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주
소피 칼(Sophie Calle, 1953~)은 프랑스 출신 소설가이자 미술가로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개인적인 사건에 실제와 허구를 섞는 방식의 작업을 지속해왔다. 사진과 텍스트를 병치하는 그의 작품에서 텍스트는 단순히 사진을 설명하는 캡션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작업의 일부로 존재하며 이는 칼 만의 독특한 형식으로 다른 작가들과 구분된다. 1980년대의 작업에서 그는 가상의 인물로서 생활을 한다거나 위장으로 자신의 존재를 감추며 타인의 존재와 흔적을 훔쳐보고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작업들은 부재하는 대상에 대한 관음증적 욕망의 반복이라는 특징을 가지며 일상적 행위와 위법적 행위를 가로지르는, 조금은 위험한 프로젝트들로 구성된다.
소피 칼, <베니스에서의 미행>, 1980, 55점의 흑백사진, 23점의 텍스트, 3점의 컬러지도,
사진 각 17.1 x 23.6cm, 텍스트 각 30.2 x 21.7cm, ed.3, 페로탕 소장
1979년 소피 칼은 오랜 해외생활을 끝내고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파리는 그가 나고 자란 도시이지만 도착한 직후 그는 낯선 도시에 떨어진 듯 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생소한 곳에서의 시간을 보낼 방법을 궁리하던 칼은 모르는 사람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하룻밤 재우며 그 모습들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기도 하고, 여행 중 사용한 카메라를 가지고 거리에 나와 모르는 사람들을 미행하는 작업을 한다. 그렇게 미행하던 사람들 중 한 남자와 우연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이 경험을 계기로 그는 <베니스에서의 미행Suite Vénitienne>(1980)을 시작하게 된다. 그 남성에게서 베니스로 이사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칼은 그의 일정에 맞추어 베니스로 향한다. 13일 동안이나 타인이나 다름없는 한 남자를 추적하는 이 사진 프로젝트는 추후 장 보드리야르의 글과 함께 책으로 출판된다. 고립과 고독의 감정 때문에 낯선 사람에 매력을 느꼈던 칼은 그 후 몇 년 동안 정체성과 낯선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탐구를 지속한다.
<베니스에서의 미행> 프로젝트를 끝낸 다음 해, 칼은 작업의 연장으로 다시 베니스로 돌아가 한 호텔에서 3주 동안 청소부로 위장 취업해 사람들의 흔적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프로젝트, <호텔l'hôtel>(1981)를 시작한다. 그는 객실의 물건을 뒤지거나 문사이로 들려오는 소리를 몰래 듣고, 흐트러진 물건들을 촬영하며 또 일부를 허구로 재구성하여 사진-텍스트로 작성한다. 앞선 <베니스에서의 미행>에서 칼은 미행하는 남성에게 들키지 않게 군중 속 익명의 가면을 썼다면 <호텔>에서는 환경에 어울리는 직업의 가면을 쓴다. <호텔>에서는 특히 타인의 존재를 탐하고 흔적을 모으는 칼의 초기 작업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1981년 2월 16일, 그는 첫 프로젝트의 대상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칼만을 위한 핍쇼Peep Show가 시작된다. 그로부터 3일 후 첫 ‘대상’이었던 투숙객은 떠나고, 칼은 그를 그리워할 것 같다고 말한다.1)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24번 방, 한 커플의 대화를 몰래 듣던 그는 갑자기 권태를 느끼며 애써 흥미를 가지려 노력하지만 결국 지루함에 나가떨어진다.2) 그리고 <호텔> 작업의 마지막 날인 3월 6일, 그는 갑자기 호텔에 가득 찬 기묘한 침묵을 느꼈다고 서술한다.3)
소피 칼, <호텔, 29번 방>, 1981, 사진과 텍스트, 21.4 x 14.2 cm, 테이트 소장
소피 칼, <호텔, 24번 방>, 1981, 사진과 텍스트, 각 10.2 x 14.2 cm, 페로탕 소장
편지를 몰래 뜯어보고 음식을 훔쳐 먹고, 화장품을 훔쳐 쓰면서 타자의 자취를 향유하며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것에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마지막에 칼이 느끼는 것은 침묵이다. 소피 칼이 만들어낸 결여와 만족을 위한 행위 뒤에 느끼는 침묵은 사실 욕망 자체가 욕망을 존재하게 했으며, 욕망의 대상이 그 원인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한 투숙객이 체크아웃 했다는 서술을 하며 덧붙인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떠났다”4)는 글에서 볼 수 있듯, 애초에 칼이 욕망한 것은 관음증적 행위로는 채워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호텔>의 어지러운 방의 사진과 그 밑에 위치한 물건 목록, 일기 내용은 칼이 빈 방을 처음 대면했을 때와 같이 누군가에 대한 비밀을 알려줄 수 있을 듯 감상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제욱시스의 눈을 미혹한 파라시오스의 베일과 같이 인간은 누구나 베일 뒤의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진다. 관람자의 응시는 알고자하는 욕망으로 작품 위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욕망은 작가의 욕망이 가리키는 대상에 대한 탐구 또한 포함한다. 라캉의 도식에 따르면 예술 작품은 ‘스크린’으로 기능하며, 상징계와 실재계를 중재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때 관람자의 욕망의 대상은 대상의 현존에 연연하지 않으며, 그 원인은 욕망 그 자체이기 때문에, 관람자는 사실 원하던 실재의 것을 얻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호텔>은 그 비슷한 것을 제공하며 관람자의 눈을 달랜다.5) 여기서 관람객이 포착한 대상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원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체가 바라보는 것은 자신이 보길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실재계의 공백을 덮는 베일이자 스크린이다. 소피 칼은 실재에 대한 리비도적 욕망을 행동으로 옮겨 규칙의 위반으로 해소하고자 했지만 당연하게도 실재 자체에 닿는 것은 실패한다. 대신에 그는 실재 같이 보이는 어떤 것, 공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침묵을 느끼고 이를 작품으로 제시한다. 부재하는 대상의 자취를 포착하는 행위는 대상의 부재를 다시금 확인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호텔>은 소피 칼이 느꼈던 관음증적 욕구를 관람자에게 불러일으키며 무언가 비밀을 알려줄 듯, 베일 사이로 보이는 한 줄기 빛으로 여전히 우리들을 미혹시키고 있다.
문진주 brightnight08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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