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통의동,<김달진 미술연구소>를 찾아서...
관리자
또다시 통의동,
‘버리지 못함’에 대한 훌륭한 변명 <김달진 미술연구소>를 찾아서...
- 월간 보일라 2007년 8월호 P.5 -7
나는 유난히 무언가를 버리지 못한다. 몇 년을 방치해두고는 그 존재조차 잊었던 물건도, 쓰레기통으로 내던지려고 보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면서 꼭, 어딘가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곤 하는 것이다. 내 소유라곤 방 한 칸도 갖고 있지 않는 내가 그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을, 나의 지인들은 사치라며, 집착이라며 원성의 목소리가 자자하다. 나 스스로도, 무언가를 기꺼이 비워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궁색함’에 조금씩 움츠러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구원의 현장이 나타났다.
30년간 ‘버리지 않은’ 자료의 보고, 김달진 미술연구소
광화문을 들어서서 경복궁을 감싸고 있는 일대에는 크고작은 동네가 많이 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전시공간과 재즈바, 럭셔리한 레스토랑, 특이한 북카페 등이 즐비한 삼청동을 비롯해, 아직도 기왓장을 팔고 있는 오래된 건재상과 ‘착한 글씨’로 대문을 장식한 가게들이 가득찬 팔판동, 은근히 작가와 디자이너들의 작업실이 가득한 가회동, 정승이 나는 수맥이 흘러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정치가들이 마구잡이로 기왓집을 사두었다는 1번지, 이발사로 유명한 효자동, 작지만 정돈된 시장이 있는 통인동, 여름철이면 가슴이 뻥 뚫릴만큼 시원스런 물줄기를 뿜어대는 계곡이 들어선 옥인동, 누상동, 누하동.. 도시의 오래된 구석이니만큼 그 이름도 가지가지인 많은 동네들이 한 데 엉켜 제각각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는 이 동네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아카이브를 궁색하게 하는 미술자료가 충전된 공간이 있었다.
<김달진 미술연구소>는 미술자료전문가로 알려진 김달진씨가 2001년 12월에 만든 일종의 자료실이다. 이곳에 축적된 자료는 주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것들이고, 이를 공유하고 필요한 곳에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운영자 김달진씨는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통해 미술전시 및 간행물에 관한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Q | 30여년간 4000여권의 자료를 모았다고 들었다. 미술자료를 모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되었나?
A |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한건 고등학교때부터에요. 7~80년대는 미술잡지나 서적 등이 귀할 때였지요. 관련 서적이 나오면 ‘이 달의 명화’같은 거 하나씩 뜯어 모으는 재미로 챙기기 시작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되었네요. 지금은 연구소도 안정궤도에 올랐고, ‘서울아트가이드’를 통해 새로운 전시정보나 간행물 정보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일일이 모으지 않아도 알아서 보내주는 자료들로 더욱 풍성해지고 있어요.
Q | <김달진미술연구소>라는 오프라인 공간도 그렇지만, 사실 <달진닷컴>이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굳이 오프라인 공간을 고집하고 있는 이유는?
A | 온라인 상에서 공유되는 자료는 모두 2차적인 것이다. 그림과 텍스트들은 모두 오프라인으로 이미 존재하거나, 앞으로도 끊임없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원소스들을 갖추지 않고서는 온라인자료도 존재할 수 없다. 1차자료를 보존하고 영구적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 개인적으로 하기는 정말 너무 벅차다. 보다 객관적이고 더욱 풍부한 자료의 보존을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줘야한다. 그 때까지는 내가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Q | 온라인 매체와 오프라인공간을 함께 운용함으로써 얻어지는 강점이라고 한다면?
A | 온라인을 통해 자료를 DB화하는 일은 한정된 물리적 공간을 극복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이것을 외화하는 매체 ‘서울아트가이드’를 통해 더욱 풍성한 자료를 축적할 수 있다. 또 온라인 공간 ‘달진닷컴’에서는 ‘서울아트가이드’라는 지면에서도 다 다룰 수 없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이러한 순환구조가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를 활성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Q | 보일라도 <보일락>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운용해봤었다. 하지만<보일락>은 지인들의 사랑방 정도로 밖에 발전시키지 못했다. 달진닷컴과 <김달진미술연구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A | 물론 나도 처음에는 이런 정보지로 밥이나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 오랫동안 국립현대미술관에 있었고, 공무원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누리다가, 광고 따겠다고 돌아다니다보면,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이 고작 ‘영업사원’에 불과했었나...자괴감도 생기곤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게된 건... ‘김달진’이라는 이름 석자에 대한 신뢰가 아닐까한다. 막대한 물량과 자금지원을 받으며 진행하는 책도 신뢰가 없으면 이어가지 못한다. 약속한 부수만큼 찍어내고, 광고 뿐 아니라 유용한 정보들도 확대하고, 지면도 점점 늘어나고, 책의 퀄리티도 높아지고... 책이 점점 나아지니 약속한 것도 더 성실히 수행할 수 있고, 그 덕분에 또다시 광고나 전시정보가 더 잘 모이게 되고... 모두가 ‘사람’을 믿고 매체를 믿어주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Q | 서울아트가이드는 어떤 책인가?
