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 이라는 단어,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이 단어는 이제 생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일부 식덕(식물 덕후)들에 의해 조용히 유지되어 온 식물에 대한 관심은 코로나19 이후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급기야 ‘반려식물’ 이라는 단어도 생겨난 것이다.
식물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는 것은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다음 뉴스에서 ‘식물’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였을 때 2019년에는 102,000건의 기사가, 2021년(1.1~11.30)에는 123,000건의 기사가 작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지난 10월 농촌진흥청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1.1%에 달하는 참가자가 코로나19 이후 반려식물에 관심이 늘었다고 답변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미술계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올해, 식물과 관련된 작품이나 전시가 유독 늘어났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몇가지 예를 통해 미술계에 침투한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한다.
왼>《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2021.9.10.-11.28)
오>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2021.10.8.-2023.12.17.)
먼저 국립현대미술관을 살펴보자. 덕수궁관과 과천관 모두 최근 식물 관련 전시를 개최하였는데, 덕수궁 관에서 열린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2021.9.10.-11.28) 에는 미술작가는 물론 식물학자, 조경사도 참여하였다. 과천관에서 열린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2021.10.8.-2023.12.17.)는 아예 정원이 작품인 전시로, 정원디자이너 황지해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권혜원, <급진적 식물학>, 2021, 4k 싱글채널 비디오, 6채널 오디오 설치, 7분 39초
이 중 《상상의 정원》에 참여한 권혜원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권혜원 작가의 올해 신작은 경기도미술관의 《광대하고 느리게》(2021.11.11.-2022.2.27.)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는 <나무를 상상하는 방법>(2021)에서 덕수궁에 살고 있는 식물들의 역사를 탐구하고 상상하며, <급진적 식물학>(2021)에서는 식물연구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식물을 바라봐 온 우리의 태도를 전복한다.
이 두 작품을 통해 우리는 길에서 마주치는 식물들은 물론, 집 안의 반려식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우리 집에서 생활하며 자구를 낸 너는 어디에서 왔을까? 너의 계보는 무엇일까? 하고 물어보게 될 것이며, 내가 식물을 인지하고 바라본 눈길에 담긴 태도를 점검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지만 때로는 소품처럼 지나치곤 하는 식물들은 그동안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장가연, <그린 룸Green Room>, 2021, 가구와 식물, pvc, 알루미늄, 철제 플라스틱, 천
반려식물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올 가을 SeMA 창고에서 열린 《리스펙트 플랜트》(2021.9.23.-10.3)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주어졌다. 전시에 참여한 네 작가는 나무가 인쇄된 천과 종이로 공간을 만들고(이예은) 마치 식물이 주인인 것 같은 자신의 방을 본딴 공간을 설치하고(장가연), 식물 기르기에 실패한 경험으로 만화를 만들고(박예솔), 인간이 식물을 대상화 해온 다양한 방식을 보여줌으로써(박가현) 인간과 식물이 맺는 여러 가지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이제는 작품 제목에도, 전시 소개에도 등장하는 ‘반려식물’이라는 단어는 우리 인간이 식물과 맺는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식물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복잡해지면서, 식물을 삶을 함께 이어나가는 ‘반려’의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집에도 나와 모종의 타협을 통해 동거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반려식물이 여럿 있다. 사람으로써 식물을 들이고 죽이고, 그러다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맺어지는 관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관계를 들여다보고, 새롭게 인지하도록 돕는 작품과 전시가 있어 우리의 관계는 더욱 풍부해지고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