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커뮤니티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추천리뷰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미술사와 비평][GB24] (8) 신시아 마르셀 Cinthia Marcelle

위동은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전시 참여작가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작품 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신시아 마르셀: AI 기술 시대 인간 노동력의 대체 불가능성


위동은

의자와 책상, 종이 서류, 유선 전화기, 흉고자와 자. 이곳은 전형적인 사무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패널로 된 첫 번째 사진 속 남성은 신발을 신은 채 책상 위에 올라가 천장과 가깝게 서 있다. 두 번째 사진에는 남성만 사라졌을 뿐 앞서 본 동일한 사무 공간만이 담겨 있다. 〈요소들의 결합-모으는 사람 The Accumulator, from the series Conjunction of Factors〉(2019-2024)의 텅 빈 사무실은 작품 바로 옆 독립된 방에 〈여기에는 더 이상 자리가 없어요 There Is No More Place in This Place〉(2019-2024)란 설치 작업으로 실제화된다[도판 1, 2]. 일터에 응당 있어야 할 근무자와 그들이 사용하는 가구, 용품이 없는 이곳의 천장은 무너지고 있으며 곧 붕괴할 것처럼 위태롭다. 사람이 사라진 ‘여기,’ 사무실이란 공간이 존재할 수 있는 ‘자리’란 ‘더 이상 없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2024) 갤러리 1에서 관람할 수 있는 이 두 작품은 모두 1974년 브라질에서 출생해 거주하고 있는 신시아 마르셀(Cinthia Marcelle)의 작업이다.1) 설치, 사진, 비디오, 회화, 콜라주, 드로잉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세계를 조직하는 사회적 구조와 개념적 체계 및 질서를 탐구하는 마르셀은 특히 이번 전시에서 현시대 노동 시장에 집중한다. 

전 세계적으로 산업현장에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 도입돼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2) 일례로 2023년 12월 KB국민은행은 AI 상담원 도입 이후 콜센터 용역업체 직원 240명을 해고했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 또한 검색엔진에 AI 기술 도입으로 2년여 전 직원의 6%에 해당하는 1만 2000명을 감원했다. 이러한 상황이 일고 있는 가운데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Future of Humanity Institute) 소장인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AI가 인간 노동력에 대한 수요를 줄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3)

마르셀은 혁신 기술로 인해 인간이 부정되는 노동 시장이란 ‘판’에 한정해 인간 노동의 가치에 대한 자신의 ‘소리’를 발설한다. 인간이 동족과 자연,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과 형상을 ‘부딪힘 소리’란 주제로 전달하는 갤러리 1에 이어 동일한 맥락에서 전개되는 갤러리 2에서는 인간의 원초적인 육체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네 개의 2패널 사진 작품을 선보인다. 

이 중에서 첫 번째로 살펴볼 작품은 〈요소들의 결합-상속녀 The Heiress, from the series Conjunction of Factors〉(2011-2024)이다. 콘크리트와 벽돌이 노출된 하얀 건물과 거친 붉은 흙이 있는 폐허에서 여성은 돌이 들어있는 자루를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힘겹게 끌면서 이동하고 있다[도판 3]. 두 번째 사진에서 여성은 오른쪽 바닥 위에, 자루에 든 돌을 산처럼 모아둔다. 여성은 왼손으로 찢어진 마대의 꼭지 부분만 잡고 돌무덤 위로 그 손을 뻗은 채 무표정으로 서 있다. 그녀가 물려받은 것은 건축물의 부산물이며 이를 옮기는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할 그녀를 오히려 마르셀은 상속녀라고 칭하며 인물이 처한 노동 현실과 육체노동의 격을 높이고 있다. 

〈요소들의 결합-코스모폴리탄 The Cosmopolitan, from the series Conjunction of Factors〉(2011-2024) 속 건물은 각종 철근과 내부를 구성하는 자재들이 녹슨 것으로 보아 장기간 내부가 노출된 상태로 유지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헬멧과 장갑을 착용하고 여러 대의 철근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건설 현장 노동자일 것이다. 그의 하의에 묻은 녹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는 점과 바닥 콘크리트 옆면에 철근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재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는 상황 또한 알 수 있다. 마르셀은 뼈대를 형성하기 위해 철근을 바닥에 흩뿌려둔 남성을 코스모폴리탄으로 일컬으며 단순 건물이 아닌 세상을 짓는 세계 시민으로 규정한다. 

〈요소들의 결합-실천자 훈련 The Practitioner Disciple, from the series Conjunction of Factors〉(2011-2024)에 등장하는 한 남성이 흰색 건물 벽을 갈고 있다. 갈린 가루는 그의 발뒤꿈치를 가릴 만큼 바닥에 쌓였으며 그의 신체와 검은 바지에도 가루가 무던히 누적됐다. 지속적인 사포질 때문에 그의 손 주변은 유난히 뿌옇고 두 번째 화면에서는 강한 바람이 일어 그가 보이지 않을 만큼 화면이 분말로 가득 찼다. 혼돈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며 자신에게 부여된 일을 지속하는 사진 속 남성을 작가는 훈련하는 실천자라고 명명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그의 지조와 실행력을 포착하게 한다.

