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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GB24] (5) 이세현 Lee Se Hyun

김송미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전시 참여작가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작품 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2024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2024.9.7-12.1 광주파빌리온


이세현1): 우리에겐 무엇이 남아있는가, 혹은 ‘무엇을 남길것인가


김송미

5.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작금의 젊은 세대는 점점 벌어지고 있는 사건 당사자의 기억과 공식적인 기록의 틈에서 신음한다. 이 사건을 겪지 않은 젊은이들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을 잃어야만 했는지, 또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완전히 이해하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간극 속에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기억이 모두 타 재만 남은 자리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데, 그것은 거리를 두고 사건을 바라볼 가능성이다. 젊은이들에게는 발터 벤야민이 『일방통행로 Einbahnstraße』(1928)에서 말했던 비평의 터전, 즉 “관점과 전망이 중요하고 입장을 취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한 세계”를 만들어낼 힘이 있다.2) 광주에서 활동하는 중이며 202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파빌리온의 《무등: 고요한 긴장》에 참여한 이세현 작가는 사진을 통해 이러한 힘을 발휘하고자 한다.

광주파빌리온에 전시된 그의 〈푸른 낯, 붉은 밤_옛 국군광주병원〉은 5.18 당시 수많은 사람이 치료를 받기도 하고 심문을 당하기도 한 공간이었으며, 현재는 공원 한가운데 있는 폐허로 방치되고 있는 국군광주병원을 촬영한 사진이다(도판 1). 사진은 어둑한 시간에 중앙에 정문이 있는 구도로 병원을 보여준다. 정문을 중심으로 양옆에 있는 방에는 각각 다른 색의 조명이 켜져 있다. 키가 큰 나무로 둘러싸인 오래된 건물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일순 위화감을 준다. 하지만 반대로 마치 어두운 밤에 집안을 봤을 때 환한 내부를 보고 '사람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건물을 밝히는 빛은 한때 이곳에 들어왔던, 그리고 스러지기도 했던 영혼의 현존을 암시한다. 또 각 조명의 색이 다른 것은 작게는 국군광주병원, 크게는 5.18을 둘러싼 다양한 감정과 교차적인 관점이 여전히 존재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병원 내부에서 촬영된 〈푸른 낮, 붉은 밤_옛 국군광주병원 보일러실〉을 밝힌 붉은빛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시체를 태우던 보일러실에 감돌았을 공포를 환기한다(도판 2).

사실 이세현의 사진이 포착하는 것은 특이하지 않다. 그가 포착한 장소는 한때는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이었지만 이제는 폐허가 되었거나 일상의 공간 속에 포섭된 지 오래다. 이 일련의 장소들을 엮는 것은 기억이다. 그로 하여금 이러한 장소들을 물색하게 하는 것은 이 장소들을 들끓게 했던 갈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장소와 관련된 역사적인 맥락을 모르는 관람자라면 이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이세현은 사진이라는 가장 대표적인 기록의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역사적 사건의 재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장소만 봐서는 역사적인 사건의 본질을 알 수 있는 흔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감히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려고 한다면 당사자의 가슴에 남은 상처를 후벼 팔지도 모르는 일이다. 심지어 병원 내부를 밝히는 조명의 색과 화면의 구도는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이러한 사진이 광주의 정신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재난을 재현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재난의 당사자가 후대에 남길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시간에 남은 상흔과 같이 모든 당사자의 삶을 지배하는 과거의 경험,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이후에 생성되면서 회고를 가능하게 하는 기억이다. 경험과 기억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둘 중 경험은 사건의 당사자가 생을 마감함에 따라 반드시 사라진다. 그렇다면 기억만이 남는데, 사건을 바라보는 개인의 관점이 셀 수 없듯 당사자가 가진 기억의 양상도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할 의무를 지닌 후대는 반드시 사적인 기억을 공적인 기억으로 치환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사건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거리를 두며 바라보고 개인적인 기억의 공백과 왜곡을 상쇄하는 무언가를 여러 기억을 직조하며 찾아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건 상상력이다. 벤야민은 상상력을 통해 무한히 작은 것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모든 집약된 것 속으로도 새로운, 압축된 내용을 풍부하게 부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3) 이러한 능력이 새로운 세대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세현의 사진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이 장소에 대한 작가의 개입이고, 이것이 벤야민이 발하는 상상력의 발현으로 이어진다. 사건의 현장에 돌 던지기와 불 밝히기로 개입하는 것은 기억의 파편에 상상력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연작인 《Boundary》를 촬영하며 그는 돌이나 풀 등의 물체를 던지는 행위를 통해 5.18과 관련된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남은 돌 던지기를 되새김질한다. 이때의 기억은 그로 하여금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었던 장소와 현재의 기록 및 해석 사이에 있는 경계(boundary)에 관해 탐구하게 한다.4) 《푸른 낯, 붉은 밤》 연작에 등장하는 조명 역시 은폐된 역사적 사건의 현장과 기억을 밝히고 그곳에 관람자를 초대하는 기능을 한다. 《Boundary》와 《Episode》, 《푸른 낯, 붉은 밤》 연작은 모두 사진 대부분이 전쟁이나 민간인의 희생이 일어났던 사회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고, 그중 특히 《Boundary》와 《푸른 낯, 붉은 밤》은 역사적인 기억과 관련된 장소를 다루는 동시에 작가의 개입을 통해 사건 당시 그 장소를 감쌌을 공기와 분위기,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감정 등을 상상할 수 있게 연출한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이 죽음이라고 말했지만, 이세현의 사진에서 지시체가 되는 것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떠한 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이 과거에 가졌던 에너지 혹은 아우라, 또 사건의 본질에 가깝다. 그리고 이 에너지를 재현하면서 지나간 사건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사진에 담긴 이미지는 현재에 이미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함께 존재한다. 

