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은
예술가와 구도자, 그리고 중재자: 백남준의 디지털 참선
전통적으로 서양에서의 평면예술의 주요한 요소는 표현과 묘사로, 사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사실주의와 태양빛을 표현하는 인상주의 미술 등 시각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큰 사랑을 받아왔다. 반면 동양의 회화는 예술적 기교와 표현보다는 인간의 내면과 삶을 근본적으로 표현하는데 더욱 집중했다. 그렇기에 동양의 미술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보다는 화가 자신의 주관이 들어간 더욱 자유롭고 이상화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이유로 동방의 회화는 작품 자체로서 보다는 화가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기 위한 개인적 수행의 도구로서 역할이 컸다. 이에따라 전문 화공들뿐만 아니라 승려들 역시 묵상(默想)을 위해 만다라(曼陀羅)나 탱화(幀畵)를 그리기도 하였으며 선비들이 써내려간 아름다운 서예작품 역시 이와 같은 자기 수양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기 위한 명상으로써의 예술은 현대까지 이우환(李禹煥, 1936~), 박서보(朴栖甫, 1931~), 김환기(金煥基, 1913~1974) 등 한국의 단색화가들로부터 계승되어오고 있으며, 그들의 이러한 동양적 예술 철학은 2000년대부터 재평가되어 현재 한국이나 일본 등 동양권 국가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미 1960년대 동양 불교의 선사상을 주제로 한 독특한 작품을 서방 예술계에 선보인 진보적이고 독특한 작가가 있었다.
머리를 위한 선 (Zen for Head, 1961)
백남준은 우리에게 미래 지향적인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비디오 아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1960년대 초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Jr., 1912~1992)의 영향을 받아 “젠”(Zen), 즉 선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하던 기간이 있었다. 그의 첫번째 젠 시리즈의 작품은 ‘머리를 위한 선’(Zen for Head, 1961)으로, 1961년 독일 쾰른에서 작곡가인 칼하인츠 슈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2007)과 아티스트 마리 바우어마이스터(Mary Hilde Ruth Bauermeister, 1934~)가 기획한 《디 오리기날레》(Die Originale)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백남준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잉크에 담근 후 바닥에 놓인 두루마리 종이 위를 기어가며 직선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직선 하나를 긋고 그것을 따라가라”는 단순한 디렉션으로 진행된 이 독창적인 퍼포먼스 작품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 그는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에 얇은 직선만이 나타나는 ‘TV를 위한 선’(Zen for TV, 1963) 등 직선이 강조되는 작품을 주로 제작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발표된 그의 직선의 ‘선 시리즈’는 아이러니하게도 수행이라는 선의 본질적인 철학은 가장 옅게 나타나며 본인 역시 “나는 종교에서는 그저 모티프를 얻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련의 선 시리즈를 제작하던 그는 그저 모티프만 따온 작품이 아닌 더 깊은 종교적 철학을 담은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길 원했고, 1963년 아시아의 종교, 역사, 전통, 음악 등에 대한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동양 철학과 사상에 대한 공부를 하던 백남준은 특히 참선 수행과 내면의 깨달음을 중요시 여기는 일본의 선불교(禪佛敎)에 큰 영감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걸음을 위한 선’(Zen for Walking, 1963), ‘필름을 위한 선’(Zen for Film, 1965) 등 참선과 명상에 대한 주제를 담은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백남준은 이 시기 동양적 모티프의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으나, 후에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됨과 동시에 예술적 커리어에 큰 전환점을 가져온 작품은 1974년 선보인 ‘TV부처’(TV Buddha, 1974)라고 볼 수 있다.
TV부처 (TV Buddha, 1974)
불상과 마주보고 있는 TV의 브라운관에는 CCTV로 촬영된 불상의 정적인 이미지가 끊임없이 비치고 있는데, 이는 부처가 마치 텔레비전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얼핏 보면 간단해 보이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이전 서방의 현대 예술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내면적 수행을 강조하는 부처가 과학 기술 시대의 문화를 위한 도구인 카메라로 인해 그저 TV의 단순한 이미지로 출력, 소비되는 모순적인 모습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며 백남준만의 현대 사회에 대한 고찰과 비판, 그리고 참선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등을 내포하고 있는, 당시로서는 아주 독창적이고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뉴욕에서 발표된 후 관람자들에게 철학적 화두를 던지며 큰 센세이션을 몰고 왔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많은 예술 평론가들에게 큰 찬사를 받았다. 미국의 예술 비평가인 어빙 샌들러(Irving Sandler, 1925~2018)는 오래된 불상과 새로운 미디어인 TV를 대조하며 전통적 가치와 현대 사회의 충돌을 표현했다고 평했으며, 독일의 미술 사학자인 에디트 데커(Edith Decker, 1593~) 역시 서구의 사상과 동양의 가치관의 대조를 잘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작품 본질은 그저 두 다른 문명의 대조가 아니었다. 백남준은 작품 속에서 과학 기술에 기초한 현대적 문명 사회를 상징하는 텔레비전과 전통과 명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부처 사이의 무한한 페어링과 랑데부를 통해 상호 소통을 시도하며 현대 시대의 새로운 자기 인식과 명상의 방법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였고, 궁극적으로는 두 이질적인 문명 사이의 화해와 융합을 주장하고 있다. 이 작품은 발표된 해에만 해도 《’74 아트 나우: 미국 예술의 셀러브레이션》(Art Now ’74: A Celebration of the American Arts), 《제 5회 국제 실험 영화 공모전》(5th International Experimental Film Competition), 《70년대국제 예술의 측면: 프로젝트 74》(AspekteInternationalerKunstam Anfang der 70er Jahre: Projekt 74)등 다양한 국제 전시회에 초청받아 전시되었으며, 이후 여러 바리에이션을 보여주며 예술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중 특히 1982년 백남준의 회고전에서 소개된 새로운 ‘TV 부처’는 불상을 비추는 모니터를 거대한 흙더미 속에 설치하여 동양과 서양의 문화의 대화는 물론 자연과 기계 문명의 결합과 이해를 꾀하며 그의 예술적 관점이 한단계 더 넓어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 시기 이후 백남준은 자신의 삶과 깨달음을 녹여낸 선적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었고, 그의 후기 퍼포먼스와 비디오 아트는 모두 이 시기의 경험과 깨달음 그리고 각성의 한가운데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백남준은 경력 내내 인류에 대한 사랑과 애정으로 ‘초국가적’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었다. 그는 20세기 중반의 모더니즘 미술의 다양성을 위해 서구에서는 생소했던 동양적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며, 현대 서구 사회의 기술에 내면의 수행이라는 동양적 사상을 결합하여 그 조화를 바탕으로 예술을 인류의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는 매체로 승화시켰다. 이러한 두 이질적인 문화의 조화로운 융합은 현대 미술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의 독창적인 작품은 현대 미술사에서 불멸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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