마지막 마르셀의 작품은 〈요소들의 결합-수집가 The Collector, from the series Conjunction of Factors〉(2011-2024)이다. 베이지 톤의 모래로 이뤄지고 지면에서는 잔디가 자라는, 달처럼 생긴 곳에 모래와 비슷한 색의 양복 차림의 남성이 갈색 서류 가방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일반 직장인처럼 보이는 남성은 두 번째 사진에서 중요한 문서를 넣는 가방에 지퍼가 닫히지 않을 만큼 많은 양의 모래를 넣어간다. 마르셀은 그 무게가 무거워 옆구리에 이고도, 한쪽으로 모래가 새 나가도 채집해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걸어 나가는 그를 수집가로 칭하며 그의 끈기와 지속성을 높이 평가한다. 

마르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상의와 하의는 작품의 배경을 수평으로 절반 나눴을 때 각각 상반부와 하반부의 색과 유사하다. 작가는 노동의 공간과 인물을 동화시킴으로써 인물의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한다. 나아가 작가는 그 근로자들을 ‘모으는 사람’, ‘수집가’, ‘실천자’, ‘상속녀’, ‘코스모폴리탄’으로 이름하며 인간 노동의 가치를 상승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작가는 노동자를 무언가 오랜 기간 뚝심 있게 축적한 사람, 육신을 움직일 능력을 갖춘 유기체 그리고 최고의 자산을 보유한 인간으로 격상시킨다. 결과적으로 마르셀은 그들을 코스모폴리탄으로 칭하며 전 지구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의 본질적인 구성원으로 여긴다. 

작가는 작품에서 폭력적인 행위나 맹렬한 정치적 의사를 통해 일차원적으로 의견을 표명하진 않는다. 다만 마르셀은 판소리 공연처럼 무대를 생성하고 소리꾼인 모델을 출연시켜 자신의 의도대로 연기하도록 연출한다. 나아가 작가는 화면을 넘어 전시장에 직접 무대를 설치해 청중인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작가가 전달하는 은유적인 창에 우리는 “와, 이것도 작품이야?”, “천장이 무너지고 있어” 등의 추임새로 그곳을 채운다. 즉 그는 직접 등장하기보단 항상 자신이 건축한 공간에 인물을 끌어들이고 숨어있는 함의를 전하는 ‘요소들의 결합’의 장을 생성한다. AI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현상에 저항하는 네오 러다이트(Neo-Luddite) 운동의 소극적 성격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마르셀의 작품은 인간 노동력의 대체 불가능성을 서서히 발견하도록 한다. 



ㅡㅡㅡㅡㅡ



- 위동은 (1997-) bonawie@naver.com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수료. ⟪EMAP☓FRIEZE 2024⟫ 학예팀, ⟪당신은 무한히 검은 세상에서 설렘만을 느낄 수 있는가?⟫(프로젝트 스페이스 아이디어회관, 2024) 기획,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자예술전공 초대전시 1부 ⟪마주하다⟫, 2부 ⟪마주 보다⟫(아트스페이스 트인, 2024) 비평 기획.



1) 브라질 작가 신시아 마르셀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와 전시 이력, 이외의 작품들은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김서현, 「편의로 소환한 AI에 자리 뺏긴 사람들」, 『메트로신문』, 2024년 1월 15일,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40115500614 (2024년 11월 6일 검색).

3) 곽소영, 유승혁, 「AI와 인간의 ‘밥그릇 싸움’ 시작...고학력‧고소득 직업부터 대체된다[AI 블랙홀시대-인간다움을 묻다]」, 『서울신문』, 2024년 2월 6일, https://www.seoul.co.kr/news/economy/2024/02/06/20240206500213 (2024년 11월 6일 검색). 







신시아 마르셀, 〈요소들의 결합-모으는 사람 The Accumulator, from the series Conjunction of Factors〉, 2019-2024,
종이에 2패널 잉크젯 프린트, 104 × 130 cm (2), 
루이사 스트리나 갤러리 제공,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개작 커미션. 도판 제공: 위동은. 



신시아 마르셀, 〈여기에는 더 이상 자리가 없어요 There Is No More Place in This Place〉, 2019-2024, 
카펫, 금속, 폼, 램프, 796 × 1101 × 230 cm, 
루이사 스트리나 갤러리 제공,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개작. 도판 제공: 이선명. 



신시아 마르셀, 〈요소들의 결합-상속녀 The Heiress, from the series Conjunction of Factors〉, 2011-2024, 
종이에 2패널 잉크젯 프린트, 104 × 104 cm (2), 
루이사 스트리나 갤러리 제공. 도판 제공: 위동은.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전체 0 페이지 0

  • 데이타가 없습니다.
[1]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