이세현의 사진에 담긴 것은 이미 지나간 사건 속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의 ‘유령’이다. 그의 사진에는 5.18을 비롯해 6.25 전쟁, 제주 4.3 사건, 경산코발트광산 학살 사건 등의 현장과 함께 사라진 많은 사람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다. 더불어 2024년을 사는 사람의 시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고찰이 드러나 있다. 쇼아(Shoah)의 생존자인 루트 클뤼거(Ruth Klüger, 1931-2020)는 『삶은 계속된다 Weiter leben』(1992)를 통해 수용소에서 나온 이후에도 그와 삶을 함께하는 유령에 대해 말한다. 클뤼거는 구원할 수도 없고 함께 무덤에 들어가 줄 수도 없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유령과 싸우기도 하는데, 그가 깨달은 가장 확실한 것은 수용소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죽음과 그 장소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일회성의 경험이 단편적인 과거의 한 장으로 머물지 않고 유령처럼 그의 영혼을 따라다니며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한국의 사건 역시 오늘날까지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 않은가. 사건의 흔적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남는다. 이세현이 파고드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사건의 당사자에게는 거리를 두고 당시의 상황을 기억할 수 있게 하면서,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그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사건의 실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아있는가, 혹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교과서에 실린 공식적인 자료와 통계, 뉴스의 보도, 수많은 다큐멘터리, 하다못해 택시 운전사가 들려주는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관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진부한 가르침을 차치하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은 보장되어 있으며 우리 모두가 언젠가 그 사건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부당한 이유로 사람이 죽는다.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을 제거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를 통해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안에 희생된 사람이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가 이러한 사건을 대면하는 경우엔 사건에 대한 경험이 부재하는 자리에 상상력이 들어서게 된다. 이세현은 5.18의 당사자이자 그것을 기억하려고 하는 젊은 예술가로서 경계에 서 있는 자이다. 증인의 실종과 증언의 분명한 재현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얻어내고 그 이미지를 보게 하려는 시도는 사진과 역사를 같이 했다는 점을 증명하듯이, 이세현의 사진에 묘사된 사건은 그것을 경험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있는 기억과 감정의 경계를 무릅쓰고 우리 앞에 ‘살아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5) 그의 사진에는 사건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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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송미 (1999-)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수료. 이화여자대학교 블록메이트(미술사학과 X 서양화전공 교류모임) 비평 매칭 참여(2024) 및 전시 기획(2024, 프로젝트 스페이스 아이디어회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도예과 X 미술사학과 비평 매칭 참여(2024, 아트스페이스트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특강 <‘여성, 장애, 돌봄’: 요하나 헤드바와의 대화>의 연구원으로 참여(2024).



1) 이세현(1984-)은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로 2024년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파빌리온의 전시인 《무등: 고요한 긴장》에 참여했다. 역사적 상소를 사진을 통해 기록하는 작업을 중심으로 하는 만큼 광주라는 도시와 깊은 연을 맺고 있는 그는 이미 2018년에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2019년에는 ACC에서 열린 《각자의 시선》과 《연대의 홀씨》, 2021년 광주비엔날레 5.18특별전 《메이투데이》 등 광주에서 개최된 다수의 그룹전에서 사진을 선보였다. 그 외에도 일본, 중국, 대만, 부산 등에서 레지던시에 참여하고 2023년 《푸른 낯과 붉은 밤》(미술중심공간 보물섬), 같은 해 《이세현 초대전》(전주 서학동 사진미술관) 등의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작가에 대한 정보는 인스타그램(@missemma_802564)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김영옥 외 역 (길, 2007), 138.

3) 앞의 책, 116.

4) 백종옥, 「ACC 전시작가 이세현-역사와 일상을 반추하는 사진」, 『WEBZINE ACC』, 2022년 2월,
https://www.acc.go.kr/webzine/index.do?article=672&lang=ko (2024년 11월 4일 검색).

5)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 오윤성 역 (레베카, 2017), 18-19.




이세현, 〈푸른 낯, 붉은 밤_옛 국군광주병원〉, 2023, 장기보존용 잉크젯 안료 프린트, 280 x 370 cm.




〈푸른 낮, 붉은 밤_옛 국군광주병원 보일러실〉(좌)과 〈푸른 낯, 붉은 밤_옛 국군광주병원〉(우). =도판제공 위동은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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