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자료연구가 김달진(47)씨에게 임오년 새해는 말 그대로 `새' 해다. 오랜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자기 이름이 붙은 `김달진 미술연구소'(02-3217-6214)를 냈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16년,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에서 6년을 보내며 `걸어다니는 미술사전'으로 불리던 그였기에, 미술계에서 이 연구소에 거는 기대는 크다.
“미술에 관한 기록이라면 신문기사 한 줄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일해온 만큼, 앞으로 한국 미술계 자료는 우리 연구소가 책임진다는 각오로 뛰겠습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면 큼직한 가방을 메고 서울 인사동과 사간동 화랑가를 훑고 다니던 그는, 그렇게 모은 자료들을 잘 엮어 한국 근·현대미술사 정리에 든든한 주춧돌 구실을 하겠다는 의욕이 대단하다. 해방 뒤 나온 웬만한 미술자료는 다 꿰고 있는 그가 발 디딜 틈 없이 집안 곳곳에 차고 넘치는 그 자료들을 어떻게 풀어놓을지가 궁금하다.
`김달진 미술연구소'가 처음 내놓은 작품은 월간 <서울 아트 가이드>다. 1일 첫 선을 보인 이 무료 전시안내지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전국 168개 전시장의 전시 정보를 낱낱이 소개하는 외에 미술계 자료와 토막 소식 등을 알뜰하게 실었다. `미술 역사 속의 오늘' 같은 얘기는 김달진씨이기에 가능한 사료 겸 기록이다. 원로 미술평론가인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원고료 한 푼 받지 않고 칼럼을 연재하기로 했고, 미술계 인사들이 <나의 발언>을 앞다투어 써주기로 약속하는 등 김달진씨 응원부대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구소 시스템이 안정되면 작가별 자료관리를 해주고 싶어요. 자료가 없어져서 잊혀지는 작가와 작품이 너무 많거든요. 작고 작가 인명록을 만드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미술가, 박물관, 미술관, 화랑, 미술단체 등 미술계에 꼭 필요한 주소록도 제대로 된 것이 없어요.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숙제들이죠.”
연구소가 뜨자마자 그가 해야 할 일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국회가 처음 내놓을 예정인 소장품 도록의 작가 약력 정리, 2001년 미술연감의 전시회 기록 등 김달진씨의 손길을 기다리는 미술판 일이 산더미다. 한울출판사에서 곧 나올 책에는 한국 미술판의 현장을 발로 뛴 이야기들을 모았다.
“우리 사회 전반이 그렇기도 하지만 자료의 소중함을 너무 모르고 흘려버리는 풍토가 문제라고 봅니다. 자료에 대한 몰이해와 부정확함 때문에 제대로 된 미술사 서술이 어려울 지경이라면 이건 미술계 발전의 큰 걸림돌이죠. 그 난제를 푸는 데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
청계천 헌 책방을 뒤지며 미술 관련 자료를 오려 모으던 김달진씨가 이제 그 스크랩북 더미 속에서 한국미술을 건져 올리려는 순간이다.
글 정재숙 기자jjs@hani.co.kr
사진 서정민 기자westmin@hani.co.kr
- 한겨레신문 2002.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