 작품을 통해 함께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노은님, <깊은 바다>, 캔버스 위에 혼합재료, 133x169cm, 2011
네버랜드에서의 모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웬디에게 1년에 한 번씩 네버랜드로 데려다주겠다는 피터팬의 약속은 결국 완전하게는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도 웬디의 딸, 웬디의 손녀를 네버랜드로 데려다주는 피터팬의 결말은 여러 세대를 거쳐서도 인간에게 있어 ‘동심(童心)이란 영원한 것’임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살기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젊은 날을 추억하며 그 원동력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은님은 피터팬의 결말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순수하고 천진난만했던 우리의 영혼들이 사실 평생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음을 전한다. 그 영혼을 깨울 수 있게 만드는 노은님의 작품에서 그녀가 데려가려던 동심의 세계, 네버랜드가 바로 자유롭고 열정이 넘치던 우리들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안채원 chaewon6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