A | 이 책은 정보지다. 전시 및 행사, 미술관련 서적 등에 대한 광고로 가득 차 있다. 광고도 메시지다. 광고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모두 보여주고 그 사이에 있는 컨텐츠도 유용하도록 구성된 책이다. 처음에야 기라성같은 미술전문 잡지도 있고 정보지 하나 가지고 시장에서 어떨지 조바심이 있었다. 2년 정도 지나니 사람들 손에 서울아트가이드가 들려있고, 메이저 화랑들이 광고를 싣기 시작하니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수 있게 되더라.
처음 1만5천부정도로 시작했지만, 한 전시가 자체 팸플릿을 1000부 2000부 정도 제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고효과가 있는 셈이니 점점 우리 매체와 관계를 맺어가게 되었던 것 같다.
Q | 나오는 과정도 궁금하다.
A | 전시정보를 게재하기 원하는 화랑이나 갤러리로부터 10만원의 가입비를 받고 그 공간의 전시정보를 실어준다. 혹자들은 ‘미술정보를 제공하면서 돈까지 줘야하느냐’는 쇠소리를 내고 있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책임감이 더 생긴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돈을 받으니까, 전시준비 등으로 정신없는 갤러리에 일일이 연락하고 독촉해서 전시정보를 취합하고, 화랑쪽에서도 일정 금액을 지불하게 되니까 더욱 챙겨보내고 있는 것이다. 전시정보는 매달 15일까지 받아 익월 잡지에 반영한다.
Q | 갤러리나 화랑같은 전시공간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A | 처음에는 내가 축적한 자료들과 평론가 등과의 컨소시움을 통해 컨설팅도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일이 들어와야 사람을 꾸리던가 하는 일인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다른 부분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Q | 보일라의 독자들 가운데는 문화의 생산자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도 많다. 1인 블로그를 비롯해 온라인, 오프라인 전시공간을 가지거나 운영해보는 것에 대한 욕심을 많이 가지는데 선배로서 한 마디 조언을 해 준다면?
A |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설정하고 그 목표에 어느정도 이르렀는가를 끊임없이 가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자기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정도로만 그치겠다고 맘먹었다면, 자신의 매체나 공간이 많이 유명해지지 않더라도 성공했다고 봐야한다. 누구나 가지는 그런 목표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신이 정한 목표와 그 달성도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전제되어야할 항목이라고 생각한다.
Q | 본 기자도 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이렇게 축적된 자료를 정리하는 능력도 다른 사람과 공유할 깜냥도 되지 못한다. 더 많은 자료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권력화되고 특권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에 오랫동안 모은 방대한 자료를 공유하기로 결심한 것은 쉽지 않은 태도라고 여겨진다.
A | 김달진이라는 사람 말고도 미술자료를 수집해온 사람들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모두 개인적인 활동에 그치고 만다. 정부간행물에 나오는 전시기록도 조사하는 주체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하고 있다. 나는 내가 모은 자료가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전시자료의 오류를 지적해내고 보다 정확한 정보가 축적되는 데에 일정부분 기여하고자 한다.
또한 미술연구에 있어서도 기존에 축적된 자료가 모두에게 공유되고 나면, 그 다음에 이어지는 연구는 방향설정이나 그 깊이 면에서 훨씬 성숙된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될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내 기록을 공유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outro
일본에는 컨텐츠 도큐멘테이션연구회라는 학회를 비롯해 기록하고 자료를 보존하는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워낙에 기록을 생활화하고 있는 일본의 국민성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무엇보다도 축적된 결과물들을 보존하고자 하는 국가의 의지가 큰 작용을 하고 있다. 자료의 보존은 당대의 사람들에게도 중요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후대에 물려주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한다. 이러한 작업은 결코 개인의 몫으로 방치해두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축적된 자료나 정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미술계 비창작인 인명록, 작고작가인명록 등을 통해 미술연구의 사람인프라를 구축한다던가 하는 일은 오랜 숙원 사업이다. 지금은 혼자지만, 언젠가 국가나 혹은 더 영향력있는 단위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옆집에 사는 아저씨같은 모습으로 김달진씨는 미술계에, 나라에,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큰 일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자료들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 김달진씨는 오늘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차곡차곡 전시 팸플릿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송추향 blog.naver.com/wowfish